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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캐시미르 지방에서 만들어진 비쉬누상
 9세기 캐시미르 지방에서 만들어진 비쉬누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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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역사에서 중세는 굽타 왕조가 망한 510년경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진출하는 1192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중세 인도는 통일제국을 이루지 못하고, 크게는 3~5개, 작게는 수십 개 국가로 나눠져 있었다. 크게 나누면 북부, 동부, 중남부 인도가 된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따르면 당시 인도는 동서남북중의 다섯 개 나라로 나눠져 있었다. 

북부의 국가로는 구르자라-프라티하라(Gurjara-Pratuhara) 왕조가 가장 번성했다. 라자스탄주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 인도를 통치했다.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서쪽 구자라트로부터 동쪽 갠지스 야무나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하며, 북쪽 펀잡(Punjab)까지 진출한 이슬람 세력과 경쟁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조드푸르(Jodhpur) 서쪽에 있는 오시안(Osian) 사원이 있다.

카주라호 사원의 미투나상
 카주라호 사원의 미투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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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긴 또 하나의 왕조가 찬델라(Chandela) 왕조다. 945년 찬델라 왕조를 연 당가(Dhanga)는 구르자라-프라티하라 왕조의 가신이었다. 카주라호(Khajuraho)를 수도로 찬델라라는 새로운 왕조로 열었다. 찬델라 왕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카주라호에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이들 사원은 80개 이상 지어졌으나, 현재는 30여 개만 남아 있다. 이들 사원에는 남녀의 에로틱한 성행위를 묘사한 미투나(Mithuna)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부의 국가로는 마가다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한 팔라(Pala) 왕조가 있다. 팔라 왕조는 불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곳곳에 사원과 대학을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도 유적으로 남아 있는 유명한 날란다(Nalanda) 사원 대학이다. 날란다 사원이 처음 세워진 것은 굽타 왕조 때다. 그러나 날란다 사원 대학에 대한 기록은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는 637년과 642년 두 번 이곳을 방문했고, 약 2년간 이 대학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란다에서 출토된 8세기 초 석가모니불
 날란다에서 출토된 8세기 초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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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공부하는 1,000명에 달하는 승려들은 모두 걸출하고 재기가 넘치며 높은 학문을 닦는 자들이다. 당시 그들의 명성을 듣고 이역만리에서 그들에게 도를 배우려고 온 자들이 수백 명이 넘는다. 그들의 계행은 맑고 깨끗하며 위의는 순수하다. 대중들 사이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으며 모두 곧고 바르기에, 인도 여러 나라들은 이들을 우러러보며 모범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그들은 가르침을 청하고 깊은 이치를 토론하면서 하루 종일을 다 소비해도 부족하였고,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를 일깨우고 가르쳤으며 노소 할 것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현장 저/ 김규현 역주: 대당서역기. 글로벌콘텐츠 2013, 425쪽)

중남부 국가로는 6세기에서 9세기 사이 번성한 팔라바(Pallava) 왕조가 있다. 그리고 897년 팔라바 왕조의 가신이던 촐라(Chola)가 탄조레(Tanjore)를 수도로 새 왕국을 건설했다. 촐라 왕조는 라자라자 1세(985~1014)와 라젠드라 1세(1012~1044) 때 전성기를 이뤘다. 이 시기 대표적인 사원이 브리하디슈바라(Brihadishvara) 사원이고, 라자라자 2세가 건설한 다라수람(Darasuram) 사원, 치담바람(Chidambaram) 사원도 유명하다.

인도 중세의 불상
 인도 중세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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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 왕조의 청동예술품이 이곳 국립박물관 청동조각실에 전시되어 있다.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이들 청동조각상은 팔라바 시대부터 제작되었다. 그러나 라자라자와 라젠드라 통치시대 만들어진 청동상의 예술성이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춤추는 시바신의 모습을 표현한 나타라자(Nataraja)가 가장 유명하다. 나타라자는 인간의 영혼을 환상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원형으로 표현된 우주의 중심에서 춤을 춘다.

촐라 왕조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조각품

나타라자
 나타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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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타라자의 춤은 브라흐마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도록, 타락한 우주를 파괴해주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춤은 창조를 위한 파괴 행위다. 아난다 탄다바(ananda tandava)로 알려진 성스러운 춤을 추는 과정에서 창조와 보존 그리고 파괴 행위가 이루어진다. 춤을 추는 나타라자의 표정은 엄숙하며, 네 팔과 두 발의 자세는 우아하다. 나타라자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꽃의 퍼져나감은 우주의 파괴를 상징한다.

오른쪽 위의 손에는 창조의 원초적인 소리를 내는 장구 다마루를 들고 창조의 불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 위의 손은 아그니(agni)로 불리는 파괴의 불꽃을 잡고 있다. 앞으로 나온 오른쪽 손은 악과 무지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주는 시무외인(施無畏印: abhaya mudra)을 하고 있다. 아바야 무드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앞쪽 아래로 내린 왼쪽 손은 자신의 발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곳에 악과 무지의 화신인 난장이 아파스마라푸루샤(apasmarapurusha)가 있다.

