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하면 앞에 수식어가 붙습니다. '위대한 로마'라고. 로마에 왜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을까요? 그것은 아주 작고 힘없는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로마가 고대 서양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대제국으로 번영을 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는 로마를 '역사의 호수'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고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로부터 다시 흘러나왔다고!"세계적인 박물관에 대한 기대
지중해 연안,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 그 '위대한'이란 수식어처럼 '위대함'은 과연 어떠할까? 우리는 이탈리아의 로마 그리고 르네상스의 심장부 바티칸을 찾아갑니다.
전날부터 궂은 날씨는 아침까지 이어집니다. 여행에서 비는 반갑지 않습니다. 그마나 옷이 젖을 정도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발길은 교황청 내 바티칸박물관입니다. 바티칸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 좋지 않은 날씨인데도 박물관은 바티칸성벽을 따라 수많은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여행 가이드가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우리는 예약이 되어 있으니, 조금만 순서를 기다리면 됩니다. 여긴 보안검색을 해야 하니까 그리 아시고, 화장실부터 미리 다녀오세요. 수신기 꼭 챙기고요."세계적인 문화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우리는 조그마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박물관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바티칸박물관은 베드로대성당 교황청 내에 있습니다. 이곳은 교황 율리오 2세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역대 교황들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과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들로 세계인의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바티칸에 숨어 있는 비밀들
바티칸박물관은 피냐정원을 시작으로 벨베데레정원, 지도의 회랑, 라파엘로의 방, 그리고 시스티나성당을 거쳐 베드로대성당 순으로 관람을 합니다.
우리는 피냐정원으로 모입니다. 피냐정원은 로마시대 솔방울로 된 분수를 판테온 근처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솔방울정원이라고도 불립니다. 솔방울정원에서 여행가이드는 시스티나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대한 감상 포인트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벨베데레정원에 들어섰습니다. 여기는 1506년 율리오 2세가 주요 조각품을 전시하면서 바티칸박물관의 기원이 된 곳입니다. 그리스 로마시대 신화에 기초한 고대조각들이 가득합니다. 예전 교과서에서 본 낯익은 작품들도 보입니다.
아내가 내게 묻습니다.
"여보, 저건 라오콘 아녀요?""그래 맞네! 트로이 목마와 관련된 라오콘, 맞아!"그리스 헬레니즘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대조각을 여기서 볼 줄이야! 라오콘은 트로이 몰락의 전설이 담긴 세계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로 꼽습니다. 라오콘은 그 옛날 그리스군의 목마(木馬)를 트로이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한 것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처절한 최후를 맞는 것을 묘사한 조각품입니다.
라오콘은 1500년대 초 네로황제의 무너진 궁전 터에서 발견되었고,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바티칸에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라오콘은 미켈란젤로의 모작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로도스섬 출신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가 제작한 작품이라고 전해집니다.
두 뱀에 무참히 감겨 촌각의 죽음 앞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스런 얼굴을 작가는 어찌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포세이돈, 아폴로를 비롯한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등 고대 신화 속의 영웅들의 조각상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끕니다.
박물관의 규모는 방대합니다. 전시품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많은 작품들을 다 알아보지 못한 무지가 아쉽기만 합니다.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수많은 예술품들, 여기에 담긴 예술가의 혼을 다 읽어내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미안하지는 않고!""그러고 보니 미안하기도 하네요.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그래도 분명한 것은, 예술가들의 숨결은 어렴풋이 느껴지네."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미술품부터 현대 미술품까지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술품도 미술품이지만 박물관 자체도 하나의 박물관입니다. 수신기 너머 들려오는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만 어디에 관심의 포인트를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네로황제가 썼다는 욕조를 볼 수 있는 전시실도 눈길을 끕니다. 중앙에 대리석으로 된 직경이 5m나 되는 화려한 욕조가 있습니다. 욕조를 앉힌 화려한 바닥의 대리석 또한 현란한 솜씨가 돋보입니다. 이곳 원형의 방은 판테온신전의 영향을 받아 780년에 원형 돔이 올려 졌다는데, 이것 또한 하나의 작품입니다.
그리스 십자가의 방에 있는 바닥 모자이크가 화려한 색상으로 눈이 부십니다. 특히 여신의 얼굴 모습이 뚜렷하고, 디자인이 세련되어 3세기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1580년에 완성된 지도의 회랑을 지날 때는 화려한 조명으로 부각된 천장의 벽화에 정신이 홀릴 정도입니다. 너비 6m에 길이가 120m나 되는 공간 양쪽 벽에는 이탈리아 지도가 지역별로 그려져 있습니다.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들의 혼
우리는 르네상스의 그 유명한 라파엘로의 방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당대의 천재화가였던 라파엘로가 꾸민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율리오 2세가 20세의 젊은 청년 라파엘로에게 의뢰하여 첫 번째 방인 '서명의 방'에 불세출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바티칸박물관 입장권 사진으로 들어간 라파엘로의 걸작 <아테네 학당>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상상만으로 고대 아테네학파에 속한 50여 명의 학자들을 그림 속에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그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아테네 학당> 한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여기서 플라톤은 오른손을 들어 이데아를 상징하는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상징하는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외에 <성체 논쟁> <파르나소스> <정의>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작품을 감상하면서 37세 짧은 생을 마감한 라파엘로가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인가를 새삼 느끼고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스티나성당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시스티나성당은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보다도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이라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서는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천지장조>와 <최후의 심판>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 못내 아쉽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그는 움직임을 상상할 때 안쪽과 바깥쪽을 고려하여 멀리서 봐도 완벽한 원근법으로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림이 아니라 생명체의 실제인가, 천장에서 튀어나온 입체인가'라고요.
이곳 성당 건축 당시, 벽에는 벽화들이 가득했으나 천장에는 단순한 별들로만 장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30년 후 교황 율리오 2세는 이곳에 미켈란젤로에게 농구장 2개 크기의 넓은 천장에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고되고 힘든 작업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여기에 4년 만에 세기의 걸작을 <천지창조>를 남겼습니다.
4년째! 그가 겪은 고통을 다음과 같은 시로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목은 비둘기처럼 부풀고, 배는 텅 빈 자루 같으며, 수염은 하늘로 솟았고, 머리는 뒤통수 쪽으로 자꾸 떨어진다."미켈란젤로가 고통의 작업을 견디며 4년 만에 신의 경지인 작품을 완성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굴의 의지, 예술혼 그리고 그가 가진 입체적 기교는 정답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명료한 답은 바로 그의 탁월한 천재성과 예술을 향한 진실성입니다. 즉, 천재성과 진실성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과 연계되어 불세출의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에는 391명이나 되는 역동적인 인물상들이 촘촘히 박혀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천장화와 더불어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와 표정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신성해야 할 교회 제단화가 인체 중요 부위가 온통 노출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켈란젤로 사후에 다니엘레 다 볼테라에 의해 인물들의 중요 부위를 가리는 덧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매일 시스티나성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신의 권능과 인간의 천재성을 넋을 잃고 감상합니다. 그리고 르네상스를 생각합니다.
바티칸박물관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속에는 르네상스를 통해 존엄한 인간애를 꽃피워내려는 예술가들의 혼이 화랑과 벽, 천장에까지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바티칸박물관에서 위대한 로마제국의 영광과 르네상스의 미학을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