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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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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 지역을 찾았다. 그야말로 알찬(?)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하는 등 무려 4개 일정을 소화했다. 백미는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 참석이었다. 이른바 총선용 '진박 마케팅'을 넘어 '선거개입'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일간지의 11일자 사설의 말미를 보자. 

"청와대가 대통령의 이 지역 방문에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려면 대구·경북이 아니라 광주·전주, 부산을 먼저 찾은 뒤 총선 후에 이 지역을 방문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혹시 경북도청 개청식에 참석하더라도 대구 방문은 뒤로 미루었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하필 이 시점에 대통령의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잡았다.

지금 여권에선 황당무계한 계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현기환 정무수석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거기에 대통령의 대구·경북 방문으로 인해 당내 패싸움에 대통령까지 당사자로 뛰어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가 당내 경선과 총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 진보언론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제목도 화끈하다. 역시나(?) 조선일보다. <청와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해도 되나>란 제목의 이 사설은 거침이 없었다. 친절(?)하게도 왜 광주와 전주, 부산을 먼저 방문하지 않았느냐고 훈수까지 뒀다. 여당의 총선 승리를 염원하는 간절함도 묻어난다.

"청와대 측이 아무리 부인해도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이 지역 유권자들에겐 우회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공천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엉킨 싸움이 정점에 이른 시점이다. 만약 이 지역에서 이른바 진박이라는 사람들이 대거 공천을 받고 유승민 의원이나 그와 가까웠던 후보들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대체 무슨 얘기가 나오겠는가."

조선과 동아도 비난하는 대통령의 선거개입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전시관에서 입주기업인과 대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전시관에서 입주기업인과 대화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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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뿐이 아니었다. 동아일보 역시 이날 "TK 방문한 박 대통령, '眞朴 마케팅' 역풍 두렵지 않나"라는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와 비슷한 논조로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차이가 있다면, 박 대통령의 자중을 당부하면서도 "취소하는 게 옳았다"며 좀 더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했다는 정도랄까. 그도 그럴 것이, 윤상현 막말을 단독으로 보도한 매채가 바로 채널A 아니었던가.
    
"이런 상황이라면 박 대통령이 예정된 행사라도 취소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도 대구 방문을 강행한 것은 '내 사람' 심기에 꽂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9일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을 극비리에 만났다는 채널A 방송 보도가 나왔다. 친박과 비박 간 공천 갈등의 중심에 권력의 생리에 민감한 박 대통령이 있다는 의구심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선거에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되레 민심의 역풍을 맞았던 게 역사의 교훈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상파 3사의 보도다. 메인뉴스는 일치단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차지했지만, 박 대통령의 TK 방문 기사는 미묘한 온도차가 존재했다.

박 대통령, TK 방문…"앞장서 힘 모아달라" (SBS)
박 대통령, TK 방문…지역 정가 술렁 (KBS)
박근혜 대통령, 총선 한 달 앞두고 'TK방문' (MBC)

SBS는 정확히 방문 소식 내용만을 전하며 별다른 주석을 달지 않았고, KBS는 "이른바 '진박' 후보들은 반겼지만, 비박계 현역 의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라고 사족을 달았다. 반면 MBC는 보도 첫 머리에 "여러 해석 탓인지, 정치적 오해를 살 만한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라며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탄핵' 노무현과 '경제행보' 박근혜의 차이 

청와대의 해명은 언제나처럼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날인 11일, 기자들을 만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아무리 경제행보라고 말씀드려도 그렇게 안 받아주시니까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인을 만나지 않았다"는 해명을 믿을 이가 누가 있을까.

경북 신청사 개청식에 몰려든 수많은 정치인을 단순히 "만난 것은 아니다"라는 말장난으로 넘어갈 일인가. 청와대의 해명이 "전 행정자치부 장관인 대구 동구갑 정종섭 예비후보와만 악수했다"라고 들리는 건 왜일까. "정부도 경북의 균형 발전과 새로운 도약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라던 박 대통령의 축사를 선거 지원 유세로 받아들인 유권자가 과연 없었을까.    

정치권과 언론에서 '선거의 여왕'이라 칭하는 박 대통령. 아무래도 박 대통령은 그 별명을 꽤나 즐기는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수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거 개입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밖에 없는 TK 방문을 강행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이번 TK 방문은 4.13 총선 역시 본인이 직접 나서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직접적인 사인인 셈이다. 하긴, 언제 박 대통령 본인이 '역풍'이나 '논란'을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

비극은 그런 대통령을 저지할 묘안도, 세력도 없다는 점이리라. 내분과 탈당 사태에 이어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필리버스터를 중단한 제1야당은 비판조의 논평을 내는 것 외에 '전투'를 치를 여력이 없어 보인다. 중립을 위한 중립에 몰두하는 우리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자진해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릴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12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국민들에게 '탄핵 트라우마'를 안겨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길게 재론할 것도 없이, 시작은 2004년 2월 당시 17대 총선을 앞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가볍게 언급한 저 단 두 마디로부터 비롯됐다. 노무현의 혀와 박근혜의 몸, 아니 행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탄핵감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경북 방문 역시 그에 버금가는 '선거개입'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향후 총선국면에서 음으로 양으로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미 '윤상현 막말'을 통해 새누리당을 뒤흔든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참모였던 김종인 위원장에게 좀 더 강력한 드라이브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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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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