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8>이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둘째의 입에선 그 드라마에 소개됐던 옛 노래들이 줄지어 흘러나온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나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른다. 그러다 '짜식, 지가 청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감정까지 잡고 난리래' 하는 생각에 한마디 하려는 찰나,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아아~"라고 절절히 외치는 10살 먹은 아이의 검은 눈망울과 마주쳤다. 이쯤 되면 '그저 웃지요'다.
푸르른 청춘과 서글픈 연가와 흐르는 세월의 쓸쓸함에 대한 노래 <청춘>. 이번 인터뷰는 어쩌면 이 노래를 한 사람의 생애로 풀어내는 작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17일 진행된 인터뷰 주인공은 몇해 전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지금은 공부·사회봉사·여행 등 다양하고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애자(74)씨다.
단 하나의 직업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백인보> 인터뷰를 한 게 5년 전인데, 이렇게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문득 지난 5년간 난 잘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동안 모아놨던 자료들도 찾아보고 그랬어요."그녀의 손에는 최근에 공부한 자료들과 5년 전 내가 썼던 인터뷰의 출력물이 들려 있었다. A4용지 7장이 넘는 분량. 그러나 그 긴 글을 쓰면서도 난 그녀의 삶을 다 담지 못해서 갈증을 느꼈었다. 근데 이번엔 원고지 28장에 모두 담아야 한다. 망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 기간이 37년이에요. 사서라는 직업의 매력? 단연 책이죠. 책은 제게 가장 편한 친구예요. 지난 5년간 심도 깊게 읽은 책만도 80권쯤 돼요."그녀에게 책은 단순히 문화생활의 수단이 아니다. 때론 벗으로 때론 스승으로 70년이 넘는 인생길 함께 걸어온 동행. 37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자신의 젊은 날을 전부 '사서'라는 단 하나의 일에 바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것이 '책'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서란 원래 책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인데, 우리나라 사서는 사환이 해야 하는 일부터 관장이 하는 일까지 전부 다하고 있죠. 그만큼 체계가 없어요. 또 요즘은 전산화로 인해 사서의 입지가 좁아졌죠. 사서라고 하면 책 많이 봐서 좋겠다고 하는데, 한 권의 책이 도서관의 서가에 꽂히기까지 거쳐야 하는 작업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책을 읽을수록 '내가 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겸손의 마음만 커진다는 그녀에게 책 추천을 부탁했다. 이른바 베테랑 사서가 꼽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석과도 같은 책들'이다.
"일단 너대니얼 호손의 책은 <주홍글씨>만 알려졌는데 다른 작품들도 좋은 것들이 많아요. 조지 오웰의 짧은 에세이들도 무척 좋고요. 기자 출신의 오웰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이 많아 생생함이 압권이죠. 영문학과 학생들이 주로 접하는 조셉 콘래드의 작품도 대중적이진 않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아요. 최근엔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함께 읽었는데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 인용한 문장이 많이 나와서 무척 인상적이었어요."책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길게 듣다가 조셉 콘래드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 멈칫 했다. 어, 들어본 이름인데. 집에 돌아와 책장을 뒤지니 <어둠의 심연>이라는 책이 늠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간신히 제목을 찾아냈으나 이번엔 내용이 가물가물. 손톱 크기의 USB만도 못한 내 기억저장소 앞에서 느끼는 짙은 무력감.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책 앞에서 겸손해진다.
인생, 어디까지 해봤니?한 항공사의 광고 카피. '미국, 넌 어디까지 가봤니?' 이 회사의 광고 시리즈를 볼 때마다 난 약이 올랐다. 근데,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꼭 그 광고를 닮았다. '인생, 넌 어디까지 해 봤니?'라고 묻는 것 같은 그녀의 삶 앞에서 난 생전 처음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꼬마처럼 고개를 한껏 젖히고 그 자세로 '정지' 중이다.
"여행을 많이 했죠. 2011년엔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에 갔었고 2012년엔 미국 동북부에 갔었고 그 여행의 끝자락엔 캐나다로 떠났고…. 기억에 남는 여행은 작년에 갔던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예요. 산악지대라 공기도 맑고 아직까진 자본의 물이 덜 들어서 사람들도 예쁘게 살고 있고요." 분량 때문에 그녀의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줄인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들은 어쩐다? 인터뷰 사상 최초로 그래프를 넣어? 아, 정신을 다잡고 정리를 하자.
먼저, '공부'. 사서로 재직하면서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사서공부를 조금 더하고 모교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과정도 수료함. 그러다가 다시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 그때만 해도 방송통신대는 5년제였음. 정식적(?)인 공부는 이렇고 대중강의나 '수유너머'와 같은 공부공동체에서도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음. 아카데미만 해도 2009년 개강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수강 중임.
