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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통
생수통 ⓒ 이상옥

중국 정주 온지 일주일 남짓
문득
남은 목숨을 본다
- 이상옥의 디카시 <생수통>

지난 2월 26일 정주에 왔으니,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문득 숙소에 가득하던 생수가 10분의 1 정도만 남았다. 아직 생수 주문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 생수가 바닥이 나면 당장 불편할 것이다. 문득, 생수 한 통이 목숨의 분량이라면 목숨의 10의 9를 이미 소비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이제 예순이니, 내 생도 생수통의 남은 분량만큼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인생 후반기 정주경공업대학으로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바닥이 보이는 생수통 같은 내 삶의 얼마를 정주에서 쏟아낼지는 모르겠지만, 참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바닥이 보이는 생수통 같은 내 삶 

 바닥이 보이는 생수통 같은 생의 후반기를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정주를 선택한 나, 스스로 격려하는 셀카
바닥이 보이는 생수통 같은 생의 후반기를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정주를 선택한 나, 스스로 격려하는 셀카 ⓒ 이상옥

지난해 12월부터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서류와 증명자료를 이메일을 통해 보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계속 외사처와 영문메일로 소통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서 보내준 취업허가증과 초청장을 가지고 또 부산 중국영사관에서 Z비자(중국 취업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Z비자로 중국에 입국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전문가증, 거류허가증 발급을 받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중국 은행카드 발급, 중국 휴대전화 개통 등을 대학 외사처 직원의 안내로 처리해야 했다. 지난 3일까지 모든 업무를 끝냈다. 거류허가증이 오는 23일께 나온다고 하는데, 업무 처리가 늦어질 수도 있다. 현재는 거류허가증이 나오기까지는 정주에 꼼짝 없이 묶여 지내야 한다. 외국인으로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범죄기록도 없어야 했고, 신체적 건강도 입증해야 했다.

거의 두 달 이상 이 일에 매달렸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혹시 나도 모르는 결격 사유가 잡히는 건 아닌지, 내심 초조해 하기도 했다. 제아무리 정주경공업대학교에서 나를 초청해도 내게 문제가 있으면 무산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 일터에서 내 생의 최고의 공부를

이제 다음 주부터 수업이다. 이번 학기에는 '한국문학강독', '글쓰기', '말하기' 세 과목을 가르친다. 내가 교단에 선 지 30년이 넘었지만, 마침 초임 발령을 받은 것 같은 설렘을 품고 있다.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게는 배우는 일이 아닌가. 5년 전부터 준비한 새 일터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익히는 생의 최고의 공부를 앞두고 어찌 기대가 없을 수 있겠는가.

 중국인들과 채팅을 위해 wechat(위챗: 중국판 카톡)을 깔았다. 서툰 중국어,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되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중국인들과 채팅을 위해 wechat(위챗: 중국판 카톡)을 깔았다. 서툰 중국어,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되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 이상옥

이미, 생존의 언어도 익히는 중이다. 좋아하는 설탕이 없는 카페라떼를 마시기 위해 "이빼이 나티에(一杯拿铁, 카페라떼 한 잔), 부야오 탕(不要糖, 설탕 빼고 주세요)" 혹은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기 위해서 "워야오 이진 우화로우(我要一斤五花肉(삼겹살 한 근 주세요)" 따위의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생존 언어노트에 기록해뒀다.

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디카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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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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