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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에 참여한 엄마와 아들. 나란히 깃발을 들고 행진한 두 모자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도보에 참여한 엄마와 아들. 나란히 깃발을 들고 행진한 두 모자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 정영은

"위로 올라오긴 했나봐. 약간 싸늘해졌어."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며,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처벌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걸은 것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도보순례 9일차인 19일, 농도 전북에서의 마지막 도시, 익산 함열읍에서 도보를 시작했다.

한적한 2차선 도로를 하염없이 걸어가는데 건너편 차선에서 차를 몰고 가시던 분이 차를 멈추고서는 행진대열이 다 지나갈 때까지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응원해주신다. 도보단의 걸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납덩이처럼 무겁던 다리가 한결 가벼워지면서 서울까지 단숨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 된다. 이후 길에서 도보순례단을 발견하신다면 꼭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대건 신부가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처음 발 디딘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는 나바위 성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의 중간에서 도보단을 마중나온 논산농민회 회원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조금 더 걷다보니 논산시 강경읍에 도착했다는 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강경역에서 5일간의 전북 일정을 마무리하며, 전라북도의 농민들과 충청남도의 농민들이 결의를 다졌다. 조상규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2월 27일 4차 민중총궐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역에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늘어나는 농가부채, 생산비 보존도 안 되는 농사

 강경역에서 전라도와 충청도의 농민들이 결의를 다졌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강신명 경찰청장 파면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
강경역에서 전라도와 충청도의 농민들이 결의를 다졌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강신명 경찰청장 파면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 ⓒ 정영은

논산농민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의 간식은 딸기였다. '아, 우리 논산에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논산은 전국 딸기 생산량의 14%를 차지할 만큼 딸기 생산량이 많은 도시이다. 그렇지만 농민들의 얼굴은 밝지 않다. 수입 농산물로 인해 딸기의 소비는 감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가격도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창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최외순씨는 주변에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일 같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거창은 포도와 사과 농사를 많이 짓는데, 올해 포도농가 소득이 1/4까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 해에 4천만 원 벌던 사람이 1천만 원 버는 꼴이 된 거지요. 수입 포도 판매가 늘어나니 그런 거예요. 이러니 누가 농사짓고 싶겠어요. 생산비 보존도 안 되는데."

"이게 다 기본적으로는 쌀값이 떨어져서 발생하는 일이예요. 쌀값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논에다 다른 작물을 심게 돼요. 그럼 그 작물이 몰려서 가격이 또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딸기가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젊은 농민들은 가공이나 직거래를 많이 하려고 해요. 가공은 된장, 고추장이나 강정 이런 것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사실 농사지어서 생활이 유지 되면 가공 이런 거 하겠어요? 그게 안 되니까, 어려우니까 가공에 뛰어드는 거지. 그리고 이 가공도 실제로 중소규모의 농가공은 경쟁력이나 판매처 확보가 어려워요. 지역 로컬푸드 같은 것이 잘 되어 있으면 모를까. 그런데도 정부는 뭣도 모르고 농산품 6차 산업(농산품 제조와 가공, 유통판매, 관광서비스 산업을 연계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 장려한다고 하고..."

2015년 11월 14일 농민 백남기가 외쳤던 구호에는 농산물 가격보장의 내용도 담겨있었다. 생산비는 해마다 증가하여 농민들의 소득은 줄고 부채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정부는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농업경영비는 2천187만 원으로 전년대비 6.1% 증가했으나, 농업소득은 전년대비 2.7% 증가에 그쳤다. 여기에 농가부채는 2천787만 원으로 전년대비 1.9%나 증가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농민들이 제안했던 것이 바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지원조례 제정'과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이었다. 현재 정부가 가격 지지정책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매비축사업은 그 수매량이 적을 뿐 아니라, 가격도 너무 낮게 책정되어 생산자를 위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지원조례는 농산물의 적정한 가격 안정을 유지하며 해당 품목을 재배하는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농안법에 근거한 최저가격 보장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는 농산물이 과잉생산 되었을 때 폐기를 전제로 하여 최저생산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사전에 막을 수 있으며 농민들에게도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구조이다. 생산비가 보장될 뿐 아니라, 농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가격이 보장된다면 특정 농산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수급조절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되고 농민과 소비자들도 가격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농산물 가격의 폭락과 폭등의 책임을 오롯이 농민들에게만 전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이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기초농산물(5대 곡물, 7대 채소, 3대 과일, 한우 등 총 16개 품목)의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며 조정하여 가격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농민의 길(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친환경농업인연합회)은 지난 11월 14일 내세웠던 10대 요구안에 이 2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오후 6시 도보를 마치고 나서 논산오거리 한편에서 논산농민회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농민들은 한 목소리로 어려운 현실과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기세와 힘을 모아 2월 27일까지 지치지 말 것,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다짐을 나누기도 했다.

