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강의가 히트를 친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에서 한 강의다. 우리나라 EBS도 방영하였다. 그의 강의는 책 <정의란 무엇인가>(2014, 와이즈베리)로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주제다.
샌델은 구제 금융, 모병제, 대리 출산과 같은 현실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정의론을 펼친다. 기존의 정의론에 비판을 가하기도 하는데,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가 다수의 이익이라는 점에서는 탁월하지만 인간의 존엄이나 도덕성은 말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샌델의 정의론은 손에 잡히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독자의 판단을 존중한다.
'헬조선'에서 정의란?
<정의는 불온하다>의 저자 김비환은 이제 우리 차례라고 말한다. 한국의 정의, '망한민국', '개한민국', '헬조선'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그는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정의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장에서 분배로'이다.
이 말을 들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금수저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쉽게 '종북'이란 딱지를 붙여 내몰려 한다. 그러면서 아직은 '성장이 먼저'라고 말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인가. 저자는 자신의 정의론을 말하며 '정의는 불온하다'고 말한다. 정의가 불온함이 되는 나라, 이 나라 백성으로 살면서 불온한 정의론을 읽는 맛이란 죽을 맛이다.
저자는 정의가 무엇인지 두루두루 학자들의 이름도 호명하며 원론적인 이론을 나열한다. 좀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의 시작은 아주 호기 어리다.
"1970~1980년대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눈부신 발전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었다. '선성장 후분배'를 기조로 추진돼온 재벌 중심 자본주의는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정경유착, 권력형 부정부패, 지역차별과 대립, 갑을관계 등 많은 해악들을 초래했다."(본문 6쪽)"이 책을 통해 나는 한국 사회의 개혁을 안내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정의의 원칙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본문 8쪽)'헬조선'이 되도록 내버려 둔 해악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정의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잡아주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 쉽게 독자를 이끌지는 않는다. 정의의 뜻인 "사회적 재화와 부담을 분배하는 올바른 원칙, 또는 공정하거나 바람직한 사회구조나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자유의의자 멜서스에게는 가난한 사람은 그냥 놔두는 게 정의다. 하지만 가난한 이는 도와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의 재벌과 정부는 맬서스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있다.
'권력자의 뜻'이 정치적 정의?이대로 가자는 보수적인 기능(지금 우리나라의 기조)과 사회를 개선하자는 진보적인 기능이 모두 정의 안에 들어있기에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정의의 원칙론을 존중한다. '정의는 불온하다'는 고백으로부터 시작하면서도 가진 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 점이 독자로서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어쩌랴. 학자로서 두루 헤아리는 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다. 부정의가 정의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의가 실패하면 부정의가 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입하여 특정 후보의 당선을 지원했다면, 역시 심각한 절차적 부정의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부정의가 발생한 많은 상황들은 정의가 실패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본문 44쪽)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움직였던 국정원 댓글 사건은 유명하다. 저자의 논리로 말하면, 정의가 실패했다면 부정의이고, 그 부정의로 잡은 권력이라면...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권을 향하여 정의로우라고 말한다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작금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 참혹한 심정이다. '진박' '친박' '비박', 이런 단어들이 다 뭔지 모르겠다.
유승민 의원을 사지에 몰아 놓고 탈당을 하자, "중대한 선거를 맞이하는 우리 당을 모욕하고 침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 몇 시간 전만 해도 "스스로 결단하는 게 맞다"며 물러나기를 압박했던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위원장 말이다.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다른 말로, '눈치를 보며', '압력에 따라') 공천을 밀어붙이는 모양새인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들에게 정의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뜻'이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 측이나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서는 그게 정의가 아니다. 서울 은평을, 서울 송파을, 대구 동갑, 대구 동을, 대구 달성까지 5곳에 공천위가 '박의 사람들'을 단수 공천하자 김무성 대표가 반기를 들었다. 무공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어떤 비난과 비판의 무거운 짐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 이를 두고 보수단체 종북좌익척결단은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김 대표가 "친북좌익세력을 돕고 우익애국세력을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대표가 하루 아침에 '종북'이 되는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이다.
사회정의는 '분배적 정의'다자, 여기쯤에서 이들에게 정의란 무언인가.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게 정의인가,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게 정의인가. 참 어렵다. 정의(正義)란 그래서 정의(定義)하는 것부터 힘들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쉽게 말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의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가 말하는 정의는 이미 정의롭지 못하다. 사회적 정의는 이미 '분배적 정의'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근대적 노동 분업 체계가 발달하면서 상품과 재화를 사회적 협업의 산물로 보는 인식이 싹텄고 이는 분배적 정의에 관한 새로운 발상의 출현"(97쪽)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몇몇 기득권자가 이들을 독차지하는 것은 부정의가 된다.
파케티가 말했듯, 자본이 노동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낸다. 하지만 부의 격차는 점점 커지며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경제성장>낙수효과>복지증대'라는 신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임원의 연봉은 8억7000만 원이다. 이는 평사원의 14배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낙수효과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의 '금수저들'은 '(기득권자의) 권리보호'라는 입장에서 '재분배나 공정한 분배'를 정의로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능력에 따라 분배된 거라고 하여 '능력주의'를 말한다. 하지만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계수단을 보장해줘야 한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여 결론을 맺는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결과로 발생한 부의 양극화 현상 때문이라면, 보다 강력한 분배적 정의의 실현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본문 261쪽) 덧붙이는 글 | <정의는 불온하다> (김비환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16. 2 / 271쪽 / 1만4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