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바스투에서 온 부처님 진신사리
불교미술 전시실에는 불상, 불구, 불화가 많다. 이곳에는 석가모니 부처 이후 중세까지 불교관련 유물이 84점 정도 전시되어 있다. 이들 유물은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네팔, 티베트,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것이다. 불상의 재질은 돌, 청동, 테라코타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불화로는 탕카(幀畵)로 불리는 티베트풍 그림도 보인다.
이곳 전시실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누가 뭐래도 부처님 진신사리다. 그것은 부처님이 입멸한 직후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든 함이 발견된 것은 1898년 피프라와(Piprahwa)의 탑(Stupa) 유적에서다. 이곳은 부처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로 여겨지는 장소다. 그것은 사리함의 덮개 부분에 샤카(Shakya: 석가모니)족의 유물임을 언급하는 명문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 고고학연구소는 이곳 탑 유적을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재차 조사했고, 두세 차례 중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활석(Steatite)으로 만든 사리함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22개의 사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쪽에 있는 사원터에서는 40여 기의 테라코타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들 유물은 기원 후 1~2세기의 것으로, 그곳에 브라흐미(Brahmi) 문자로 '카필라바스투 불교공동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사리함은 1997년 태국 왕실에서 기부한 금동탑 안에 안치되어 있다. 기단부에 새겨놓은 글을 보면, 금동탑은 100g이 넘는 금과 다이아몬드로 치장되어 있다. 탑의 가운데 사리함이 있고, 사리 중 하나가 탑 앞으로 꺼내져 전시되고 있다. 피라미드 형태의 사각뿔 안에 홈을 파고 그 안에 사리를 안치했다. 불교신자들은 이곳을 찾아 예를 표하고 관광객들은 구경을 한다. 비구니 스님 세 분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가사에 장삼을 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불교미술 전시실
이곳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면 불상의 역사를 개관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간다라 불상부터 굽타시대 불상을 거쳐 동남아 불상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다라 불상은 1세기 경 북인도,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지역에서 생겨났다.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으로 얼굴과 머리, 의복 등이 서구적이다. 불상이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이상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이곳에 있는 간다라 불상은 쿠샨 왕조시대 것으로 보인다. 대좌에 연꽃이 새겨져 있고, 왼손에는 꽃봉오리 같은 지물이 들려 있다.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미륵보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광의 일부가 깨지기는 했지만, 은은한 미소를 통해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간다라 양식을 보여주는 두상이 또 있는데, 이것을 불두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선지 '웃는 소년의 두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쿠샨 왕조시대 힌두쿠시 산맥과 인더스강 사이 간다라 지역에서 3-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스며있지만 냉소적인 표정도 보인다. 깨달음에 이르기 전 부처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재질이 회백색 대리석이어서 밝은 느낌이 든다.
이곳에는 5세기 굽타 왕조시대 만들어진 불상도 있다. 이들은 대개 우타 프라데시(Uttar Pradesh)주 마투라와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동그란 얼굴, 가느다란 눈썹, 명상에 잠긴 듯 거의 감고 있는 눈, 드러낸 상체 등을 통해 정적인 느낌을 준다. 굽타시대의 것으로 불두도 있다. 소라 머리, 정상 계주 등을 통해 마투라 양식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0세기 팔라 왕조시대 비하르(Bihar)주 날란다에서 발견된 청동불 입상도 있다. 이 불상은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연꽃 대좌 위에 서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이곳에는 또한 동남아 양식의 금동불도 있다. 상호가 날렵하고, 삼도가 있으며, 가사가 화려하다. 그런데 이 불상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상아에 새겨진 부처님 일대기 43장면
불교를 비롯한 종교 예술을 더 알고 싶으면 14~15호실 장식예술(Decorative arts) 갤러리로 가면 된다. 이곳에는 상아, 옥, 유리, 도자기, 나무, 금속 등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품으로는 종교와 관련된 신상, 제기 등이 있고,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생활용품도 있다. 또 왕이 궁중에서 사용하던 물품도 있다. 자한기르 황제가 사용하던 물담배, 바라나시 왕이 사용하던 옥좌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들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부처의 일생을 43개 장면으로 나눠 조각한 상아(ivory)다. 1.5m가 넘는 상아에 아래서부터 오른쪽 위로 돌아가면서 원형의 홈을 파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조각을 한 불교예술품이다. 첫 장면이 싯다르타 왕자의 출생지인 카필라바스투 궁전이다. 그리고 43번째 마지막 장면이 부처의 열반이다. 부처의 일생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이처럼 상아에 종교적인 스토리와 예술적인 장인정신을 결합시킨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이 작품이 20세기 초에 만들어져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내용의 충실성, 조각의 정교성, 미적인 아름다움 등에서 정말 대단한 공예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 장면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카필라바스투 궁전. 2. 옥좌에 앉아 있는 카필라바스투왕 숫도다나. 3. 시무외인을 하고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부처. 4. 마야부인의 꿈속에 나타난 코끼리. 5. 친정으로 가는 마야부인. 6. 싯다르타를 안고 있는 마야부인(탄생). 7. 현인 아지타(Asita)를 맞이하는 숫도다나왕과 마야 왕비. 8. 숫도다나왕 옆에서 마야부인이 죽음. 9. 싯다르타가 숲속 나무 아래 있음. 10. 데바다타(Devadatta)가 새에 상처를 냄. 11. 싯다르타가 그 새를 치료해 줌.
