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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인생의 시계'를 대하는 당신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아이의 '인생의 시계'를 대하는 당신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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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인생의 시계'를 매우 중시하죠. 인생의 시계란 적정 연령에 해야 할 일을 정의해 놓는 것을 말하는데요. 8세가 되면 학교에 가고 19세에 대학생이 되고, 25세에는 취업을 해야 하며, 30세에는 결혼을 하는 등 남들과 같이 '평균적'인 인생을 살라며 끊임없이 재촉하는 삶을 말합니다.

유아기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돌 전후에는 걸어야 하고, 두 돌에는 언어를 구사해야 하며, 세 돌에는 기저귀를 떼야 하고 네 돌이 되면 한글 학습을 시작하는 등 남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해당 연령에 맞는 발달이 잘 되고 있는지 엄마들은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불안해합니다.

저 역시 늦게 걸음마를 떼는 아이들이 불안했고, 7세 이전에는 학습을 시키지 않아 불안했으며, 밤 기저귀를 떼는 것이 늦어져 무척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쌍둥이 남매가 낮 기저귀를 완전히 뗀 건 3세 때(30개월 전후)입니다. 어린이 집에서 연령별로 돌볼 인원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2월생이고 말이 빠르다는 이유로 4세 형님 반으로 월반해 3살 시기를 보낸 기간 동안 아이들은 형님들의 생활을 보며 자연스럽게 기저귀를 뗐습니다.

24개월부터 집에서 임시 소변통을 장난감처럼 익숙하게 사용해온 덕분에 깨어있을 때의 대·소변은 훨씬 이전에 자연스럽게 떼었습니다. 그러나 낮잠 기저귀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4세 형님들과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떼게 된 겁니다. 그러나 유독 밤 기저귀만큼은 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졸이게 했던 야뇨

 '야뇨'는 제게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야뇨'는 제게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 buriedwith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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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야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오랜 기간 야뇨증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죠. 저의 유전자 때문에 아이들 역시 야뇨로 오랜 기간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결혼 초기에는 아이를 낳지 말까라는 고민도 잠시 했었죠.

어릴 때 명절에는 엄마가 시댁에서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저희 식구가 모두 큰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와 저는 초긴장 상태가 됐습니다. 큰댁에서 자는 동안 제가 이불에 소변을 볼까 걱정이 되던 엄마는 온종일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피곤한 와중에도 새벽에 저를 깨워 화장실에 가게 했을 정도였습니다.

형제들 중 동생들은 전혀 야뇨를 겪지 않았는데요. 저의 경우 7세 이전에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을 했을 정도로 허약한 체질과 남동생의 출생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경우라고 병원에서 추정했다고 합니다. 두 돌을 전후해 밤중 소변도 가렸던 제가 막내 동생이 생기면서부터 야뇨증이 시작됐다고 하네요. 그때 저는 약 50개월을 갓 넘긴 5세였는데, 여동생 밑으로 남동생까지 생기는 상황이 저에게는 스트레스였나 봅니다.

한약 등 각종 약을 지겨울 정도로 먹은 덕분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행히 초등학교 고학년에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밤새 뽀송한 이불을 유지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아침마다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줄어들게 됐지요.

결정했다,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막상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때가 돼도 밤 기저귀를 뗄 생각을 하지 않자 저는 조금씩 초조해졌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언제부터 야뇨증을 치료해야 할지 알아보기도 했어요. 대개 만 5~6세(60~72개월)이 지나도 밤중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야뇨증으로 정의한다고 합니다. 대개 야뇨증은 자연 치유되는 것으로 보지만 아이들이 저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야뇨증을 겪을까봐 노심초사하게 되더군요.

