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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 비상사태'란 이유로 테러방지법안을 상임위원회 의결 없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했다. 이에 해당 법안을 반대해 온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은 47년 만의 필리버스터로 응수했다.

필리버스터란 국회에서 다수당 횡포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의미한다. 김광진 의원 등 발언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안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직권상정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중동' 보도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조중동 행태 ①] 방해 행위임을 부각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런 행태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방해 공작일 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제목들이다.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인 "필리버스터에 막힌 테러방지법"의 경우 제목도 그렇거니와 소제목도 "더민주, 법안 통과 막으려 43년 만에 무제한 토론 나서", "의원 5분의 3 찬성해야 중단", "새누리 '입법 방해말라' 규탄"으로 뽑았다.

<조선일보> 1면 보도인 "선거구 합의…수도권 10석 늘고, 경북 호남 2석씩 줄어"는 제목에서는 이런 의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보도내용은 같았다. 기사는 "더민주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하면서 이날 법안 처리는 무산됐다, 여야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북한인권법 또한 야당이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반발하며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통과가 무산됐다"며 야당이 테러방지법을 왜 반대하고 있는지가 아닌, 야당이 법안 통과를 막고 있는 상황만을 강조했다.

[조중동 행태 ②] 테러방지법 문제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회에 47년에 일어난 초유의 사태의 원인인 테러방지법 관련 독소조항이 무엇인지는 짚어보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모든 보도에서 '테러방지법을 왜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했다.

<조선일보> "사설/야, 테러 한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 건가"는 "주요 선진국 중 전담 조직과 법이 없는 나라는 극소수", "법안에는 인권침해를 막는 조항이 들어 있지만 야당은 반대하고 있다"라며 법안의 문제가 별로 없는 것인 양 전했다. 그러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어떤 보완장치가 있으며, 그 보완장치는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문제없다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조중동 행태 ③] 뒷담화, 해프닝 위주로 보도한다

필리버스터 과정 중에 해프닝에 초점을 맞춰 야당을 비꼬는 보도도 있었다. <조선일보> "47년 만에 재등장한 '필리버스터' 더민주 의원 108명이 발언 요청"(2면)에서는 "장기간 발언으로 입술이 말라오자 물을 들이켜는 횟수도 잦아졌다", "김 의원이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자 야당 의원석에선 '물 많이 먹으면 화장실 가야 하니 입술만 축여'라는 말이 나왔다", "어느 의원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엎드리기도 했다"는 식의 필리버스터 풍경 소개에 주력했다.

입법을 방해할 목적으로 길게 연설하는 행위만 부각하는 보도태도는 <중앙일보>에도 있다. "더민주 '100명이 5시간씩 필리버스터 땐 보름 버틴다'"(4면)는 "무제한 토론 첫 주자로 나선 더민주 김광진 의원은 느릿느릿한 어조로 발언을 시작했다", "김 의원은 '테러의 정의' 등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라고 보도했다.

주위에서 "'말 천천히 해'라고 훈수를 둔 야당 의원도 있었다, 2시간쯤 지난 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잘 하고 있다, 4시간만 더하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야당이 법안 통과에 어깃장을 놓으며 주도권을 잡았다는 식의 비아냥거림만 담을 뿐, 김광진 의원의 발언 핵심, 테러방지법 반대의 요지는 전하지 않았다.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담지 않고 필리버스터 행위에 주목하는 보도 태도는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다. "'총선 역풍' 우려 컸지만…이종걸 '결사항전때 파괴력' 강행"(3면)의 경우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추진한 상황 전달에 주력했다. 왜 반대하는지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사 말미에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백군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테러방지법에 찬성한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상세히 덧붙였다.

