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오후 7시 성남시청 1층 온누리홀에서 작은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침묵하지 않는다", "국가가 한 짓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무기수 김신혜 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재심을 맡은 변호사 박준영. 맨주먹으로 국가의 불의와 맞장 뜬, 무모하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두 사람이 뭉쳤다.
바로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그러나 소금 같은 변호사'라 불리는 고졸 출신 박준영 변호사.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신념을 가진 박상규 기자. 그 둘의 행보는 Daum 스토리 펀딩 2억여 원의 취재후원을 이끌어냈다. 그런 그들이 '맞짱'이라는 토크콘서트로 우리들에게 찾아왔다.
어렵지만 끝까지 간다
"마이너스 통장이 저에게 여유자금입니다."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업하는 사람은 여유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오히려 마이너스 통장을 운용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기수 김신혜 재심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마이너스 통장이 극한의 상황까지 몰렸다고 말했다. 또한 마이너스 통장의 금액이 내려갈수록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상황을 감수한 이유는 "돈이 줄어드는 것이 저한텐 불이익일 수 있겠지만, 그 감옥 속에서 억울하게 16년을 산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어디있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그걸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희생이 이거라면 해야 된다"는 결심을 상기했다.
무기수 김신혜의 재심 사건, 익산 택시 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그는 이 사건을 공론화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들과 끝까지 갔을 때 이 사회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며 속내를 밝혔다. (관심 갖지 않는) 언론의 문제, 사법시스템의 문제들.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들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가고 어떤 변화를 일으켜줄까"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이 "이 사건들과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있는 결과를 위해서 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정의 기록이 분명히 존재해야 또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며 자신이 처한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가야 하는 책임감과 당위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이 사건들과 끝까지 갈 것임을 예고했다.
관용이 사라진 사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왜 이 모양이냐?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미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미국의 한 검사가 30년 옥살이를 한 피고인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내가 수사를 잘못해서 죄송합니다"고 한 장면을 ABC방송에서 생중계했습니다. 그 무고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은 그 검사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 검사가 영웅이 되었습니다. 잘못은 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해서 관용을 베풀어줬고 반성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사회가 바로 미국입니다." 그는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진범을 잡아도 숨기기 바쁘고,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사람 어느 한 사람도 없는 게 우리 사회"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미국인들보다 못해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 현실의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커다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사회임을 인지시켜주었다. 그런 문제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관용이 사라진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관용이 사라졌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했을 때의 맹목적인 비난을 너무도 무서워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잘못을 인정했을 때 "너 혼자 잘났냐?" 손가락질 받는 사회. 이 모든 것이 관용이 사라진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바로잡히지 않는다는 문화가 팽배해 있는 현 상황 또한 문제라고 바라봤다. 그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잘못은 반드시 바로 잡히고, 잘못은 인정하는 것이 낫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 중에서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겐 관용을 제대로 베풀어준다"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혀야 한다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인식이 사회에 바로 잡히면 어떠한 문제도 반드시 밝혀지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법과 원칙 제도는 아무리 바꿔도 바뀌지 않을거라 지적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미국, 일본 등에서 아주 좋은 것만 가져왔지만 사람의 인식과 관행에 문제가 있는데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역할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다른 생각, 함께 가는 그들의 '맞짱'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갔더니 대단히 바쁘시더라구요. 제가 뭐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더라구요. 없는 사람 취급하고(웃음)." 4~5년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박상규 기자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혹시 나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냐"며 서운하게 생각했다면 이해해 달라며 당황했다는 박 변호사. 그렇게 그 둘의 인연은 다시 시작 되었다. 그런 해프닝 뒤임에도 그 둘은 서로를 챙겨주는 단짝 파트너 같은 모습이었다.
박상규 기자는 지적했다. 박 변호사의 가족이 방송에 나왔을 때 모자이크 되어 나오는 상황에 대해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자신의 가족들이 모자이크 처리 되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의 한계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렇게 박 기자 스스로 박 변호사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박 변호사님은 희생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삼례 3인조를 봤을 때 슬펐어요. 눈물이 났어요. 난 이 일을 왜 할까? 그들의 삶과 표정과 얼굴을 봤을 때 그 속에서 내 삶을 보는 거예요."반면, 토크 콘서트 내내 희생이라는 책임감과 문제의식을 표출한 박준영 변호사에 반해 박상규 기자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결국 자신이 위로받는 것이고, 본인이 좋아서 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그는 (이러한 문제를 짊어지는 것에) 일반 시민들한테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말이 안 되는 얘긴데. 각자 하고 싶은 일 있으면 그걸 용기를 가지고 했으면 해요.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경계를 넘어섰으면 좋겠습니다." 맞짱, 현재가 아닌 희망을 이야기 하다
"참회하는 살인자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는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다." 토크콘서트의 사회자는 나라슈퍼 피해자 할머니 사위의 말을 전했다. 이날 맞짱 토크콘서트를 관통하는 한마디의 말로 보였다. 그 말 뒤로 참회와 용서. 그 행동으로 다르지만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그들은 앞으로 남겨진 과제보다 채워질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참회와 용서라는 관용 또한, 그들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경계를 넘어가려는 자신들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9시 반을 넘어 연장되었다. 행사 종료 뒤 사람들은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에게 사인과 기념촬영을 요청하기에 바빴다. 첫 콘서트여서일까? 아직은 분주한 느낌이지만 따뜻한 분위기는 남았다.
이렇게 이날의 만남은 짧고도 길었다. 마이너스 통장에 쫓기는 한 변호사와 안정된 오랜 직장을 퇴사해 생존에 직면해 있는 한 백수 기자. 그들의 새로운 맞짱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경기 미디어리포트에도 송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