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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끝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한다고 밝힌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참석해 야권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 야권 통합 제안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이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끝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한다고 밝힌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참석해 야권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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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감성의 정치는 어쩌면 하찮아 보일런지도 모른다. 실제 정치에서 국민이 감동하는 지점이 곧 좋은 정치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했을때, 이런 요소들이 반드시 지지율의 상승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증거도 있다. 이번 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으나,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변화가 없었다. 필리버스터를 끝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비난을 받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당장 이번주에 형편없이 추락할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닐 것이다.

오히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박영선 의원이 판단한대로 이즈음에서 필리버스터를 종료하는 것이 실리적으로는 더 나을런지도 모른다. 선거일정에 대해 일방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언론환경, 물리적 시간의 한계에 따른 내부공천의 혼란 등 어차피 결과가 정해진 필리버스터를 지속함으로써 넘어야 할 산의 무게가 중단의 비판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왔을 터이다.

나는 이런 판단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처절한 절규와 달리 일상의 지인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어제의 일들에 대해 무덤덤하다. 이들이 대체적으로 여당의 지지자들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내 페이스북 친구들보다는, 내 일상의 지인들의 숫자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훨씬 더 많이 분포한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렇다.

이들도 선거때 되면 투표하고, 대체적으로 세대별 지지를 한다. 정치적 사안에 강하게 반응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과다대표'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틀린 것은 아니다. 김종인 대표, 혹은 박영선 의원은 이런 공리적 관점으로 이 사태를 바라본 것 같다. 언제나 그래왔을 것이다. 그래서 프레임에 민감하고, 시기별로 어떤 의제로 싸움을 해갈 것인지에 능숙하기도 한 것 같다.

일부 프레임에 민감한 기술적 평론가나 전략가들도 비슷할거다. 그러므로 그들의 눈에는 과다대표되는 소수가, 혹은 투표율도 지극히 낮은 젊은층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 답답하고, 짜증스러울 것이다. "이 선거 책임질거야?"라고 버럭 화를 냈다는 노회한 비대위 대표의 눈에는, 필리버스터를 좀 더 이어가자는 원내대표가 일부 젊은 애들의 열광에 속없이 들뜬 철부지로 보였을런지도 모른다.

노무현, 오바마는 어떻게 승리했나?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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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이즈음에서 묻고 싶다. 과다대표되지 않는 여론이란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가. 그리고 그 과다대표된 사람들이 정치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수단이 있는가. 권력기관을 거대여당에 장악당한 소수야당이 이 불공정을 뚫고, 매우 이성적이고 공리적인 관점으로 승리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는가.

힘없는 소수 집단이 힘센 다수 집단에 승리할 수 있는 프레임이란 애당초 없다. 그게 가능할 정도의 조건이라면 그건 이미 선거가 아니라, 혁명의 상황인 것이다. 과다대표성이 사라진 시대라야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조건에서 언론과 국가기관의 편파를 뚫고 소수가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설혹 과다대표의 혐의가 있을지언정, 반대급부로 무한희생의 가능성도 풍부한 이 집단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초 동력은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는 1000만이 아니라, 시청 앞에 운집하는 10만으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비록 1/100밖에 안되지만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유통하고, 주변을 설득한다.

노무현은 그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TV를 보던 수천만의 유권자가 그에게 고작 2~3%의 대통령 후보 지지율을 보낼때, 열광적인 소수의 과다대표들은 노란저금통과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를 누볐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동받은 지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오바마 역시 그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비록 흑인이지만 젊고 세련된 그의 "담대한 미국"에 최초 열광한 것은 투표율도 저조한 20대 청년들이었다.

적극적 지지자와 청년들은 비록 숫자는 적지만 강력한 발화의 힘이 있다. 이들에게는 어떤 정치적 실리보다도 절절하고 가슴부푸는 감동이 필요하다. 왜 이런 감성적 정치를 해야 하냐고 물을 건 없다.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가 이런 감성적인 즉자적 현상에 매몰되고, 과다대표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지 여론의 숫자에만 목메는 정치도 어리석다. 세상의 변화에 발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 이 집단과 진실되게 깊이 소통하지 않고 승리할 방법은 없다.


태그:#필리버스터, #김종인, #테러방지법, #이종걸,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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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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