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더민주와 정의당 사이 중앙당 차원의 야권 연대가 사실상 무산되었다. 더민주는 지난 23일 그 동안 공천을 미루고 있던 경기도 고양 갑과 안양 동안 을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을 전격 단행하였다. 해당 지역은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과 정진후 의원이 출마하려고 한 곳이었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더민주를 향해 '정치적 갑질', '모욕'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가능한 모든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고 기존에 합의되었던 지역(인천 지역과 창원 성산)외 다른 지역에서의 야권연대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강원도 춘천의 경우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야권연대를 합의했음에도 정의당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사실상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고 판단) 서울 동대문 지역 등 개별적으로 야권연대 논의가 진행된 지역에서도 후속 조치가 중단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의당과의 야권연대 무산, 전적으로 더민주 탓
천호선 공동선대위원장과 정진후 의원 등 정의당의 주요 인사들은 그 동안 진행되어온 더민주와의 야권연대 논의의 대략적인 내용을 공개하였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100% 공개된 것은 아니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나온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인천지역은 지역 시민사회 단체와 시당 차원의 오랜 신뢰와 축적된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자체적으로 단일화 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중앙당이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정의당 주요 정치인들이 현재 경기도를 중심으로 출마를 하기 때문에 우선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울은 경기와 인천에 준하는 방식을 적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더민주는 정의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2곳(경기 덕양갑, 안양 동안을)의 경우 공천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의당에 양보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사실상 정의당의 양보, 즉 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정의당의 박원석 의원이 출마하는 수원 정 지역도 포함되었다.
그 동안 더민주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이 쌓여 있던 정의당은 박원석 의원에 대한 사실상의 사퇴를 요구한 더민주의 태도에 매우 격분했고 23일 더민주가 그나마 두 지역에 대한 공천까지 단행하자 더민주를 강하게 성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야권연대를 통해서 실제 단일후보로 나가는 대부분의 후보는 정의당 소속이 아니라 더민주 소속 정치인들이다. 그러므로 비록 당세는 밀리지만 후보 경쟁력에서 더민주에 견줘 해볼만한 지역에 대해서 경선도 아니고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행위다. 그러면서 정의당 지도부 지역에 대한 공천까지 단행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야권연대를 위한 성실하면서도 진실한 자세라고 볼 수 있을까?
현재까지 나온 사실을 종합해보면 더민주와 정의당 사이의 야권연대의 난항은 전적으로 더민주 책임이라고 판단된다. 사실 둘 이상의 주체가 연관되어 문제가 발생한 경우 그 문제의 책임 소재를 따지다보면 어느 한 쪽에게 100% 과실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 번 더민주와 정의당 사이의 논의 과정을 보면 더민주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러면서도 더민주는 야권연대의 문을 닫지는 않고 있다. 이는 야권연대 포기를 선언하여 야권지지층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으면서도 선거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야권 지지층은 제1야당에 몰리게 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서 일종의 정치적 꼼수다. 그런데 이런 더민주 지도부의 구상은 현실화될 수 있을까? 이는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연대의식은 패권의식과 양립할 수 없다야권연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야권연대를 정치공학적 사고방식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보수뿐만 아니라 제3당론자(주로 국민의당 독자노선론자)들 역시 야권연대를 정치공학적 정치행위라고 비판한다. 이는 야권연대 비판에 있어 좌우합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필자는 야권연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치공학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야권연대는 '연대의식(連帶意識)'에 대한 이해 및 체화, 그 다음으로 이것의 공유 및 확산이라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제대로 빛을 볼 수 있는 귀한 보물인데, 이들은 이 과정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전적인 차원에서 연대의식은 사회구성원들간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상호의존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에서 풀어서 본다면 연대의식은 차이가 있지만 동질적인 부분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태도, 양적인 차이를 질적인 차이로 이해하지 않는 것, 사람의 마음을 상품(이해관계가 결부된 대상을 의미)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대의식에 기초한 야권연대는 패권의식과 양립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다. 연대는 복수 주체 사이의 상호 존중, 이해, 호혜의 관점에서 발현되는 것인데 패권은 힘의 역학관계 속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인 주체에 대한 압박과 굴복을 통한 지배를 지향하는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야권연대를 위해서는 힘의 우열관계에 있어 우위에 있는 세력이 패권적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
김대중도 이와 같은 연대정신을 강조하였다. 통합의 정신을 강조한 김대중이 서거 직전에 남긴 어록 중의 하나가 바로 '열의 일곱을 내주더라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권의식을 배격하고 연대의식을 강조한 것으로서, 지금 현실에서도 매우 큰 정치적 함의가 있다.
