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은 내 17년 교직 생애 중 가장 '정치적인' 달이었다. 성명서와 보도 자료를 준비하고, 동료 교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몇 편의 서신문을 썼다. 며칠간 1인 시위에 동참했으며, 집회에서 '투쟁사' 명목의 연설을 했다. 한 동료 교사의 '부당 전보 인사'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연대 서명 작업부터 시작했다.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극도의 긴장감을 안은 채 서명지를 돌리고 전화 작업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80퍼센트 가까운 동료 교사들이 동참해 주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평소 그들의 침묵과 냉소가 두려웠다.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고 상냥하며 겸손하다. (중략) 그런데 그들의 머릿속은 직장, 자녀, 야망과 일상의 고충, 놓치지 말아야 할 TV드라마와 아마존에 반송해야 할 물건 같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관심사들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사는 일만 신경쓴다고, 자신의 마당만 가꾼다고, 이기적이고 맹목적이고 심지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비난은 내가 보아온 활동가의 행동 중 최악의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62쪽)이 책은 "혁명에 관한 책"(13쪽)이다.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의 사회운동가다. 1998년 세르비아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비폭력저항운동 단체 '오트포르!(저항)'의 리더이자, 2003년 캔바스(CANVAS, 비폭력 행동주의와 전략 응용 센터)를 설립해 이집트, 러시아, 몰디브 등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운동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독재자 무너뜨리기'의 핵심 전략은 '비폭력 투쟁'이다. 맥빠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J. 스테펀의 <왜 시민행동인가-비폭력 투쟁의 전략적 논리>에서 빌려 온 통계가 있다. 1900~2006년 사이 일어난 분쟁 중 자료를 찾을 수 있는 323건을 성공한 경우와 실패한 경우로 나눠 살핀 결과다.
"비폭력 시위가 온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가 폭력 시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당신이 정확한 숫자를 더 선호한다면, 여기 그 지수가 있다. 무기를 들 경우 성공 확률은 26퍼센트다. 이 책에서 읽은 대로 평화적 원칙을 실행하면 확률은 53퍼센트로 올라간다. (중략) 두 학자에 따르면, 싸움이 끝난 후 비폭력 저항 운동을 경험한 국가들이 5년 동안 민주국가로 유지될 확률이 40퍼센트 이상이다. 한편, 무력을 통한 정권 교체가 있었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확률은 5퍼센트 미만이었다. 비폭력을 선택할 경우 10년 안에 다시 내란을 겪을 확률이 28퍼센트지만, 무력을 선택할 경우 43퍼센트로 증가한다. (227쪽)저자는 이 책에서 비폭력 투쟁이 사회정의부터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부패와의 전쟁에서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투쟁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더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한 싸움임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사회변혁을 이끌어낸 성공적인 운동들의 핵심적인 특징이 무엇인지에 관한 유쾌하고 창의적인 사례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그곳이 어디든지 현실에 곧장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이 알기 쉽게 소개된 점도 인상적이다.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거창한 대의명분과 정의를 갖고 있으면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 싸움에서 금방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것. 저자는 작은 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의를 작은 과제들로 쪼갤 줄 아는 운동이, 둘러앉아 북을 두드리며 상투적인 구호나 외치는 운동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권력의 기둥을 간파하며, 웃음행동주의(laughtivism)에 따라 유쾌하게 싸울 줄 아는 자세다. 권력을 떠받치는 기둥을 흔드는 것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깊은 깨달음을 준다.
그들(경찰-기자말)이 제복을 입고 폭력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반드시 악마이거나 구제불능의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경찰이 진압용 방패로 기꺼이 시위대의 머리를 찍어내는 것은, 자유를 두려워하고 경멸해서가 아니라 초과근무수당을 받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했다. 경찰이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한, 모든 것이 무리 없이 돌아가는 한, 독재자는 권좌에서 안전하다. 그러므로 활동가에게 첫 번째 과제는, 정상적으로 흘러가던 일들이 갑작스럽게 멈추도록, 안정적이었던 기둥들이 흔들리도록 만드는 일이다. (113쪽)웃음행동주의는, 권력의 기둥을 흔드는 창의적인 유머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사례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곳이라는 시리아에서 비폭력 활동가들은 '자유'와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를 새긴 수천 개의 탁구공을 경사진 거리와 골목길에 쏟았다. 폭력적인 법을 공개적으로 조롱하며 정권의 안보를 위협하기 위해서였다.
탁구공 시위에서 위협을 느낀 시리아 보안기관 책임자들은 '탁구공 체포 명령'을 내렸다. 다마스쿠스 시내에서 탁구공 상자가 쏟아지자 완전무장을 한 험악하고 살벌한 보안요원들이 몇 분 안에 현장으로 달려가 탁구공을 쫓아 뛰어다녔다. 이들은 숨을 헉헉 몰아쉰 채 도시를 샅샅이 훑으며 탁구공을 주워 올리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독재 사회는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 1퍼센트에 맞서려는 또 다른 '1퍼센트'가 있다. '혁명가', '운동가', '활동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들이 99퍼센트를 분리선의 '우리 편'에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른바 통합이다.
통합은 모든 사람을 특정 후보나 이슈 뒤에 줄 세우기가 아니다.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고, 그룹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화합하는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고, 어떤 동료들도 낙오시키지 않으며 추구하는 가치를 견지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이런 저항이 당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193쪽) 한국이 '유사 파시즘 체제'로 진입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법의 이름으로 원내 정당이 해산됐고, 극우 단체 무리들이 준동하고 있다. 유사 파시즘 체제 식의 진단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해 보인다. '헬조선'과 '흙수저' 같은 말이 어지럽게 오가는 현실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고 싶지만 갈수록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회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유쾌한 길라잡이가 돼 줄 것임에 틀림없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스르자 포포비치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3.2. / 301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