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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있으면 일찍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아닌가? 연애의 시작에서 끝까지 전부를 통틀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화두인 이 '마음'은 '진심'의 동의어이다. 끊임없이 확인을 반복해도 마음을 탁 놓을 수 없게 원하는 만큼 충분히 내 마음에 들어찬 적 없는 그것. 너 아닌 꼭 내 마음만 졸아들게 만드는 것만 같은 이것. 이것에 대한 갈증은 죽는 순간까지 따라오는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그 영원한 갈구의 쳇바퀴의 역사를 쓰다 생을 마감하는 지도 모른다.

'진심'에 대한 갈구는 단지 연애에만 국한된 당연히 아닐 터. 마음만 먹으면 클릭 하나로 타인을 만날 수 있는 세상. 그들과 함께 연구를 하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 궁극에는 '진심'을 얻고 싶은 욕구가 함께한다.

하지만 학연이나 지연 혹은 업무상으로 전혀 얽혀있지 않은 이러한 관계는 만나기가 손쉬운 만큼 끝내기 또한 아주 손쉽다. 만남이라는 동전의 앞면을 보면서도 뒷면에 있는 이별을 환히 비추는 투명 동전 같은 느낌이랄까? 당장 내일이라도 끊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전제하에 떠다니는 진심은 누군가의 손에 잡히기엔 너무 가볍게 두둥실 부유하는 중이다. 점점 팍팍해져 사는 세상살이로 진심에 대한 갈증은 더해지면서도 그 진심을 잡기엔 더욱더 고단해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의 우리.

진심에 대한 갈구는 오래전 영화 라붐(1980)에 삽입된 노래 Realit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잠시 그 가사를 살펴보면 1절 코러스부분에서 Dreams are my reality a different kind of reality I dream of loving in the night and loving seems alright although it's only fantasy. (꿈은 다른 종류의 나의 현실이에요. 나는 밤이면 사랑을 꿈꿔요. 그러면 이게 환상이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노래하며 환상 속을 헤매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2절 Verse에서는 If you do exist, honey don't resist  show me a new way of loving tell me that it's true show me what to do (당신이 존재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는 새로운 방법을 말해주세요. 어떻게 할 지 말해줘요. 진실이라고 말해줘요.)라며 환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상대방의 진심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 곡의 진심에 대한 갈구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따뜻한 오후의 나른함과 닮은 소년의 옅은 공허는 결코 고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상의 현실화에 대한 신실함과 간절함과 순수, 그리고 용기가 베어 있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포근하고 달콤하게 스민다. 어떠한 냉소도 포함하지 않는다. 마치 노래가 끝나면 Reality가 이루어 질 것 처럼.

그에 비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동경만경(2004)>은 진실에 대한 고단한 갈구를 그대로 투영한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녀 주인공. 서로의 마음 속에 자리하지만 좀처럼 안정적인 관계로의 진입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서로를 탐색하고 의심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기를 반복한다. (초반에 여자는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속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만나 놓고도, 여러 번 서로의 몸을 탐해 놓고도.

"끝나는 게 싫으니까 서로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거 아냐?"와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과 몸을 부대끼는 걸 거라고..."라면서"'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소설의 내용에서 진짜 마음에 대한 절실하고 또 고단한 갈구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으로만 맺어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이라는 대사는 우리가 얼마나 진심에 목 말라 있는지, 그 진심을 얻지 못함에 얼마나 아쉬워하는지를 아프게 공감하게 한다.

그 순간만을 즐기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앞 일은 생각하지 말고 단지 그 순간을 즐기라고.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그 순간을 실컷 즐겼다. "이제 앞에 남은 건 미래뿐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소설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면서 결국은 어려운 숙제 같은 결론을 직접적으로 도출한다.

이에 대해 소설의 역자는 "왠지 끊임없이 상대를 탐색한다고 할까 믿으려고 하는데도 그게 좀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할까. 이것이 현대 인간관계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라고 말한다.

두 작품의 2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만큼이나 고단함이 더해진 진심에 대한 갈구는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빌어 그 모습을 보여줄지 아프게 궁금하다. 그 진심이 고백소 칸막이 안의 신부님의 얼굴처럼 결코 보려 해서는 안 되고 볼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길. 제발.



#진심#공허함#리얼리티#동경만경#라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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