크리슈나 청동상
 크리슈나 청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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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자의 오른쪽 발은 난장이를 밟고 있고, 왼쪽 발은 대각선으로 들어 춤추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발이 가리키는 방향은 구원의 길을 의미한다. 나타라자의 머리는 묶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위를 코브라, 보석, 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촐라 왕조시대인 12세기 초 타밀나두에서 만들어졌다.
 
나타라자보다 이른 9세기에 만든 크리슈나 청동상도 유명하다. 크리슈나는 머리가 다섯 개 달린 코브라의 머리 위에서 코브라의 꼬리를 잡고 춤을 춘다. 이것은 강물에 독을 푼 칼리야나가(Kaliyanaga) 코브라로부터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제압하는 장면이다. 크리슈나는 오른손을 들어 두려워말라는 수인을 하고, 칼리야나가는 존경과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팔라바 왕조시대 비쉬누상
 팔라바 왕조시대 비쉬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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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에 만들어진 또 다른 청동조각품으로 시바상도 유명하다. 이 조각은 연꽃 대좌 위에 안정적으로 서 있는 전사의 모습이다. 말과 활은 표현되어있지 않지만, 다음 단계에서 활을 쏴 악마를 무지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또 팔라바 왕조시대인 9세기에 만든 비쉬누상도 있다. 비쉬누 입상으로, 재질과 표현양식에서 촐라 왕조시대 것과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우선 청동이 아니라 황동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표면처리가 매끄럽지 않아 투박하면서도 소박해 보인다. 동상이 취하고 있는 포즈도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이다. 두 발은 나란히 놓여 있고, 네 팔 중 두 팔은 기물을 들고 있고, 나머지 두 팔은 시무외인으로 불리는 수인을 하고 있다. 얼굴 표정은 약간 엄숙한듯하면서도 인간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팔라바 왕조의 조각상이 촐라 왕조시대를 거치며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회화를 통해 본 무굴제국 이야기

다라 쉬코의 결혼
 다라 쉬코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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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은 1526년 바부르(Babur)가 북인도를 점령하면서 인도대륙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3대 악바르(Akbar) 대 무굴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인도를 확고하게 지배하게 되었다. 5대 샤자한(Shah Jahan)에 이르러 무굴제국은 문화, 예술적으로 최고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샤자한의 아들인 다라(Dara Shikoh)가 아우랑제브(Aurangzeb)와의 왕권 다툼에서 져 죽임을 당하고, 아우랑제브가 왕이 되어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편다. 그 결과 무굴제국은 사회적으로 경직되고, 문화적으로 퇴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아우랑제브의 사후 무굴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이름뿐인 제국으로 150년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굴제국 시대 그림이 이곳 국립박물관 회화실에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세밀화(Miniature paintings)로 힌두신화를 주제로 하거나 황제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식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그림도 있다. 힌두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는 비쉬누, 크리슈나, 락슈미, 시바가 있다. 이들 그림은 조각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같은 서사시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샤자한
 샤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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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등장하는 황제로는 바부르, 악바르, 자한기르(Jahangir), 샤자한 등이 있다. 바부르는 자연과 정원을 사랑한 황제였다. 악바르는 위대한 황제답게 사냥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자한기르는 특이하게도 마리아상을 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굴제국이 모든 종교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나중에 아우랑제브에 의해 이슬람교를 강요하는 정책으로 바뀌게 된다.

샤자한의 초상화는 가로가 16㎝ 세로가 25㎝ 밖에 안 되는 소품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통해 무굴제국 황제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샤자한은 성인처럼 머리 뒤로 후광을 받고 있다. 그는 터번을 쓰고 그 위에 깃을 달았으며, 수염을 길렀다. 옷은 무릎까지 덮는 자마(Jama)를 입었고, 그 위에 황금색 코트를 걸쳤다. 그의 오른손에는 빨간 꽃이 들려있고, 왼손은 긴 칼을 잡고 있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샤자한의 인간성, 개성 그리고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대화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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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재미있는 그림으로는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대화'가 있다. 1800년경 벵갈 지방에서 그려진 그림으로, 나무판에 그려 액자 형태로 만들었다. 그림의 왼쪽에 터번을 쓰고 허리까지 늘어지는 장식을 한 젊은이들이 개혁주의자로 보인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지 않은 오른쪽 사람들이 전통주의자로 보인다. 그리고 전통주의자들 쪽에 또 다른 개혁주의자들이 좀 더 작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특이한 그림인데,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태그:#인도의 중세, #촐라 왕조, #청동조각품, #나타라자, #무굴제국 시대 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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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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