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23일 오후 6시20분]"이 나라가 검찰 공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역사의 옳고 그름을 검찰이 재단할 수 있나. 유신 때도 이런 일은 없었고, 아마 일제 강점기 때도 없었을 것이다" - 이종찬 전 국정원장(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
최근 역사학자 이덕일(55)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김현구(72) 고려대 교수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것과 관련, 원로학자와 시민들로 구성된 '학문의 자유와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이 반발하고 나섰다.
23일 오전 시민모임은 서울시 광화문 뉴 국제호텔 16층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학자를 인질처럼 피고인의 신분으로 묶어놓고 윽박지르는 상황에서 학문의 본질인 자유로운 논쟁은 존재할 수 없다"면서 "어떤 문명국가도 이런 문제를 법정에서 판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014년 9월 이 소장은 저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 고려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가 쓴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식민사학이라고 규정해 명예훼손 혐의로 김 교수로부터 고소당했다. 지난 5일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이 소장이 명백한 허위사실을 근거로 학문의 자유 범위를 넘어 김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 이 소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1심 선고 이후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한국은 아직 식민지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법원의 판결이 학문의 자유를 제약한 중세의 갈릴레오 재판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하는 등 학계 일각의 반발에 부딪쳤다.
이 교수의 칼럼에 대해 서울지부지법은 이례적으로 "김 교수는 저서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하였다"면서 "1심 판결은 김 교수가 저서에서 '백제가 야마토정권의 식민지'라고 주장한 바도 없고, 일본서기를 사실로 믿지 않았으며, 임나일본부설을 명백히 비판하였다고 인정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모임은 김 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는 두 가지 상반된 기술이 상존하는데, 검찰과 법원이 김 교수 저서의 표면적 기술만 받아들여 그 이면을 비평한 이 소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또 시민모임은 이 소장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세종대 박유하 교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즉 박 교수 사건의 경우는 일본군의 강제 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을 비하했고, 할머니들이 역사를 공부해 반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순수한 학문의 장이 아닌데 반해, 이 소장이 김 교수를 비판한 것은 학자 대 학자의 구도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얼마든지 논문이나 책을 통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음에도 문제를 사법부로 가져갔고, 학문의 장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가 법정에서 단죄되었다는 지적이다.
시민모임은 "식민사학의 이면까지 분석해서 비판한 학자(이 소장)이 왜 조선총독부가 아닌 대한민국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고 징역형을 선고 받아야 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 소장에 대한 유죄선고는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허성관 전 광주과기원 총장(전 해양수산부·행정자치부 장관)은 "이 소장의 명예훼손 혐의가 유죄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학자가 더 이상 비판하기 힘들어졌다"면서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재판부가 우리의 상고사를 왜곡한 임나일본부가 역사학의 정설임을 확인해 준 판결"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허 전 총장은 "검사와 판사는 학문의 영역을 판결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며 "검사와 판사가 자신들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모임은 앞으로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이 문제를 공론화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 박정신 숭실대 재단이사, 허성관 전 광주과기원 총장, 황순종 <식민사학의 감춰진 맨얼굴> 저자, 윤홍배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