12. 왕자비 야쇼다라(Yashodhara)를 옆에 두고 활을 쏘는 싯다르타. 13. 싯다르타에게 승리의 화환을 걸어주는 야쇼다라. 14. 외출해서 노인은 만나는 싯다르타. 15. 장례를 치르러 가는 시체를 보는 싯다르타. 16. 고행자를 보는 싯다르타. 17. 잠자는 아내와 자식을 이별하는 싯다르타. 18. 시종 찬다카(Chandaka)와 함께 궁중을 떠나는 싯다르타(출가). 19. 머리를 자르고 장신구와 옷을 버리는 싯다르타.
20-22. 싯다르타의 구도 여행(공양을 받는 싯다르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싯다르타를 찾아간 5명의 성자). 23. 수자타(Sujata)로부터 죽 공양을 받고 있는 부처. 24. 악마 마라(Mara)가 부처를 위협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함. 25. 선정인에 든 부처(깨달음: 그런데 조각의 수인이 시무외인으로 잘못 되어 있음).
26. 부처가 다섯 명의 옛 친구를 찾아 제자로 삼음(초전법륜). 27 아그니-뿌자카(Agni-Pujaka)를 물리치는 부처. 28. 대중들에게 설교하는 부처. 29. 어린 양을 안고 양떼와 함께 걸어가는 부처. 30. 부처를 영접하는 마가다왕. 31. 사리자와 목건련이 부처의 제자가 됨. 32. 부처가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냄. 33. 카필라바스투에서 부처를 맞이하는 숫도다나. 34. 아내와 아들 라훌라를 만나는 부처. 35. 라훌라를 축복하는 부처.
36. 유명한 매춘부 암라팔리(Amrapali)의 인사를 받는 부처. 37. 설교하는 부처를 바라보는 궁녀들. 38. 부처 앞에 선 난다(Nanda). 39. 승단을 벗어나려는 난다를 설득함. 40. 부처에게 달려드는 미친 코끼리. 41. 미친 코끼리를 순하게 만드는 부처. 42. 수많은 대중에게 설법하는 부처. 43. 부처의 열반
석굴사원과 고분 벽화를 통해 본 불교 이야기불교와 관련된 유물은 2층 4~5호실인 중앙아시아관에도 있다. 이곳에는 실크로드를 잇는 중앙아시아 중요한 도시에서 발굴된 불상, 불화, 토용(土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아시아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 둔황과 호탄, 아스타나 등지에서 나온 유물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석굴사원에서 떼어가지고 온 벽화다. 사실 둔황과 아스타나에 가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벽화를 보지는 못했다.
이들은 1901년부터 1916년까지 세 차례 이 지역을 답사한 오렐 슈타인(Aurel Stein)이 가지고 온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둔황(敦煌)과 아스타나(Astana)의 사원과 고분 벽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오아시스 도시 미란(Miran)의 사원 벽화인 '부처와 여섯 제자'다. 간다라풍의 그림이 신장 지역에 전해진 것으로 3~4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7~10세기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발견된 벽화와 토용도 인상적이다. 이들 벽화는 미란의 벽화에 비해 상당히 세속적이고 중국화되어 있다. 허리 아래 부분은 뱀이고 윗부분은 사람인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죽은 자를 위하여 춤을 춘다. 복희와 여와는 창조의 신이다. 이들은 컴퍼스와 자를 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어낸다. 이 벽화는 우리나라 국립 중앙박물관에도 있다. 일본의 승려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가 아스타나 고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곳에 있는 토용은 말을 탄 관리, 부인, 군인의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채색되어 있고, 죽은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7~8세기 당나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또한 합장인을 한 부처도 있고, 머리를 틀어 올린 궁녀도 보인다. 이들의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것으로 보아 당나라 때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들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인도양식의 예술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화풍이 오히려 인간적이어서 친근감이 든다. 종교. 문화 그리고 예술이 다른 지역에 이르면, 충돌하고 교류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명의 충돌과 수용 그리고 교류, 그것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이자 패러다임이다. 그것은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티벳, 중국, 한국, 일본에서 다른 모습으로 수용 발전된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