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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리오 축제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팔리오 축제를 가려고 간 것은 아니다. 다만 중세기 건물이 멋지다는, 길을 잃어도 행복하다는 시에나의 골목을 걸어보려고 시내로 갔었다. 주차를 하고 골목 투어를 시작하는데 좌우에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디자인된 등이 달렸고 똑같은 색깔의 깃발이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좌우로 나부낀다.

팔리오 축제란 것이 시에나 동네를 17권역으로 나누어 경마대회를 연다고 책에서 보았기에 달팽이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현수막을 보았을 때 '아마도 이곳은 달팽이 마을인가 보다' 추측할 수 있었다.

우리 빼고 모두 잔치에 초대받고 즐기다 들뜬 분위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우리 빼고 모두 잔치에 초대받고 즐기다 들뜬 분위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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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 정도의 시간인데 골목은 마치 결혼식을 치른 후 신혼여행 길에 오른 자녀를 끝까지 배웅하고 숨 고르며 쉴 채비를 하는 신랑, 신부 측 부모 같은 분위기다. 그럼에도 하객들은 여전히 식장을 벗어나지 못한 듯 떼를 지어 식당 앞이나 골목 중간에 서 있었다. 식이 다 끝난 후 결혼식장에 나타난 사람마냥 많이 얼쯤한 분위기에 우리 가족은 초대받지 못한 잔치에 온 불편함을 느끼려는 그때 다행히 달팽이 인형으로 벽과 문 앞을 장식한 귀여운 집을 만났다. 불편함과 긴장감이 풀어지며 웃음이 나서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달팽이 마을을 지나 이번엔 거북이 마을로 왔다. 하늘색과 흰색으로 등이 달렸고 깃발이 나부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결혼식은 끝났으나 피로연이 남은 느낌? 이상해서 찬물을 하나 사러 들어갔다가 마트 점원에게 팔리오? 팔리오? 하니까 손으로 '8'을 만든다. 그래서 승마 흉내를 낸 후 가게 앞 골목을 지나가는 시늉을 하니 아니란다. 그 느낌은 스페인 사람이 '끝났다'를 표현하며 '플리또'라고 하는 말과 비슷했다. 그래서 골목을 지나는 말을 구경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거북이 마을의 두오모 곁엔 넓은 휴식 공간이 있었다. 놀이터가 있었기에 현과 쭈는 놀이터로 갔고 우린 저 아래 세상을 관망하고 있었다. 경치가 좋았으나 여전히 과연 팔리오 축제는 오늘 끝났다는 것인가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때 관광객 할머니, 할아버지가 숨을 헐떡이며 우리 곁으로 왔다. 이를 놓칠세라.

나 : 영어 할 수 있으세요?
캐나다 할머니 : 그럼.
남편 : 혹시 영국 분이세요?
캐나다 할아버지 : 근본은 영국인이지만 여하튼 캐나다 사람이야.
나 : 축제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요. 오늘은 팔리오 축제가 끝난 건가요?
캐나다 할머니 : 7시 30분에 저 아래 광장에서 팔리오 대회가 있어. 우리 아들은 거기에 있어. 우린 힘들어서 가지 않았어. 스크린으로 보면 돼.
나 : 아~ 그래서 사람들이 가지 않고 모여 있군요.
캐나다 할머니 : 애들은 바닥에 앉아서 보면 되지만 어른은 서야 할 거야.

아이들은 두오모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아이들은 두오모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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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팔리오 축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스크린으로 경마대회를 볼 수 있는 것도 알았다. 할머니가 가리킨 식당엔 이미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것이 보였다. 좋은 정보를 주신 분들께는 매우 감사한데 영어권 사람에게 "영어 할 줄 아세요?"라고 말문을 연 것이 못내 수줍다.

사위는 포르투갈, 며느리는 필리핀 사람이란다. 필리핀에는 아직 와보지 못했다는 할머니는 영국 런던에서 학업을 끝내고 캐나다로 돌아오지 않고 런던에서 좋은 직업을 구한 아들 내외에 대해 말할 때 좀 섭섭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어느 나라나 자식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부모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 시끄러워. 앉아!

