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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뿔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논술을 가르치는 이민숙 선생과 여선중학교 3학년 위다연(왼쪽 ) 위수연(중1)자매가 논술 공부하다 포즈를 취했다.
 샘뿔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논술을 가르치는 이민숙 선생과 여선중학교 3학년 위다연(왼쪽 ) 위수연(중1)자매가 논술 공부하다 포즈를 취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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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샘뿔인문학연구소 인근을 지나다 그곳에 소장으로 있는 이민숙 선생의 사무실에 들렀다. 시인인 이민숙 선생은 매주 목요일 저녁에 11명의 '빗살문학' 회원들과 함께 문학과 철학 논어 역주, 근현대 시인의 작품을 읽고 감상평을 쓴다.

이민숙 선생은 해마다 시집을 발표한다. 그녀의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돼 전국 공공도서관과 병영도서관에 비치됐다.

회원들과 함께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는 학생들 논술지도를 하는 그녀와 논술 얘기를 하다가 "논술에 흥미를 보이고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도 있습니까?"하고 묻자 "예! 중학교 1학년밖에 안 되는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가르치는 기쁨을 느낍니다"라며 저녁에 오는 아이들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전태일 평전 읽고 가장 충격을 받았다"는 중학생

저녁을 먹고 온 자매(위수연 중1, 위다연 중3)를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어린 학생과 대화하는 동안 마치 고3 학생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휘구사력, 논리 정연함, 인용문장의 다양함, 생각의 깊이가 나를 놀라게 했다.

도대체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정선된 용어와 어휘구사가 가능할까 궁금해 수연이가 책을 읽고 쓴 '원고모음집'을 살펴보았다. 수연이의 역사논술 원고모음집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실학과 평등사상, 쇄국정책의 영향, 동학농민운동, 대한제국의 마지막과 3.1운동, 대한민국 독립과 신탁통치, 4.19혁명, 6.29선언부터 IMF 극복 등의 내용이 정리돼 있었다.

"집에는 지금까지 써온 원고모음집 10여 권이 있다"는 수연이에게 지금까지 읽은 책을 물으니 "150권쯤 된다"고 한다.

 위수연양이 6년 동안 쓴 논술 원고모음집
 위수연양이 6년 동안 쓴 논술 원고모음집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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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8살 때부터 논술공부를 시작했지만, 동생 수연이는 8살부터 14살까지 계속했고 언니인 다연이는 가끔 쉬기도 했다. 둘은 성격 차이가 있었다. 밝은 성격의 언니와 차분한 동생. 하지만 둘 다 예쁘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수연이에게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책은 <전태일 평전>입니다. 전태일이 자기 몸에 기름을 붓고 친구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한 게 가장 인상 깊었어요. 아무래도 신념이 강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저라면 아직 신념이 부족해서 몸을 사렸겠죠.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신념 때문에 자신의 몸까지 버려가면서 불태운 건 충격적이었어요."

대화를 중지하고 수연이가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한 글을 읽어보았다.

'나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서 나에게 던졌던 질문들에 자그마한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먼저 국가적, 개인적 발전은 어떤 과제를 통해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 끝에 나의 수준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을 더욱 강화시키고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법에 따라 벌을 주어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도록 하고 국민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연이는 '기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하면 사회복지와 소외의 역학관계가 풀릴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글 말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사를 바로 알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투표에 성실히 참여해 전태일 사상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고 썼다. 원고 검토를 마친 마지막에는 이민숙 선생의 평가문이 적혀있었다.

'<전태일 평전>을 아주 잘 읽었다. 전태일 사상이 바로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는 사상이다. 우리 수연이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을 읽고 난 후 '나도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판단력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쓴 글 말미에는 수연이 엄마의 평가도 있었다.

