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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산토메성당 지하층 1504년 포르트칼인들이 이곳에서 도마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뼈 등을 확인하고 그 위에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도마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산토메성당 지하층1504년 포르트칼인들이 이곳에서 도마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뼈 등을 확인하고 그 위에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 김광철

서울과 경남 지역 교사들 중심으로 꾸려진 교사 연수단은 1월 7일 오후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타밀나두의 주도 첸나이로 향했다. 첸나이는 인구가 750만 명에 이르는 인도에서 네번째 큰 도시라고 한다. 옛날부터 이곳 남인도 지역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고 있는 거대 도시인 것이다.

첸나이에는 우리 교민들이 4천여 명 정도 거주할 정도로 많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몇 년씩 머물다 돌아가는 주재원들이라 한다. 2014년에는 영사관이 개설되어 이곳 남인도 일대의 영사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도시인 것이다. 특히 이곳은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여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첸나이 시내를 굴러다니는 자동차들 중 한국산이 20% 정도에 이를 정도로 한국 자동차들과 삼성, 엘지 등 우리 나라의 통신기기 등 전자제품이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이곳 타밀나두는 북인도 지역의 인도인들과는 달리 드라비다족의 일종인 타밀족이 대부분이며, 이들 중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옛날부터 벼농사를 지어 쌀을 주식으로 하며,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부지런하여 생활수준도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타밀나두주는 물론이고 남인도 일대와 스리랑카 북부 지방에 많이 모여살고 있는 타밀족의 언어가 우리말과 매우 유사하게 쓰는 말들이 1300여 개나 된다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타밀연구회 추적 조사 결과표 등을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우리와 닮은 타밀족의 놀이와 언어

세인트조지성 안의 관공서들 세인트조지성 안에는 타밀나두주의 관공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세인트조지성 안의 관공서들세인트조지성 안에는 타밀나두주의 관공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 김광철

센인트조지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등 요즘 IS테러 등으로 인하여 인도 전역에는 이와 같이 경비가 삼엄했다.
센인트조지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등요즘 IS테러 등으로 인하여 인도 전역에는 이와 같이 경비가 삼엄했다. ⓒ 김광철

이곳 타밀나두주의 타밀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우리나라의 이웃이나 마을 공동체와 같은 방식의 공동체 생활을 많이 하고 있다. 윷놀이, 쥐불놀이,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놀이들이 이곳 타밀나두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도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 옛날 교통도 아주 안 좋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교류가 있었는지 참으로 미스테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 저러한 연구 결과나 역사적 기록을 볼 때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정착한 우리 민족의 약 절반 가량은 이곳 남인도의 타밀족과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가야와 신라의 지배 세력 중 일부는 이곳 도래인일 수 있다는 추정을 해보면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결과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학계에선 우리 민족은 북방 유목민 출신이며 언어도 거기서 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지난 2004년 5월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분석한 결과 60% 가량이 북방의 몽골족 등 북방 유목인의 유전자 형을 보였고 40% 가량은 동남아시아 등 남방 사람들의 것과 같은 유전자형을 지니고 있다고 밝혀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보면 가락국의 김수로왕 부인인 허황후가 이 지역 사람이라는 것이다.

2014년 첸나이에 영사관이 세워지고 초대 총영사인 김경수 총영사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을 보자.

"가끔 길에서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면 현지 소녀 아이가 내가 아닌 자기 아빠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마∼' 하며 칭얼대는 아이들 모습이 마냥 정겹게 느껴진다. 타밀어가 한국말과 공통된 것이 많다는 것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헤이그 밀사 파견을 도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헐버트 선교사가 1905년 주장했다. 논밭의 풀을 똑같이 풀이라 하고, '이리 와'는 '잉게 와'라고 해 발음이 비슷하다.

