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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가 있던 당시, 노회찬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당시 노회찬은 선거 초반 15%에 이르는 높은 지지도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물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군소정당이 선거를 계기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당시 선거운동 본부에서 청년이슈를 맡으며, 어떻게든 노회찬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골몰했다. 선거운동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언론플레이였다.

닥치는 대로 토론회를 만들었고, 기자들을 초대해서 기사를 낼 수 있게 유도했다. 프로게이머의 노동권을, 20대 청년들의 주거권을, 인디밴드의 노동권을.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있는 대로 엮어서 토론회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론의 냉담함이었다.

평소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경향> 등 각종 진보 매체들이 노회찬에 대한 입을 닫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민주당, 당시의 한명숙 후보에게 올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른바 '비판적 지지'였다. 운동권 선배들에게 말로만 듣던 비판적 지지의 힘은 강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대중들은 냉담해져갔다. 노회찬은 결국 그 선거를 3% 지지율로 마무리하였고,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심상정은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당시 국민참여당 후보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유시민을 지지하며 선거를 마무리하였다.

이후 각종 군소 진보정당들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며 격변을 겪었다. 대중들이 보기엔 찻잔 속 태풍이었겠지만, 정당을 통한 사회 운동에 뜻이 있는 수 만 명의 정당 당원들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 계속 되었다. 이 같은 변화의 배후에는, 새누리당의 폭정에 대항하기 위해 야권 세력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비판적 지지'의 프레임이 있었다.

김종인의 '비판적 지지' 호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선대위 연석회의에서 "국민들은 (야권이) 다시 결합해서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절실한 소망을 갖고 있다"며 "이 당에 와서 소위 패권정치라고 하는 것을 씻어내려고 계속 노력했고, 앞으로도 패권정치가 더민주에서 부활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선대위 연석회의에서 "국민들은 (야권이) 다시 결합해서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절실한 소망을 갖고 있다"며 "이 당에 와서 소위 패권정치라고 하는 것을 씻어내려고 계속 노력했고, 앞으로도 패권정치가 더민주에서 부활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남소연

비판적 지지는 지금까지 '민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군소 야권 정당을 상대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프레임이다. 더민주당의 김종인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한 이후, 야권에 손을 내밀었다. 그의 발언은 전형적인 '비판적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의 수는 정치적 올바름의 입장에서도, 현실정치의 실리적 측면에서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오래되고 신선할 것 없는 전략처럼 보여도, 여전히 강하고 유효하다.

김종인의 야권통합 제안에 대해 심상정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통합은 어렵지만, 야권 연대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비판적 지지에 대응할 전략을 찾아낸 것이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은 '독자후보 전략'을 고수했다. 어떻게든 많은 후보를 내서, 자신의 존재감을 전국에 알리는 것을 목적에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단순하고, 유력후보(보통 민주당)의 표를 갉아먹어 새누리당에 이익이 된다는 비판적 지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 방식을 고수하다가 호되게 당한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2010년의 지방선거였다. 그 이후 진보정당은 '통합'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연대'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민주당과 당대당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목적으로 전략적 연대를 하는 것. 원래 정당은 당헌을 뼈대로 삼고, 강령와 당규라는 살과 피를 갖는 생명체다.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거대하면서도 느리고, 또 진중한 집단이 바로 정당이다. 이런 조직이 2~3년 만다 한 번씩 있는 선거를 목적으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기도 쉽지 않다. 당과 당이 통합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비판적 지지와 야권통합 제안은 흡사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메시지 라인을 갖게 된다. 통합을 원하는 대중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당과 당이 쉽게 이합집산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대중도 많다. '통합'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불편함을 자극하지만 '연대'라는 프레임은 양자 모두를 안심시킨다. 진보정당이 '연대'라는 프레임을 발견하고 전략으로 소화하는데 30년의 경험이 필요했다.

물론 야권연대의 프레임 또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야권 연대는 정당의 중앙과 지역 단위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하다. 협상의 단위는 전국인데, 이해관계의 단위는 지역이다. 정의당이 진보벨트라 불리는 울산, 창원 등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서울의 마포 지역 후보를 포기한다는 등의 전략적 협상에는 꽤 긴 시간 필요하다.

선거 국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협상을 오래 진행하다보면, 막상 선거사무소에서 선거를 집중해서 치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지역의 텃밭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선거 운동에 올인하는 동안, 야권은 야권연대 때문에 힘을 빼고 허겁지겁 뒤늦게 선거 운동을 치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야권연대 또한 전략적으로 발전해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

김종인의 제안, 피해간 심상정과 발끈한 안철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가 3일 오후 남구 부산여성회관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을 거절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가 3일 오후 남구 부산여성회관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을 거절했다. ⓒ 정민규

김종인의 야권통합 제안을 심상정이 '통합이 아닌 연대'로 피해가는 사이, 안철수는 발끈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정치 초보의 행동이 드러난 대목이다. 기업에서는 지분률이나 정관의 계약이 CEO의 권력을 보장한다면, 정치인은 사람들의 동의와 지지를 통해 권력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정치인은 함부로 발끈하면 안 된다. 정치인이 감정적일 때는 반드시 대중을 향한 메시지와 의도를 담고 있어야 한다.

협상의 과정, 그 안에서 드러나는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들에게 공개되며, 이 과정 모두가 정치활동이다. 치열한 경쟁이며 전쟁이다. 김종인의 부드러운 한수는 분명 안철수를 겨냥했고, 안철수는 자신이 김종인에게 표적이 되었음을 느꼈으며,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종인의 수가 그 배후에 안철수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저 부드럽고 유연한 제안에 대한 신경질적인 대응만을 기억할 뿐이다. 안철수는 정의당이 30년 동안 겪은 정치적 시행착오의 첫 걸음을 뗐다.

김종인은 안철수를 희생양 삼아 출구전략 없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해 생긴 정치적 부담을 가볍게 극복했다. 정의당의 노련한 피해가기도 인상적이다. 안철수는 지금 같은 감정적 대응으로는 앞으로 있을 수많은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로 볼 때, 안철수는 비판적 지지의 덫에 걸려 당분간 야권 지지자들의 냉담함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김종인의 야권 통합 제안은 이제 본격적으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노련한 정치인도, 신인 정치인도, 진보정치인도, 보수정치인도. 모두 선전하길 바란다. 그 선전이 우리 사회를 폭정에서 한 걸음 더 낫게 만들 전진을 낳길 기대한다.


#안철수#심상정#비판적지지#야권통합#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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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로써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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