[조중동 행태 ④] 야당 어르고 달래기

<중앙일보>는 "사설/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에서 더민주에 나중에는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식으로 어르기에 나섰다. <중앙>은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권력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기에 자기들이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야당은 오히려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국정원의 정보 능력 향상이라는 관점도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정보 수집 권력을 제공함으로써 심각한 인권침해와 정치(선거) 개입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문제가 있는 법안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감시에 나서야 할 언론이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는 전해주지 않으면서, '나중에는 야당에도 좋을 것'이라니. 국민 인권은 어떻게 되던지 관심 없고, 권력에 유·불리한 것만 보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사설/야, 테러 한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 건가"는 "국제 제재에 몰린 북한은 언제든 공항·항만 등 우리 주요 시설물과 고위 탈북자 등 주요 인사에 대해 테러를 가할 수 있다, 이슬람국가(IS) 등 국제 테러 조직에 의한 공격 위험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야당은 테러 공격으로 국민이 피해를 본 후에야 테러방지법을 처리하자고 할 것인가", "북이 핵·미사일 도발에 이어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하는 상황에서 왜 끝까지 법안 처리를 막는지 합당한 이유를 대야 한다"는 등 야당이 국민을 테러 위협에 노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미-중에 한반도 운명 맡기고도 정치권은 정쟁인가"에서 필리버스터를 각 당의 당리당략에 기반을 둔 정쟁 수준으로 축소했다. 사설은 "한반도 위기의 해법을 강대국에 맡긴 참담한 상황인데도 여야는 어제 종일 테러지원법, 북한인권법의 국회 처리를 놓고 정쟁에 골몰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테러방지법안을 직권 상정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로 맞서 국회 처리가 진통을 겪었다, 북한인권법 처리 역시 사실상 물 건너갔다"라며 야당 비판에 좀 더 주력한 양비론을 내세웠다.

<한국일보>는 테러방지법 자체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았으나, 법안의 문제점을 짚기보다는 "총리실 산하에 대테러센터 두고 국가정보원에 정보수집권 부여"(3면)에서 여당이 강조 중인 "정보수집권을 국정원장에게 부여하는 대신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두고 관련 공무원이 권한을 오ㆍ남용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등의 보호장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또 "법안은 테러를 기획 또는 지휘하거나(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테러 단체를 지원하는(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등의 테러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고 강조한 뒤 "지난해 12월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알누스라 전선'을 추종한 인도네시아인 A씨가 국내에 불법 체류한 사실을 적발했으나 경찰은 처벌 규정이 없어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만 구속 기소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남용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있으며, 기존 법안으로는 테러를 모두 방지할 수 없다는 이 같은 주장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조중동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향> <한겨레>는 달랐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테러방지법의 문제로 '국정원의 권한 남용 우려'를 부각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원에 영장 없이 계좌 등 정보수집권…'사찰 합법화' 우려"(4면)를 통해 해당 법안이 "국정원에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출입국·금융거래·통신이용 등 정보 수집권을 부여했"으며 "내국인 감청 폭을 확대"하고, "'테러위험인물' 규정이 모호하고 정보수집 권한도 지나치게 넓"은 상황에서 국정원에 "'대테러조사 및 테러위험인물 추적' 권한"을 부여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영장주의와 모든 보호장치가 다 무너지"게 됐음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 이 같은 국정원 활동이 "감시·통제하기 어렵고 인권보호관 권한도 불명확하다"는 점에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겨레> 역시 "국정원 '테러 의심'만으로 감청…영장 없이 계좌추적도"(2면)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조작 댓글 공작을 벌였던 국가정보원은, 2013년 국정원 개혁을 좌초시킨 데 이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테러위험 의심자에 대한 휴대전화 감청과 금융정보 추적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은 대공·방첩 분야가 아닌 테러 의심자에 대해서도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한 감청(영장 필요), 특정 금융거래 정보 보고·이용법(FIU법)에 따른 금융정보 수집(영장 불필요)이 가능"해지고 "국정원이 요구하면 영장 없이도 금융위원장이 금융정보를 내줘야 하는데, 이는 대공·방첩 수사에도 국정원이 가져보지 못한 권한"이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런 상황에서 이 같은 활동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음을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내국인인지, 해킹이 아닌 감청을 했는지 등은 국정원이 '실토'를 해야만 알 수 있는 구조"이며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감독 기능도 실효성이 없는 상황에서 단 1명의 인권보호관은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1면 보도인 "'준전시'라며 테러방지법 강행…필리버스터로 맞선 야당"(1면)에서도 필리버스터에서 나온 야당의원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김기준 더민주 원내대변인의 "국정원에 무차별적인 정보수집권과 조사권, 감청권을 추가로 부여해 괴물 국정원을 만들려는 의도는 국정원의 상시적인 정치 개입과 다가올 총선과 대선 개입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이번 테러방지법이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 주장은 모니터 대상이 된 6개 일간지 중 <한겨레>만 유일하게 보도했다.