7시 30분이 될 즈음 식당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이 앞에 놓여 있고 의지와 식탁은 모두 밖으로 빼놓아 딱 경마대회 시청을 할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할머니 말씀대로 아이들은 텔레비전 앞에 올망졸망 앉아 있고 그 뒤론 일찍 와서 자리를 맡은 어른들이 의자에 앉아 편안히 관람할 준비를 하고 있고 대부분은 서 있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서 있으니 너무 측면이라 눈이 어지럽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나를 톡톡 치며 아이들을 앞으로 앉히라는 몸짓을 한다. 아이들이 부끄러워한다는 몸동작을 하니 나랑 같이 가란다. 모두 몸동작. 여하튼 우리의 대화를 약 10명은 보고 있었다란 전제 하에, 즉 동양인이 무대포로 무례하게 끼어 들어간 것이 아님을 약 10명은 눈으로 보아 알 것이라는 전제하에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분명히 우리가 앉기 5분 전쯤 저도 앞쪽에 가서 착석하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건만 내가 앉던 그 순간부터 소리를 끽끽 거린다. 앞, 뒤로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이 '쉿'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데 시청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하라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녀석이 현지어로 지껄이는 소리가 우리가 들으면 언짢을 내용이기에 그만하라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분이 많이 언짢다.

나의 기분이 어떻거나 말거나 현과 쭈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내가 이 순간을 참아야지 하는데 이 녀석이 더 가관이다. 손동작으로 나를 뒤로 가라고 가리킨 후 수를 세기 시작한다. 한국말로 상황을 재현해 보면 딱 이거다.

"아줌마, 뒤로 가세요. 빨리요. 열 셀 동안 뒤로 가세요. 하나! 둘!...... 텐!"

내 덩치가 커도 화면을 가리진 않는구만. 그 녀석은..
 내 덩치가 커도 화면을 가리진 않는구만. 그 녀석은..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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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정말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 왕년에 주먹질 좀 한 나의 심기를 어찌나 건드리는지. 영어로는 완전 '스포일드 촤일드'이나 혹시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수도 있으니 영어로 뭐라 말해주는 건 포기하고 나의 모국어로 기선을 제압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눈에 힘을 좀 주고 나직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야, 시끄러워~~. 앉아. 시끄럽다구." 약 5초간 내 기에 눌린 것 같던 녀석의 기는 역시나 5초 후부터 나를 능가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오른쪽 가에 서 있는 아빠에게로 가더니 뭐라 뭐라 호소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아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저 아줌마가 나 겁주잖아요. 무식한 저 아줌마는 세계 유아 인권 선언도 모르나 봐요."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나에게 앞으로 가서 앉으라고 권한 친절남이셨다. 경주마와 기수가 소개되자 그 녀석은 할 수 없이 내 옆 옆, 쭈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나를 쏘아 보는  또 다른 눈초리. 앗! 녀석의 엄마를 잊고 있었다. 아까부터 심하게 나대던 녀석에게 가끔씩 다가와 '쉬이이이이이' (오줌 싸라는 거야 뭐야!) 하던, 한국 중년 탤런트 박원숙씨를 닮은, 미인이었던 그의 엄마가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귀여운 그 녀석을 보고는 '쉿' 소리 한 번 내준 후 손으로 앉으란 표현을 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 앞을 보고 달려, 왜 앞을 못 보냐구! 엉?

경주마와 기수가 소개된다. 처음 소개된 기수는 거북이 마을에 나부끼는 깃발들의 색인 하늘색과 흰색으로 만든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95%의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알았다. 권역별로 스크린을 두어 대회를 관람하는데 우리는 '거북이 마을'에 있는 스크린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당연히 다 거북이 마을 응원팀인 것이었다. 1번 레인이다. 유리하겠단 생각을 한다.

