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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어린이병원비연대'라는 단체가 생겼습니다. 그 단체에서 주장하는 핵심 내용은 중학생에 해당하는 만 15세 이하 어린이 입원비의 본인 부담분을 국가가 부담하자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말하면,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TV를 통해 병원비가 없어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이 봐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반응은 재원에 대한 걱정입니다.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걱정이 바로 되돌아 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국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5000억 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금액에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린이 입원비를 해결하는 데 그 정도의 재원이면 되는 것이 맞느냐"고 재차 물어보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2015년 경상 GDP가 1500조 원을 넘었고, 중앙 정부의 2016년 예산이 390조 원 정도 됩니다. 보험시장과 비교하면, 2015년에 전 국민이 민간보험사에 납부한 보험료가 200조 원이 넘습니다. 이런 수치들과 비교하니 5000억 원은 정말 적은 돈입니다. '설마 저 돈이 없어서 어린이 입원비 국가 부담을 안 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린이 입원비 100% 국가 보장, 통계가 입증한다  

 어린이 병원비 연대 출범
 어린이 병원비 연대 출범
ⓒ 어린이병원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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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수치를 따져보면 계산이 됩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5년 총 진료비가 58.0조 원이라고 합니다. 연령별 진료비를 따져보면, 노령층이 진료비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 0세부터 15세까지의 비율은 8.6%로, 금액으로 보면 5.0조 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금액에는 입원비 이외에 외래비와 약제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입원비는 전체 진료비의 1/4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금액으로 따져보면 1조 3400억 원입니다. 당연히 이 금액에는 이미 건강보험공단이 보장하고 있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확인해 보면 1조 2000억 원 정도 됩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추가로 보장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1400억 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건강보험공단 통계에서 빠져있는 금액이 있습니다. 바로 비급여 진료비(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급여 진료에 해당하면 건강보험공단이 대부분을 부담하고 일부를 본인에 부담시키지만, 비급여 진료비는 전액 본인 부담입니다. 이 진료비는 건강보험공단 통계에도 빠져 있습니다.

이 부분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은 매년 '건강보험 보장률'이라는 통계자료를 발표합니다. 이 자료를 활용하면 비급여 진료비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방법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급여 진료비는 평균적으로 4400억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만 0세부터 15세까지의 입원비의 급여, 비급여 본인 부담금을 모두 합하면 5800억 원으로 계산됩니다. '5000억 원을 투입하면 만 15세 이하 어린이 입원비를 국가가 부담할 수 있다'는 어린이 병원비 연대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금액이 우리 사회가 부담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도덕적 해이와 과잉진료 가능성도 낮아

생각보다 적은 재원으로 어린이 입원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또 다른 반론이 제기됩니다. '그런 식으로 국가가 모든 의료비를 다 부담해주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여 국가 전체의 의료비가 증가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려고 할 때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바로 과잉 진료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좀 다릅니다. 이미 민간보험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보험부터 시작해서 각종 어린이 보험 상품이 넘쳐납니다. 보장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잉진료는 이미 통계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어린이 입원비만 보장한다는 점입니다. 외래진료나 약제비는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원을 하면서까지 과잉진료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자녀를 입원을 시키면서 필요도 없는 진료를 받게 할 부모는 없을 겁니다.

1%씩 더 낼수도 있지만... 건보공단 여유 자금 활용하면?

재원에 대해 어린이병원비연대가 제안하는 방안은 다 같이 조금씩 더 내는 것입니다. 2015년 건강보험료에 정부지원금을 포함하면 약 50조 원이니, 기존 방식대로 걷는다고 하면 1%씩 더 내면 됩니다. 현재 1인당 월 부담액이 대략 4만 3천 원 이었으니 월 430원씩 더 내면 됩니다.

이렇게 조금씩 더 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접근도 가능합니다.