모니터 대상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의 종이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한 KBS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23일 오후 7시 경, 김광진 더민주 의원으로 시작된 '필리버스터' 연설에서 더민주는 독소조항 삭제와 대테러센터장에 국정원장 임명 금지, 여야 합의로 상설감독관 설치, 국정원 정보수집활동의 국회보고 등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무소불위 국정원'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편인 필리버스터가 실시됐지만 방송사들의 보도태도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테러방지법의 쟁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통상적인 여야 대립 사안으로 처리했다. 심지어 KBS는 노골적으로 테러방지법 통과를 촉구했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야 '무제한 토론'"는 김광진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고 언급한 후 "정의화 국회의장은 IS 등의 국제적 테러와 최근 북한의 도발로 국민 안위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직권 상정 요건인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된다며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며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지는 "테러정보 수집, 조사 권한 국정원 부여"에서는 "국정원은 테러 위험 인물의 금융기록을 조회하고 통화 내역을 감청", "테러 위험 인물의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대테러 활동을 위한 현장 조사나 문서 열람, 진술 요구,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한 추적이 가능",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산하에 인권보호관을 두도록" 등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하려는 테러방지법의 내용을 선전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테러방지법 홍보 보도를 따로 덧붙인 방송사는 이날 KBS뿐이다.

MBC, SBS, TV조선, YTN은 모두 1건씩 보도하면서, 테러방지법의 문제점과 쟁점은 언급하지 않고 회기 말까지 토론을 이어간다는 더민주의 방침과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새누리당의 대립만을 전했다. 채널A는 2건이었지만 내용이 다르지 않았고 MBN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JTBC만 3건의 보도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JTBC "더민주 '필리버스터' 돌입"은 "테러방지법은 국내외 테러 위협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인 대테러센터를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당초 새누리당은 이 센터를 국정원에, 더민주는 국민안전처에 둬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첨예한 대립 끝에 여당이 어제 이 센터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고 국정원에 금융계좌 조사와 통신 감청 등 테러정보 수집권한과 테러위험 인물이 있을 경우 조사, 추적권을 주는 권한을 주는 안을 발의했는데요, 하지만 더민주는 국정원에 정보수집권한을 줄 경우 권력남용과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며 계속 반발하고 있습니다"라며 주요 쟁점을 설명했다.

건조해도 너무 건조한 <연합>

<연합뉴스>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이 '준전시 상태'를 명분으로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것에 대한 기사 "정의장 '국민안전 비상상황…테러방지법 미룰 수 없다'"(2/23 20:12) 등에서 지금이 왜 준전시 상태인지에 대해 정 의장의 견해만을 소개했을 뿐 그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내놓지 않았다.

기사는 정 의장이 "지금은 국민안전 비상상황"이라면서 "북한의 위협은 물론 국제 테러리즘을 막기 위한 국제공조 차원에서도 테러방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회가 테러방지법 제정 등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동안 만에 하나 테러가 발생한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더없이 큰 죄를 짓게 되는 것",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자문과 검토를 했다"며 당위성을 역설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이런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와 관련, 전문가 등의 견해를 통한 자체 검증 보도는 없었다. 정 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한 지적은 야당의원들의 반발을 전한 것이 전부였다. <연합뉴스>에 관련 보도는 "이종걸 '테러방지법 인권침해 요소 변경되면 통과 가능'"(02/24 10:02)과 "국민의당 '조정역할 할 것'…'필리버스터' 대치 중재 자처"(2/24 11:17)뿐이었다. 

한편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한택근)과 참여연대 등은 '정 의장의 판단은 명백한 법률해석의 오류임을 지적하면서 테러방지법의 직권상정에 반대한다는 것을 결연하게 밝힌다'는 내용의 비판 성명을 발표했으나, <연합뉴스>는 이와 관련해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테러방지법은 무려 10개 이상 되는 관련 법안의 통칭이다. 그 중 대다수 법안은 테러 및 사이버테러 방지를 이유로 국정원이 민·관·군을 지휘하도록 하는 등 국정원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가 긴급성명을 발표하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음에도, <연합뉴스>는 자체 검증 보도는커녕 이 같은 '반대' 목소리조차 기사에 일체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민언련 활동가 배나은(신문), 이봉우(방송), 고승우(연합)입니다.



#민언련#필리버스터#더테러법#더민주#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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