책에서 읽기론  단순히 안장 없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경마대회라고 알고 있었는데 없는 것이 비단 안장만이 아니었다. 소개되었으면 자기 레인에 딱딱 서서 앞을 보고 있는 것이 인간의 육상 대회든, 개나 말의 대회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17권역 중 9마리밖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출발선에 맞추어 출발자세를 취하는 말이 한 마리도 없다.

2번 레인까진 그러했으나 3번 말이 들어오자 1, 2번 말이 한꺼번에 견제를 하며 "너 저리 가란다." 그러자 3번 말은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도 못 잡고 옆으로 섰다. 약 9번 경주마까지 소개되고 나서 어떤 한 마리가 뛰자 모두 다 같이 뒤쪽에 가서 몸을 푼다. 처음엔 육상 선수가 출발선에 가기 전 몸을 푸는 동작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망나니짓을 단체로 한 듯하다.

'베'씨 성을 가진 것으로 기억하는, 금전과 여자 문제로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여전히 자리보전을 잘 하고 있는 이곳의 대통령인가 총리도 텔레비전에 잡힌다. 사회자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안성기씨의 위치나 외모는 탤런트 이세창을 닮은 사람인데 계속해서 텔레비전에 잡힌다. 말들이 속 썩일 때마다 사회자의 표정에서 "아! 저 근본도 없는 망나니 같은 놈들" 같은 짜증이 묻어난다.

그러나 팔리오 경주마는 사회자의 다음 스케줄로 생방송이 잡혔는지 어쨌든지 알 바 없단 자세다. 6마리는 여전히 몸을 비스듬히 돌려 출발선에 섰고 2마리는 아직도 뒤쪽에서 몸을 풀며 출발선에 나오길 포기한 듯하고 마지막 한 마리는 출발선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1번~6번 말들이 어찌나 견제를 하는지 다가오다가 도망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9번 말이 잘못해서 출발선인 밧줄을 건드리자 '빵' 출발 소리가 났고 1번~6번 말은 일단 뛰어 나갔다. 9번 말은 부정출발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기수를 떨어뜨렸다. 아니면 기수가 자진해서 떨어진 것일지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은 한 번의 이 경기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출발하지란 생각을 하는데 출발 신호가 울렸고 말들은 뛰었다. 그런데 말들은 정면을 보며 뛰지 않았다. 주로 왼쪽 볼을 내밀고 몸은 약간 틀어서 뛰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 이런 망나니 같은 놈들! 똑바로 앞을 보고 출발하면 될 것으로 왜 눈을 희번득희번득거리고 치뜨고 뛰냐고!"

그래도 1등은 있었다. 1번 거북이 마을이 계속 선두에 섰고 결승선에도 1등으로 들어왔다. 약 5%를 제외한 사람(어린이 동반, 노약자 여행자)만이 잠잠했고 그 외엔 일어나 방방 뛰었다. 소리를 지르며. 그리고 단체 따돌림을 받던 9번 말은 당당히 3위나 4위 정도를 했던 것 같다. 맨 바깥 위치에서 심한 견제를 받으며 그 정도 순위에 들었다는 건 1등감이란 말인데... 인간들 세계나 짐승들 세계나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의 세계는 또한 불공정하다.

너무 웃겼다. 안장도, 질서도, 상식적인 출발 자세도 없는 게 많았지만 눈도 생각도 모두 정화되는 느낌이다. 다시 거북이 마을을 지나 달팽이 마을로 들어오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좀 실망한 듯하다. 우리와 많은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관람한 구역이 1등을 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현과 쭈도 많이 흥분했다. 그러나 저 아래쪽 광장에서 전 세계 여행자가 경기장을 빠져나와 운전을 시작하기 전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아직 한산했다. 경기장 출구에서 들리는 다국적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기분이 더욱 밝아진다. 아! 사악한 인간이여!  

야호! 우리가 응원한 팀이 이겼다구.
 야호! 우리가 응원한 팀이 이겼다구.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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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 #유럽캠핑, #맞벌이 가족 여행, #이탈리아, #팔리오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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