더민주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런데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는 더민주의 행태를 보면 연대의식은 찾아볼 수 없으며 패권의식에 물든 정치적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김종인 대표부터 해서 상당수 더민주 주요 정치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다.
김종인 대표는 필리버스터 중단 이후 야권통합 논의를 전격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안철수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 등을 볼 때 연대의식에 기초한 통합 논의를 전개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는 야권연대에 대해서 처음부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물론 분당 과정을 보면 국민의당과 전면적 연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과는 다르다.
정의당과의 연대는 길게 보면 1987년 민주화 투쟁 당시 형성된 기존 민주화 운동 세력의 정치적 연대의 복원, 그리고 짧게는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 사회 권위주의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는 김종인 대표가 마음대로 평가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정의당과는 '정체성이 다르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야권 단일화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것은 김종인이 갖는 한계인데, 이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더민주 내부의 문제와 맞물려서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더민주는 패권의식과 함께 도덕적 해이 현상을 함께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성격이 이중적이고 복합적이다. 현실적인 여건상 야권연대를 하게 되면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것은 제1야당인 더민주다. 야권연대를 하면 야당 전체의 확장이 이뤄지게 되며 더민주는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더민주에서도 누군가는 일부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희생을 보이는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지난 18일 더민주 중진 의원들은 야권연대를 호소했는데, 그 자리에서 당과 야권 전체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의원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더민주는 야권연대라는 과실(공공재)은 탐이 나는데, 이를 위한 희생과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것은 무임승차 행위인데 특히 기존 현역의원들이 더하다. 그러므로 더민주 내부 야권연대 논의의 진정성을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패권과 도덕적 해이로 지지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정의당과의 야권 연대 무산과정을 보면 김종인 대표와 더민주 지도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 문재인 대표와 심상정 대표 사이에 긴밀하게 논의되었던 구상이 김종인 대표 체제로 넘어오면서 더민주의 태도 변화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앞의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김종인 대표는 기존 야권의 정신과 질서를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매우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당과의 연대는 매우 역사가 긴 이야기인데, 야권의 역사와 정신을 잘 모르는 그가 너무도 독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김종인 대표의 독주를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기존 더민주 정치인들의 책임도 매우 무겁다.
더민주는 지역구 차원의 후보별 기계적인 연대를 사실상 당의 방침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상황을 몰고 가고 있다. 막강한 보수 여당을 견제해야 하므로 제1야당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는 논리로 소수당인 정의당을 압박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정치적 신념을 중시하는 정의당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를 이용하여 정의당과 지지층의 태도 전환을 시도(반은 강제, 반은 유도)하려는 행위로서 질적으로 매우 좋지 못하다. 이는 패권의식과 도덕적 해이가 결합된 행위이며 더민주가 소수 야당 정의당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연대가 가능할 수 있는가?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연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연결하고, 공감대를 넓히고, 마음을 동하게 하여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더민주가 이렇게 하면 정의당 지지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정의당이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내부 단결력과 구성원 사이의 정치적 일체감은 강한 정당이다. 그리고 당에 대한 지지자들의 자부심도 매우 강하다. 그런 정의당을 상대로 패권을 휘두르는 더민주는 과연 생각이 있는 정당일까? 없는 정당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없는 정당인 것 같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신 계승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김대중이 서거 직전에 남긴 중요 어록의 내용조차 무시하는 정당이 바로 더민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일반인 32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