"1% 국민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한 싸움"

 유인물을 나눠주는 부여 여성농민들. 주말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아쉽게도 거리는 약간 한산했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부여 여성농민들. 주말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아쉽게도 거리는 약간 한산했다. ⓒ 정영은

 대전시내를 걷는 도보단의 행렬.
대전시내를 걷는 도보단의 행렬. ⓒ 정영은

도보 10일차,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태 발생 99일인 20일 일정은 논산시청에서 시작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방송을 하면서 유인물을 나눠드리기로 했다. 아직 열지 않은 가게에 유인물을 넣어두기도 했다. 논산시민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멈춰 서서 듣기도 하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 날은 해프닝이 많은 날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머피의 법칙 같은 일이 많은 생기는 날이었다. 너무 한산한 길로 간다며 길을 선회하기도 했으며, 어떤 남성이 도보단에 나쁜 이야기를 하며 도보단 행렬을 영상으로 촬영하자, 화난 농민들과 언쟁이 붙는 일도 있었다.

도보단에 야유하는 국민들을 만나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여정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남기라는 농민이 쓰러져 있음을, 이 참혹한 국가폭력에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음을 알리기 위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현실만을 믿으려는 국민들을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걷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나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차량으로 대전으로 이동해야 했다. 논산에서 대전은 하루를 꼬박 더 걸어야 하는 거리. 저녁에 있을 100일 문화제에 참석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대전 시내를 걸으며 도보순례의 의미를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계룡을 건너 대전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도 해프닝이 발생했다. 오후 2시 반,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까지 걷고 대전에서 도보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만나 다시 문화제가 진행될 대전시청까지를 걷는 일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2시 대전의 시민사회단체 분들과의 간담회 일정이 있었던 것.

도보단은 부랴부랴 차를 돌려 간담회 장소로 향했다. 간담회에는 대전의 많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뿐만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도 참석해 있었다. 유경근 세월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세월호나 백남기 투쟁이 외로운 싸움이 되는 것은 이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1프로의 국민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이야기 했다.

한편,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부 도보단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서 자체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으능정이 거리에서 도보단의 이야기를 듣던 젊은이들은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한 젊은이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되도록 어느 누구 하나 사과하고 있지 않다는 말에 "윗선에서 묵인하겠다는 거네요?"라고 답변하며 도보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난 후 2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여 으능정이 거리에서부터 대전시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방송차량에서는 '백남기 농민을 아시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지난 11월 14일에 있었던 국가폭력 사건과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보순례단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살인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 '경찰청장 파면하라',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전시내를 걸었다. 많은 기자들도 도보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많이 실었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 농민은 단결만이 살 길

중부권에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농민들도 함께 했다. 보령군 주포면에서 20년째 농사짓고 있는 이종협씨는 3만평 쌀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작년 쌀값 폭락의 문제가 매우 심각했는데, 농민들이 대응하지 않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 보령의 경우 다행히 수매 자체에 어려움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수매가격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산지 조곡 40kg가 4만5천 원 선에 수매되었고, 지난해 대비 1만 원이 떨어진 가격에 수매되었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이나 생산비를 고려해서 가격이 책정되어야 하는데 생산비도 보장되지 않는데다가 교육비 등의 고정비용은 계속 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민들이 택하는 방법은 광작, 즉 규모화라는 말도 덧붙였다. 평균가가 떨어지니 생산량을 늘려서 나머지를 보존하려 하기 때문에 계속 농지규모를 늘리게 되고 자동적으로 일도 많이 늘게 되었다고도 했다.

"쌀값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사실 농민들은 잘 모르고 있지요. 전국 평균가격을 잡아서 계산한다. 이런 것들요. 또, 순수하게 산지 쌀값을 적용해서 계산해야 하는데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가공하는 가격까지 다 포함시켜서 생산가를 잡으니,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훨씬 적다는 사실도 잘 모릅니다."

그는 "가장 크게는 외국 쌀을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며 "남북교역을 통해 남는 쌀을 해결하는 것도 방안"이라고도 덧붙였다.