그 다음 '취미'. 예전엔 아마추어 무선을 열심히 했음. 한창 때는 자동차에 통신기구 달고서 아마추어 무선사들하고 아침 출근 때마다 서로 통신을 주고받았음. '어디 길이 막힌다, 어디에 사고가 났다' 이러면서. 그러다 먼 나라의 사람들과도 통신이 하고 싶어 '에스페란토'를 배움. 에스페란토 국제대회에도 여러 차례 참석. 연극, 영화, 발레, 재즈댄스, 한국무용 등에도 관심이 많아 엄청 보러 다녔음. 워낙 산을 좋아해서 지금도 월요일이면 친구들과 등산을 함.
마지막으로 '사회봉사'. '생명의 전화'에서 3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함. 오랜 시간 고통 받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내 삶을 잘 추슬러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음. 2007년부터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도 시작. 호스피스 교육을 150시간 받고 실습도 100시간 이수함.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마음으로 돌보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음.
내가 봐도 너무 거친 요약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다시 처음이라오'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일독하길 권한다. 그곳엔 요약에서 빠진 '연애' 이야기도 있다. 일생에 울어야 하는 눈물을 그때 다 쏟았다는 그 사랑을 두고 그녀가 왜 '스캔들'이라 부르는 지도 그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파란만장한 부분이 무사히(?) 정리되었다. Fine finis!(에스페란토어로 '드디어 끝났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그러나 요약 내용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 모든 것들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정말 미스터리할 뿐이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걸 즐기는 편이죠. 일단 챙겨야 할 가족이 없으니까 가능한 것들이 많고, 제 기질이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생각엔 무엇보다 '습習'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무슨 요일에는 뭘 하고 이렇게 규칙적으로 일상을 계획하고 실천하다 보면 결국 그것들이 습관으로 몸에 배게 되고, 한번 습이 배이면 하기 싫은 일들도 보다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죠."- 지난 5년 사이 또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점점 나이가 드니까,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앉아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퀼트와 서예를 시작했죠."
- 그런 생각까지, 정말 대단하셔요, 경탄의 문장을 날리려는 나를 그녀가 가볍게 제지한다."근데 현실은 생각과는 확실히 달라요. 작년에 다리를 다쳐서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지냈거든요. 그렇게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고 자부했는데도 실제로 그렇게 되고 나니까 '아, 이제 나는 끝났구나!' 이런 깊은 절망감만 들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결국 그동안 나는 머리로만 준비해왔다는 걸…."
최근에 그녀는 느티나무에서 열린 독서클럽에 참가했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주제는 바로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자료의 제목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였다. 생의 주기에서 누구나 맞게 되는 병듦과 죽음의 문제. 그녀의 고민과 사유의 깊이가 묵직하게 아래로 깔린다.
"이젠 죽음까지도 산업의 일부가 돼버렸어요. 대부분이 중환자실에서 바늘을 주렁주렁 매단 채 생의 마지막을 보내죠. 아님, 변두리 요양병원에서 변변치 않은 대우를 받다 끝나거나. 근데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나 자신'을 느끼고 싶어 하거든요. 앞으로는 요양병원에 수용돼 있는 '죽음'이 다시 집으로, 가정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준비할 것들이 많고 우리도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야겠죠."한 사람의 죽음을 산업구조 속에서 건져내 자연의 순리 안으로 돌려놓는 일. 그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그녀와 오래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노년을 맞이할 분들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꾸준히 인간관계를 챙겨야 해요. 자기를 사랑하고 잘 돌볼 줄 아는 것도 무척 중요하고요.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결국 타인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거든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중요하죠. 전 요즘 매일 세수를 하며 물에 대해 고마움을 느껴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생이 풍요로워지죠."연분홍 치마가 하늘하늘 봄바람에 휘날리던 날에서 돌아와 이제 '봄날, 그 이후의 시간들' 앞에 겸허하게 서 있는 그녀. 나지막이 깔리는 그녀의 목소리 사이로 나는 지난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빛이 바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잠시 쓸쓸해했던 것 같다.
내 청춘의 연가"엄마가 살아계셨을 땐 내가 아무리 혼자 살아도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근데 어차피 가족이란 울타리는 한계가 있으니까 우리 모두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 아래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키워가야 해요. 이 사회가 '공동체성'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이 우린 미래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나는 '한국사회의 연령주의 정치학',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는 '나이'가 차별의 기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했다. 그 차별은 '사회의 주체, 즉 노동과 성과 사랑, 욕망의 주체를 젊은 사람(특히 남성)으로 한정'함으로써 완성된다는, 좀 심하게 딱딱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녀 덕분에 이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50살에 운전면허를 땄어요. 사실 70살이 되면 직접 운전을 해서 전국을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거든요. 요즘 운전해 보니 직진만 가능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꿈은 유효합니다."이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매력, 열정, 가능성, 순수, 치열함'은 젊은이만의 표상이다. 이 다섯 개의 단어를 그녀의 삶 위에 가만히 포개어 본다. 어느 것 하나 어긋나지 않고 그녀의 삶 속으로 녹아내린다. 그 순간 난 깨닫는다. 삶과 세상을 향해 그녀가 부르는 청춘의 연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훗날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길, 나는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호모아줌마데스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이며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특기사항은: 합기도 빨간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