남인도 동해안의 타밀나두 사람들은 우리하고 닮은 게 많다. 북인도와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곳의 농부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한국의 농촌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되기도 한다. 약과, 송편과 흡사한 음식을 먹고 자치기 놀이를 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친다. 댕기 머리나 쪽 찐 머리를 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저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후략)"

우리 총영사관이 있는 인도 제4의 도시 첸나이

세인트조지성의 박물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포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첸나이에 세인트조지성을 쌓고 동인도회사를 세워 식민통치를 했다고 한다.
세인트조지성의 박물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포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첸나이에 세인트조지성을 쌓고 동인도회사를 세워 식민통치를 했다고 한다. ⓒ 김광철

인도의 여성 경찰들 세인트조지성 입구에서 출입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주변 경계를 하고 있는 인도 여성 경찰들
인도의 여성 경찰들세인트조지성 입구에서 출입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주변 경계를 하고 있는 인도 여성 경찰들 ⓒ 김광철

우리 일행은 트리밴드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날아서 첸나이공항에 도착했다. 첸나이 미국영사관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AVENUE11'이라는 이름의 빌라에서 묵기로 했다. 3성급인 빌라인데, 지은 지 2년 밖에 안 되어 무척 깨끗하고 종원들도 참 친절하였다.

저녁 늦게 도착해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도 그 호텔에서 하게 되었는데, 식사 내용도 다들 만족할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하루 밤을 묶고 나서 아침에 주변 산책을 나섰던 정대화 선생은 우리 숙소에서 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한국총영사관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우리 총영사관 직원을 만나 총영사관저에 들러 차도 한 잔 얻어마시고 왔다고 한다.

시간 되면 한 번 방문을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다음 일정이 촉박해 영사관에 들를 수 없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만약에 영사관에 들렀다면 이곳 인도 학교를 견학할 수 있게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갑자기 방문하여 학교 탐방을 가보겠다는 부탁을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교사들이기 때문에 교육 관련하여 궁금증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시내 투어를 나갔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관문에 세워진 세인트조지성

성메리 교회 세인트조지성 안에는 영국인들이 세웠던 영국교회인 성메리교회가 아직도 건재해 있었다.
성메리 교회세인트조지성 안에는 영국인들이 세웠던 영국교회인 성메리교회가 아직도 건재해 있었다. ⓒ 김광철

먼저 찾은 곳은 세인트조지성이다. 영국이 인도 침략을 위해 진출하면서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에 성을 쌓고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본격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첸나이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잠시 프랑스에게 점령 당하긴 했지만 곧 이들을 격퇴해 영국이 인도에서 물러날 때까지 인도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

가서 보았더니 영국인들이 물러난 자리를 그대로 인도인들이 접수, 주지사 집무실을 비롯해 각종 공공기관들이 자리를 잡고 타밀라두 주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성 주변에는 출입문에서부터 주변에 경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기도 하였다. 요즘 IS 테러 때문에 인도의 각 공항에서도 그렇고 이런 관공서에서도 통제가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성에 들어가서 처음 찾은 곳이 박물관이다. 영국이 인도 점령 이후의 기록들을 살필 수 있는 그림, 그릇,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마침 월요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다. 다만 박물관 바깥 쪽에 성터답게 당시 사용했던 포대와 성벽, 각종 포 등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성 안 쪽 5~6층 되는 기다란 건물에는 각종 기관들이 들어있고, 그 한 구석에는 성메리교회가 있었다. 인도를 지배할 당시 영국인들이 세운 영국교회가 오늘날까지 남아 관광객을 맞기도 하면서 예배당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영국은 이곳을 식민지로 개척하여 거대한 성을 쌓았지만 사실 인도인들과 전쟁을 하기보다는 유럽의 프랑스나 네델란드 등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기 위한 목적이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한말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일본, 청, 러시아 등이 각축을 벌이면서 남의 땅에서 전쟁을 했던 약소국의 설움을 아는 국민으로서 괜스레 영국이 밉고, 인도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신고딕양식의 산토메성당 16세기에 포르트칼인들에 의하여 도마 무덤 위에 세워진 산토메성당의 모습
신고딕양식의 산토메성당16세기에 포르트칼인들에 의하여 도마 무덤 위에 세워진 산토메성당의 모습 ⓒ 김광철