전주에서 온 장종혁씨는 귀농 11년차 농부로 블랙베리, 오디, 곶감 등의 농사를 짓는다. 베리류의 가격이 많이 떨어져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격 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덧붙여 가격이 왜 떨어지는 것 같느냐는 질문에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비를 해야 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 당연히 모두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대기업들이 수입농산물 특히 수입과일을 사용해서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며 "정부 정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이용하거나 투기를 통해서 돈을 버는 1%의 대기업들이 농민들과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단결만이 살 길이야, 농민들도 국민들도 단결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도 이야기했다. 도보 초반에도 참석했던 그는 도보순례를 시작하던 날 광주교구의 이영선 신부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루에 한 사람씩만 사귀라, 그것이 정부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여기에 오면 꼭 사람을 사귀고 있어."

함안에서 토마토농사를 짓는 한승아씨는 눈치를 보며 작물에 심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농사가 변수가 많아지고, 내수용은 특히 가격 폭이 커지다보니 서로 눈치를 보며 작물을 심게 되었다"며 "토마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생육기간이) 짧은 오이를 심는다, 오이는 한 달에서 한 달반이면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농사를 망치게 되는 원인에 대해 물었더니 "기후변화 때문"이라며 "예전에는 겨울에 건조했는데 요즘은 따뜻하고 습해지다보니 농작물에 곰팡이병 같은 것이 많이 생겼다, 역병 같은 것도 많이 생겨 한 타임의 농사를 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날, 춤을 추기로 기약했다

 도보순례단 중 가장 연장자이시면서 가장 오래 걸으신 최종대 어르신의 발언. 어르신이 생신이 도보순례 11일차, 사건 발생 100일인 21일이셨다. 어르신은 다음날 많은 도보순례단과 함께 팔순을 맞이하셨다.
도보순례단 중 가장 연장자이시면서 가장 오래 걸으신 최종대 어르신의 발언. 어르신이 생신이 도보순례 11일차, 사건 발생 100일인 21일이셨다. 어르신은 다음날 많은 도보순례단과 함께 팔순을 맞이하셨다. ⓒ 정영은

빠른 속도로 걷는 것에 피로감이 누적된 도보단원들 중 일부가 다소 힘겨워했으나 모두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묵묵하게 대전시청으로 향했다. 애초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대전시청 앞 공원에 당도하였다. 인근에 도착하자 흥겨운 풍물가락이 도보단을 반겼다. 평소 풍물을 좋아했다던 백남기 농민이 생각나 참가단 모두가 즐겁기 보다는 뭉클해졌다.

문화제는 다채로운 문화공연과 발언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오신 공연팀들이 국가폭력의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셨다. 백남기 농민의 사건을 춤으로 보여주신 팀부터 마음을 담은 노래 공연들,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 어르신과의 만남을 극화한 공연까지 추운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문화제에 함께 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같이 부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노랫말처럼 아픈 다리를 서로 기대며 마침내 하나 되는 그 날을 꿈꾸었다. 백남기 농민이 깨어나고 책임자는 처벌되었으며 대통령은 사과한 그 날, 우리 모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평화의 밀밭으로 가게 되는 그 날을 기약하며 손을 맞잡았다.

 세월호 가족들도 문화제에 함께 했다. 세월호와 백남기의 만남이 참가자들의 눈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세월호 가족들도 문화제에 함께 했다. 세월호와 백남기의 만남이 참가자들의 눈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 정영은

2015년 11월 14일 저녁 아비규환 속 지독히 귓가를 울리던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농민 한 명이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갔다!"라던 외마디 소리가 아직도 떠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에게 3개월여 전 영상을 틀어줘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그 어떤 것도 바뀐 것이 없다. 경찰, 정부관계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민들만이 이 엄청난 국가폭력 사태에 함께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도보순례단이 도착하는 곳마다 지역에서는 따스한 숙소와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해주셨다. 걷는 이들 고생한다며 며칠 전부터 준비해 따끈한 밥 한끼라도 대접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눈에 선했다. 의료진의 손길도 이어졌다. 밤마다 침을 놓아주겠다, 약을 지원하겠다, 수액을 가져왔다는 의료진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문화제 이후 공연에 참석했던 광주와 대전의 공연팀들은 공연비를 묻는 대책위에 손사래를 치며 백남기 농민과 도보순례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히려 후원금을 입금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들의 눈에 지금 걷는 우리는 기껏 한줌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걷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노동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도보순례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생명으로 가는 길, 살림으로 가는 길의 여정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100일. 국민들은 바뀌고 있다.

이후 도보순례는 충남을 거쳐 경기와 서울로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백남기#책임자처벌#도보순례#민중총궐기#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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