5세(48개월)가 돼도 밤중 소변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오랫동안 속을 끓이다가 저는 이 일을 시간에 맡겨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면에는 워킹맘인 제가 밤중 소변 시중을 위해 새벽마다 아이를 깨워 소변을 보게 한다거나, 매일 같이 소변을 싸놓은 이불을 빨 수는 없으니 아이 스스로 밤중 소변을 멈추겠다는 인식을 가질 때까지 그냥 기저귀를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름이 다가오자 좋은 기회일 것 같아 며칠간 연속으로 쉬를 안 한 밤이면 기저귀를 그만 사용하자고 아이들을 설득했는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군요. 결국 워킹맘이라는 저의 사정과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동네에서 비교적 체격이 큰 편인 쌍둥이 남매가 5세가 됐는데도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는 것은 유치원 선생님이나 동네 엄마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린이집 시절부터 유치원까지 오랜 기간 같이 친구하던 YB가 우리 쌍둥이 남매와 비슷하게 밤 기저귀를 떼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아이 엄마와 서로 경쟁하듯 위로하듯 "아직 밤에 기저귀 해?"라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6세 생일(만 60개월)이 되던 날, 연속으로 2주 넘게 밤에 쉬를 안 싸는 방글이(딸아이)에게 6세가 된 기념으로 밤중 기저귀를 그만하자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그 뒤로 아이는 거짓말처럼 밤에 소변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 일주일에서 열흘 연속으로 오줌을 안 싸다가 하루 이틀 실수하기를 반복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땡글이(아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어요. 당시 잠자리 독립을 위해서 침대 구입을 준비하고 있을 때라 연속으로 한 달 이상 오줌을 안 싸면 침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방글이가 오줌을 안 싸면 엄마가 침대를 사준다는 자랑을 한 게 땡글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아직도 밤에 오줌을 싸고 기저귀를 찬다는 것이 6세 아이에겐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제 품에 안겨 엉엉 울며 방글이의 행동을 얘기하는 땡글이를 달래면서 너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마음에서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얼마 뒤인 여름에 접어들면서 땡글이는 밤에 오줌을 싸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밤에 오줌을 안 싸니 침대를 사줬고, 덩달아 잠자리도 독립했음은 물론입니다. 그 이후에는 쉬도 안 싼 기저귀가 땀으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주일 열흘씩 사용하다 버리기를 여러 달. 7세가 되기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아이 스스로 기저귀를 하지 않고 자겠다고 선언하더군요(물론 오래전부터 7세가 되는 날에는 기저귀를 그만하자고 약속해둔 상태이긴 했어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부모님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님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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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온 가족의 심리적 불안 이슈(친정엄마의 암 투병)으로 온 가족이 예민한 상태가 되자, 방글이가 갑자기 외출할 때마다 소변을 보는 일에 심하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에 다녀온 화장실에 또 가겠다고 징징댔던 거죠. 유치원 선생님이 상담 때 지적할 정도로 상태가 좀 심각했습니다. 외출 시간이 촉박할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변이 급하다고 하면 중간에 임시 주차를 해서라도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한두 달 아이의 긴장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없어졌어요. 낮에 소변 때문에 불안해하는 아이의 상태는 혹시 야뇨가 시작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이 시기에도 밤에 실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야뇨에 관한한 반복해서 "언제 기저귀 그만 할래?"라고 묻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거나 혼낸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저의 육아 8년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의 밤 기저귀를 자연스럽게 뗀 일입니다. 비록 남들보다 2년 많게는 3년간 기저귀 비용이 좀 더 들기는 했어도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덕분에 저는 이불 빨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저와 같은 스트레스를 겪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어릴 때 저희 엄마는 아침에 오줌을 싼 저에게 무섭도록 혼을 냈습니다. 가끔은 절규에 가깝게 "너 왜 이러느냐"라고 하소연하기도 하셨어요. 넉넉지 않은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엄마가 지금처럼 좋은 세탁기도 없이 매일 아침 저의 오줌 싼 이불을 빨아야 하는 상황이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그때 저는 어렸어요. 엄마의 상황과 관계없이 무척 수치스럽고 좌절했던 기억을 가지게 됐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이 저처럼 오랜 기간 야뇨증으로 맘 고생하게 될까봐 한때 야뇨증에 대한 여러 가지 기사를 검색하고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많은 고민했었습니다. 완전히 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만큼 사실 저는 그렇게 너그럽지 못합니다.

몇 번은 밤에 깨워서 소변을 누이려고 애써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해보고 나서 워킹맘인 제가 밤잠을 쪼개가면서까지 아이들의 밤 오줌을 떼는 일이 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동생의 출산 같은 스트레스도 겪을 일이 없을뿐더러 제가 어릴 때 허약했던 것보다는 훨씬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이었으니까요.

아이들이 기분 좋게 밤 기저귀를 뗌으로써 저 역시 오랜 기간 시달렸던 야뇨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성장의 시계 속도에 맞춰 자랍니다. 아무리 부모가 무리하게 잡아당겨봐야 시간을 앞당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리하게 재촉하고 강요한 만큼 인생의 발자취는 너덜너덜해질 뿐입니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니 마음이 초조해지고 무언가 다그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가득하지만, 아이들의 지난 성장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재촉하지 않고 끌어당기지 않고 늘 반걸음 앞에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쌍둥이육아#워킹맘육아#야뇨#밤기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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