산토메성당 입구에 세워진 요한바오로2세의 동상 요한바오로2세 교황이 이곳을 직접 찾아 미사를 집전하는 등 예수의 12제자 중 1인인 도마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산토메성당 입구에 세워진 요한바오로2세의 동상요한바오로2세 교황이 이곳을 직접 찾아 미사를 집전하는 등 예수의 12제자 중 1인인 도마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 김광철

예수의 제자 도마의 무덤이 있는 산토메성당

세인트조지성 안에서는 다음 일정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툭툭을 타고 이동하여 첸나이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의 시신이 안치되었다는 산토메성당을 찾았다. 전세계적으로 예수의 제자 무덤이 있는 곳은 세 곳인데, 그중의 하나인 것이다. 건물은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건물의 내부나 외부에 대단한 것은 없었다. 평범한 교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의 무덤이 있어 교황 바오로 2세가 직접 찾은 교회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목수인 사도 도마(Thomas)는 인도의 군다 포로스왕에게 팔려가 왕으로부터 넉넉히 돈을 받고 궁전을 세우라는 명을 받는다. 그러나 도마는 그 돈으로 궁전을 세우질 않고 빈민들을 구제하는데 다 써버렸다고 한다. 왕이 도마에게 궁전을 세웠는지 확인했더니 '당신께서는 지금 당장 그것을 보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날 그것을 보실 수가 있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처음에는 대노하였으나 나중에는 왕도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도마가 인도에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할 수 있게 허락했다 한다. 도마는 전도를 하던 중 바라문교도들에게 창에 찔려 죽었다는데, 1504년 포르트칼 사람들에 의하여 도마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 교회를 세우니, 그 교회가 산토메성당인 것이다."

첸나이 변두리의 한 백화점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아서 백화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국에서와 같이 고급스런 제품들은 많이 없지만 많은 쇼핑객들이 찾고 있는 것이다.
첸나이 변두리의 한 백화점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아서 백화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국에서와 같이 고급스런 제품들은 많이 없지만 많은 쇼핑객들이 찾고 있는 것이다. ⓒ 김광철

첸나이는 거대도시답게 중심지에는 넓은 도로에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변두리로 가면 소와 염소, 개, 닭 등 가축들이 걸거리를 배회하고 포장이 안 되어 있는 좁은 도로에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 빈민가들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쓰레기들은 아무데나 버려져 있고, 파리 떼들이 극성을 부린다. 한국의 1950~1960년대의 동네 풍경과 바를 바 없다.

이렇게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인도의 제4대 도시, 2억 5천 타말족들의 거점 도시인 첸나이는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무궁한 도시라고 한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중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지만 인도, 특히 이곳 남인도 지역은 높은 교육열과 젊은이들이 많아 성장 경제 성장 동력이 큰 지역이라고 한다. 현재는 도시보다는 주변 농촌 지역 거주 인구가 많아서 이 지역이 산업화가 된다면 많은 농촌 인력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커다란 경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 한다. 특히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타밀족들의 집단 거주지역인 이곳 남인도가 갖는 매력인 것이다.

경혼 30주년 기념 파티 민곤샘 부부가 경혼 30주년 기념으로 이번 여행에 참가하여 첸아이의 한 식당에서 즉석 기념 파티를 마련하여 축하해 주고 있는 우리 일행들
경혼 30주년 기념 파티민곤샘 부부가 경혼 30주년 기념으로 이번 여행에 참가하여 첸아이의 한 식당에서 즉석 기념 파티를 마련하여 축하해 주고 있는 우리 일행들 ⓒ 김광철



#타밀나두주#첸나이#산토메성당#세인트조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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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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