2014년 말 건강보험공단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이익잉여금이 17.1조 원입니다. 1년 전인 2013년 말에는 11.4조 원이었는데 1년 사이에 5.7조 원이 늘어났습니다. 일반 기업의 경우, 이익잉여금이 전부 여유 자금은 아닙니다. 이익잉여금으로 시설투자를 하고 R&D도 투자를 해도, 그 투자금의 대부분은 여전히 이익잉여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다릅니다. 매년 건강보험료를 걷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공단의 목적이기에, 대규모 공장을 지을 일도 없고 연구개발에 돈을 쏟아부을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은 이익잉여금을 거의 여유 자금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2014년 건강보험공단 손익계산서를 보면 그렇게 여유 자금을 운용해서 얻은 이익이 3327억 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입원비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원의 60%를 여유 자금 운용수익으로 마련한 셈입니다. 그런데 좀 아쉬움이 생깁니다. 그 운용수익률을 계산해 보면 2.3%밖에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공단의 이익잉여금은 언제 지출할지 모르기 때문에 장기로 운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흑자가 발생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보니, 자금을 운용할 전담조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로, 대부분 은행예금 등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공공기관 중 여유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대표적인 기관이 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연금기금의 2014년 운용수익률은 얼마였을까요? 5.2%입니다. 만약, 2014년에 건강보험공단의 여유 자금을 국민연금에 위탁 운용했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국민연금기금과 건강보험공단의 운용수익률 차이가 2.9%이고, 1년간 평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이 14.3조 원이었기 때문에 1년 동안 약 4140억 원이라는 추가 수익이 생겼을 것입니다.

2015년에는 얼마쯤 될까요? 아직 2015년 건강보험공단 결산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른 통계로 추정해 보면 2015년에도 최소한 2014년 이상의 흑자가 났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수적으로 계산하기 위해 2015년에 2014년 만큼의 흑자(5.7조 원)만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2015년 말 이익잉여금 예상치는 22.8조 원이 됩니다. 1년 동안 평균적으로 20.0조 원의 여유 자금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국민연금기금의 2015년 운용수익률이 4.6%로 하락했지만, 은행예금금리도 하락했으므로 운용수익률 차이는 2014년과 비슷할 것입니다.2014년과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아래와 같이 2015년에 5800억 원 이라는 추가 수익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에 여유자금 위탁,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표 1 : 국민연금 위탁 운용 시 추가 운용수익 예상액]

 추가 운용수익 예상액. (자료 : 2014년 건강보험공단 감사보고서, 2015년은 예상치)
 추가 운용수익 예상액. (자료 : 2014년 건강보험공단 감사보고서, 2015년은 예상치)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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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운용이 어려울까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보험급여 지급 증가 때문에 장기로 운용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공단이 협약을 맺으면 됩니다.

건강보험공단의 여유 자금을 국민연금에 위탁운용을 하고, 위탁된 자금 범위 내에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국민연금에서 빌려주면 됩니다. 국민연금은 적립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지출을 대비한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약 2조 원이나 됩니다. 그 돈이 아니더라도 20조 원 이상을 위탁 운용하는 공공기관이 금융기관에서 단기 대출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전체적인 방향에서 건강보험공단이 내부 유보를 늘리는 것보다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의 규정에 따라 한해 보험급여 지급액의 50%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하면, 그 준비금으로 적립된 금액이라도 좀 더 잘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입자로부터 조금씩 더 걷든, 여유 자금을 좀 더 잘 운용하든 아니면 내부 유보금을 일부 사용하든 간에 재정적인 측면에서 국가가 어린이 입원비를 부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보험료 올리려는 보험 회사 꼼수, '쿨하게' 반격하자    

최근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넘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개인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병원 등에 지급한 보험금이 많다는 의미인데, 보험료를 올리려는 사전 작업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금융 감독 당국이 보험료 인상을 막고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울상이라며 실손보험 시장에서 철수하고 싶다는 소식도 흘러나옵니다.

보험회사의 엄살에 정부가 이렇게 되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다고? 그럼 빠져. 이제부터 우리가 직접 책임질게."

덧붙이는 글 | 부천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인 콩나물신문에 동시 송고될 예정입니다.



#어린이병원비연대#어린이병원비#어린이입원비#입원비 국가보장#병원비 국가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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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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