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시작된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하 바람)>. 작지만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를 한 뮤지컬 '바람'이 오는 26일 전남 여수 공연을 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선 그동안 이풍세 역을 맡아온 가수 박창근을 만날 수 없다.
4년여가 넘도록 뮤지컬의 주인공을 맡아오면서 노래와 뮤지컬, 김광석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한 그다. 어떤 연유에서 그만 두게 되었는지 그를 만나 물어봤다. 이제는 이풍세가 아닌 싱어송 라이터인 박창근을 지난 23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은 박창근씨의 개인적인 소견과 주장임을 밝힌다.
우선, 왜 그만두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공식적으로 뮤지컬 '바람'을 그만둔 이유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제작진과 좋은 작품을 갈구하는 방향이 달랐던 것 같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꽤 오랫동안 이풍세로 살아오면서 김광석과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소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그다.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했던 박창근은 빼어난 가창력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올 겨울, 이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공연한 박창근은 제작의 일부에도 참여했다. 공연을 하며 멀어졌던, 즉 이전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다수가 원하는 내용으로 흘러갔고 박창근씨 개인으로서도 잘 마무리됐다고 평가한다. 오디션으로 합류한 새로운 이풍세와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하게 돼 2015 '바람'에선 관객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다.
박창근은 "아직도 주인공 이풍세가 김광석 삶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관람객이 있다는 것은 홍보의 중심이 무엇이었고, 어떤 가치 어떤 태도로 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해 왔는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보단 김광석이 너무 부각됐다는 뜻이다.
4년여 참여했던 뮤지컬 '바람'을 떠나다그렇다면 박창근에게 김광석(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김광석 노래가 지금껏 계속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짧게 "김광석은 매력이 있다"고 답했다. 박창근은 "지금 그때의 김광석이 노래하는 영상을 보면 그 나이 때의 치기어림과 자신감이 보이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전달받는 느낌은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김광석은 노래를 부를 때 떨고 흔들리는 모습이 많이 목격된다. 그런데 그 자체가 묘한 매력을 준다. 아마 진정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창근은 흔들림이 그의 노래가 지닌 매력으로 상쇄될 정도라고 했다. 어쩌면 김광석을 찾는 수많은 관객들 때문에 김광석이 오히려 자신감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박창근은 생각한다.
박창근은 "사실 김광석의 노래는 김광석 목소리로 듣는 노래"라면서 "그런데 얼마나 그의 목소리가 좋았으면 모두가 그의 노래가 되어버렸겠나"라고 설명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김광석이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는 1집의 <그대 웃음소리>부터 4집의 <자유롭게>까지 모두 16곡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흐린 가을 하늘엔 편지를 써>, <먼지가 되어> 등은 모든 다른 사람들이 작사·작곡했거나 부르던 곡들이다.
그러면 이제 박창근을 통해 김광석 노래는 못들게 되는 것일까? 박창근은 "굳이 안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박창근은 대학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면, 김광석 노래를 레퍼토리에 넣곤 했다.
김광석 노래의 흔들림과 매력그동안 박창근을 지켜본 후배들은 연기가 많이 늘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풍세는 박창근과 비슷했다"면서 "그 때문에 연기도 모르는 내가 그냥 나처럼 무대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회를 풀었다. 박창근은 뮤지컬 '바람' 시즌 1의 이풍세처럼 최근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박창근 혼자 두 달 반 가량을 노래했던 2014년 '바람 : 비긴 어게인'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뮤지컬 내용의 측면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박창근은 가장 깊고 진한 공연으로 기억한다. 잔잔한 드라마로 가장 좋았다는 것이다.
한편, 박창근은 끊임 없이 대중성과 음악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음악성만 고집하다 보니 대중성이 약해지는 측면을 안타까워한다. 박창근은 "대중성에 대해서 가장 괴롭게 느끼는 부분은 '나'이다"라면서 "나 또한 관객이고 문화 소비자인데 그럼 나는 대중적인가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은 대부분 대중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가끔 인기 있는 노래를 좋아할 때도 있다.
창작자이자 소비자로서 박창근이 판단하는 대중적인 노래는 "그냥 나를 위로하는 작품, 나를 보듬는 노래, 내가 감동하는 콘텐츠"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수가 듣지 않는다고 대중성이 없는 건 아니다. 반대로, 대중성 없다고 음악성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점이 슬프다고 박창근은 말한다. 한 개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가 홍보와 자본 문제로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게 좋은 노래가 가장 대중적예술가로서, 가수로서 살아가는 것이, 생존하는 것이 힘들진 않은지 물어봤다. 박창근은 "늘 두렵고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덧붙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늘 극과 극이 공존하듯이 매일매일 자괴감과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그 덕에 다시 뭔가를 하게 된다. 내 주위엔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지만 정말 좋은 친구들이 아주 작게 있다. 힘들면 그 앞에 기대거나 엎어지거나 넋두리 할 수 있다. 그 힘으로 난 용기롭다." 최근 박창근은 여성 싱어송 라이터 박강수씨와 듀엣 앨범을 내놓았다. 박창근은 "색다른 콘셉트의 음반이 탄생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주변 반응은 어떨까? 그는 "느낌이 좋다는 반응과 조금 올드하다는 등 다양하다"면서 "지인들은 내가 상대 가수에게 너무 받쳐주는 식이 아니었냐고 아쉬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녀가 듀엣으로 노래를 하다 보니, 메인과 부 보컬이 나뉘는 건 사실이다. 박창근은 "최대한 여자보컬에 맞추려 키 조절도 하고 편곡도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노래에 대한 욕심은 아쉽다"며 "뮤지컬 '바람' 공연 중에 녹음하느라 더 많이 적극적이지 못해 아쉬운 결과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제 가수로서, 노래 창작자로서 박창근은 무얼 할까? 뮤지컬을 나오고, 부친상을 치르면서 많이 지친 박창근이다. 그는 "기회가 되면 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며 "아직 여력이 안 되면 좋은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 공연은 음악이 있는 연극 형태가 될 것이다. 노래가 있고, 진심 어린 연기로 관객과 소통하는 연극. 싱어송 라이터로서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가는 건 이어진다.
박창근 며칠 전, 영화감독을 꿈꾸는 한 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졸업 작품 단편영화에 박창근의 노래 <낙지전골(운명)>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낙지전골(운명)>은 낙지전골을 소재로 동물윤리와 인간의 욕심을 다룬다. 박창근은 영화 내용을 보고, 노래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박창근은 영화 감독을 꿈꾸며 예술세계를 만들어가는 친구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전했다.
봄이 찾아오는 4월부터, 그는 작은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려고 계획 중이다. 박창근은 "새로운 음반은 좀더 박창근 답다는 평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내비쳤다. 앞으로 박창근이 어떤 음악과 공연으로 세상과 소통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