 수연이 엄마가 수연이 논술 원고를 읽고 딸에게 보낸 편지.
가족애가 보인다
 수연이 엄마가 수연이 논술 원고를 읽고 딸에게 보낸 편지. 가족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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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연아. 사랑한다. 내 딸♡♡♡. 널 항상 응원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엄마보다도 더 많은 생각을 하기에 우리 수연이는 미래에 필요한 남을 배려하는 리더가 될 거라고 엄마는 믿어. 엄마가 수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연이 자신을 사랑하길 바라. 꼭 반드시 리더가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오늘보다는 내일이 기대된다. 사랑하는 수연아 남을 먼저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서 서로 같이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엄만 믿어. 훌륭한 리더가 될 거야. 정말 사랑한다.'

언니인 다연이는 영화 <귀향> 속 주인공들과 비슷한 또래다. <귀향> 이야기로 돌아가자 얼굴이 또다시 울상이 된 자매를 진정시키며 수연이에게 영화를 본 소감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먼저 첫 부분을 볼 때 매우 화가 났습니다. 왜? 도대체 왜? 어리고 곱고 예쁜 여학생들이 위안소에 끌려가 아프고도 수치스러운, 이유 없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성고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는 왜 욕심 많고 의심이 없는 윗사람들 때문에 힘 한번 못 써보고, 힘없이 당해버리고 말았는지 마음 한쪽에서 씁쓸함이 밀려 왔습니다.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저는 점점 제 감정을 스스로 추스를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음에서는 무엇인가 들끓어 오르는데 머리에서는 화남, 억울함, 씁쓸함 등 모든 감정이 교차하며 울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영화관을 나오고 저는 순천에서 여수로 갈 때까지 깊은 생각에 잠겨 계속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영화가 상영될 때만 열 올리고 또다시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아가겠지'란 안타깝고도 속상한 생각도 겹쳤습니다."

 위다연 위수연 자매가 역사논술 공부하며 읽은 책들과 원고모음집
 위다연 위수연 자매가 역사논술 공부하며 읽은 책들과 원고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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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통일로 화제를 돌려 찬반 의견을 물었다. "국어 시간에 통일에 관한 토론을 벌이면 친구들 의견이 찬반양론으로 갈린다"고 말문을 연 다연이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려운데 통일이 된다면 살기가 더 어려워지게 될 수 있으니 반대한다"고 답했다. 수연이 차례가 됐다.

"저는 언니랑 살짝 다른 생각인데요. 지금부터라도 서로 통일하려는 마음가짐과 타협으로 통일 정책도 만들고 하나씩 준비해가면 언젠가 통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서로 만나서 통일에 관해 의논하고 대화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통일을 강대국들이 원하지 않잖아요"라고 수연이가 말하자 다연이가 정치 상황을 꼬집으며 화를 냈다.

"화합해서 통일하려고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맨날 싸우잖아요."

수연이가 처음부터 독서논술을 좋아한 건 아니다. "5학년까지는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책 <난쟁이 피터>를 읽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교 부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수연이가 <난쟁이 피터>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난쟁이 피터'는 남보다 한참 작아 난쟁이라 불린 소년으로, 알콜 중독자 아버지만 남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어 방황하다 가출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사람과 사람을 만나며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그는 하버드대에서 법을 공부해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된다.

수연이는 어른들이 정해준 꿈에 회의를 갖고 고민했다.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단다. 성장통이었을까? 심각한 사춘기를 이미 경험했다며 웃는 수연이.

"아나운서, 검사, 판사, 화가 등의 꿈은 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고민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상담을 받으며 해답을 찾았어요. '벌써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물 흐르듯이 기다리면 된다'고 하셨어요."

 위수연양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받은 상장(학생부 특상)으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수여했다.
 위수연양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받은 상장(학생부 특상)으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수여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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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중에 여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른 학원은 공부하는데 여기는 제가 공부라고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말한 수연이와 다연이는 글쓰기에 관한 상을 많이 탔다. 특히 수연이는 지난해 9월 16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주최하고 교육부에서 후원하는 제61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학생부 특상을 수상해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주는 상을 받았다.

당시 '물벌 알리기 프로젝트'에서 특상을 받은 수연이는 "논술이 아니었으면 논리적으로 발표를 못 했겠죠. 제 인생에 제일 많이 도움이 된 것은 논술이었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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