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집회가 열렸다. 당시 집회에서 시민들과 경찰의 심한 충돌이 계속되면서 '과잉진압'과 '폭력집회'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20대인 김 씨가 태극기를 불태운 것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집회 도중 태극기를 불태운 남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 105조에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해당 남성의 행위는 법률 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으며, 굳이 법률 문제가 아니더라도 태극기를 태운 것은 수많은 국민들의 감정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분노한 여론의 분위기에 올라타 몇몇 정치인들도 비난의 목소리에 가담했는데, 당시 황우여 의원은 태극기를 태운 일을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태극기를 태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태운 것"이라며 "이를 방치하면 이게 국가인가"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애국국민운동대연합을 비롯한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이 해당 시민을 철저히 수사하라며 경찰에 고발했다(관련기사:
태극기 태웠다고 형사처분? 표현의 자유 침해다).
'국기모독죄' 무죄를 선고받기까지의 과정김 씨는 집회 6개월 이후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다. 혐의는 국기모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교통방해, 공용물건손상 등 네 가지 였다. 검찰은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이 남성은 검찰에서 "국가가 세월호 사고의 진실 규명을 외면한 채 오히려 유가족들을 불법 연행하는 것을 보고 순간 격분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국기모독죄 규정과 관련해 해당 조항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모욕할 목적을 가졌을 때 처벌한다는 것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원은 김 씨의 국기모독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김윤선 판사는 "당시 경찰이 물대포 등을 쏘자 김씨가 경찰의 진압방법이 부당하다고 느끼면서 자해를 시도했던 점, 경찰버스 유리창 사이에 있던 종이 태극기를 빼내 불을 붙인 점 등을 고려하면 김씨가 태극기를 태울 당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판사는 "해산명령이 있었는데도 해산하지 않고 차량의 교통을 방해한 것은 죄책이 가볍지 않"고 "차벽으로 설치된 경찰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리려 한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도로 점거, 교통 방해, 경찰 버스 손상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국기모독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태극기를 태운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기모독죄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났으니 비난의 여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된 '운명'을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이 아직 '불완전한' 민주국가로써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판결에 대해 비난을 하는 누리꾼들처럼 애국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나라가 더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판결을 받아들인다.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는 부적절, 하지만 무죄는 인정한다우선 나는 개인적으로 집회현장에서 태극기를 태운 행위가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집회의 목적과 타당성을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자신이 타인이나 권력 등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의견을 공개적인 곳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에서 나온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태극기를 태운 행위는 집회의 본래 목적을 가리고 집회에서 표출한 의견에 반대하는 세력에게 비난할 빌미를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도 함께 매도되며 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태극기를 불 태우는 행위가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다수의 삶의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개별성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그 싹조차 트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키려고 한다.- 그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문제에 대해 결정하고 다른 이들이 판단할 기회를 빼앗아버려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들이 특정 의견이 잘못되었다는 확신 아래 다른 사람들이 들어볼 기회조차 봉쇄해버린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인간들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든 신의 섭리 속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났든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것들, 국가, 환경, 시대, 사회 등은 우연적으로 주어지게 된 것들이다. 인간은 이렇게 주어진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후에 주어진 것들을 변화시킬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받아들인다는 것과 '판단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어도 나름대로의 판단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주어진 것들에 대해 불만을 가질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할 수 있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하며, 다양한 틀 안에 갖쳐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궁극적 진리를 안다해도 그것이 궁극적 진리인지 모를수도 있고, 궁극적 진리라고 생각해도 궁극적 진리가 아닐수도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느 누구든지 스스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철인 황제라고 불리던 로마의 황제)보다 더 현명하고 더 낫다고 자부하지 못한다면, 절대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가정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하나의 가치만으로 지배되는 사회, "한 사람의 양치기와, 같은 날 같은 모양으로 털이 깎이는 수천 마리의 양으로 구성된 사회"를 '오만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병든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의 가치만으로 지배되지 않는 '다원화-다양화된 사회', 사회와 인간과 다양한 가치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누군가에 의해 강요받지 않는 '자유사회', 타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혹은 받아들일 수 없게 침해되는 경우 권력이 제지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또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비로소 책임성이 부여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 도덕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으면 책임성과 도덕은 없고, 자유와 다양성이 인간 이성의 발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는 무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작년 4월 21일 오준승 시민기자는 태극기를 태운 행위에 대한 기사에서 "국가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줘야"하고 "국기를 불태운다고 국가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형사처분까지 하는 건 과잉처벌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의한다.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가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생각해서 비판과 비난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무죄판결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가 '주어진 것'(국가나 국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든 실수이든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다수의 국민들이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도 이것을 권력으로써 억압하고 처벌하는 행위는 "그 문제에 대해 결정하고 다른 이들이 판단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행위가 옳든 그르든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국기모독죄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번 판결의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불만을 가질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무죄 판결을 한 것'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번 판결이 대한민국 발전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약 30년 전 "성조기를 훼손했다고 처벌한다면 성조기가 상징하는 소중한 자유가 훼손될 것이다."라며 국기모독죄를 수정헌법 1조 위반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나는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이런 '열린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