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때 나는 해적이 되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극악무도한 해적의 아내라도 되려고 했다 음객들이 즐겨 쓰는 시편은 고리타분하다 여행만 해라 깨우치지 마라" - 김이듬의 시 <후이족 아내와 양의 끊어진 인터뷰 중)

시인 김이듬은 2015년 10월부터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부 한국학과에서 한국 현대시를 중심으로 한 한국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중이었다. 그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작은 도시이지만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때가 덜 묻은 순박한 사람들과 정갈한 자연환경 속에서 위로받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생활은 단조롭고 조용한 편이라고.

"학교 강의가 없는 날은 근처의 공원이나 강가를 산책합니다. 요즘은 날씨가 무척 춥고 눈도 많이 내려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놓고 책을 읽곤 합니다. 슬로베니아 에세이집을 준비 중이라서 밥을 먹듯이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2005년 <별 모양의 얼룩> 시집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 시집 <히스테리아>를 발표했고 지난해 22세기 시인 작품상과 김춘수 시문학상을 받았다. 첫 시집 시인의 말 '버려진 아이들, 갇힌 동물들과 병 중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울어 주지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 더 와 닿는 2016년. 출간된 지 10년이 흘렀고, 그의 선영역시집(選英譯詩集) <CHEER UP, FEMME FATALE>이 지난 1월 미국에서 출간되어, 문득 그의 타국 생활이 궁금했다.

슬로베니아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일과 시를 쓰는 일, 그리고 정다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 지난 1월 16일, 소박한 물음에 그는 정성껏 그의 인연과 그곳에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류블랴나에서 전해왔다.

시인 김이듬
 시인 김이듬
ⓒ 김이듬

관련사진보기


- 한국문학을 접한 학생의 반응이나 분위기는 어떤가요?
"한국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과 애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문학을 배우려는 태도가 적극적인 편입니다. 한국문학을 통해 한국의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식으로 호기심을 넓혀가기도 합니다. 가령,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강독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게 되는 거죠.

한국어를 더 빨리 습득하고 한국문화를 즐기려고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방학을 이용하여 서울에 다녀온 학생들도 있고, 학교 측의 지원으로 교환학생 신분이 되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노래나 음식, 사람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이곳은 대학 등록금이나 학비가 없기 때문에(국가에서 전액 지원)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좌절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처럼 꼭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대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 아주 열성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도 좋습니다. 이탈리아나 크로아티아에서 유학 온 학생도 있습니다."

- 슬로베니아 학생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하면서 느낀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계보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작가의 미학을 새삼 느낍니다. 며칠 전에는 한 학생이 '선생님! 한국의 시를 읊어주실 때, 그 발음되는 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음악 멜로디 같아서요, 제가 녹음을 좀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어는 음성학적으로도 뛰어납니다.

한 편의 한국문학을 강의하기 위해 저는 이틀 정도 꼬박 강의 준비를 합니다. 영어로 강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어의 미묘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적합한 번역어를 고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늘어가고 한국문학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는 큰 자긍심과 기쁨을 느낍니다. 슬로베니아에서 한국의 시를 가르치는 사람은 제가 최초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큽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 김이듬

관련사진보기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 김이듬

관련사진보기


마야, 치카코, 안드레이 그리고 강병융 교수와의 인연

그는 슬로베니아에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과 새롭고 친근한 인연을 맺었다. 그가 소개한 첫 번째 인연은 현지 대학의 아시아학부 교수 마야, 치카코, 안드레이다. 각기 다른 방면으로 훈훈한 영향을 줬다고. 마야 교수는 중국학과 세미나에 그를 초대해 1박 2일 농가 체험의 기회를 주었다.

"슬로베니아의 동북쪽에 있는 페스코비치(Peskovci)는 헝가리 국경과 가까운데 지어진 지 2백 년이 넘는 전통 농가에서 문학에 관해 토론하고 슬로베니아 전통음식과 전통술을 맛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은 일본학과의 치카코 교수는 비엔나 필하모니 공연과 슬로베니아의 중요한 화가, 리하르트 야코비치(Rihard Jakopič) 전시회 등에 그를 초대했다. 안드레이 교수는 그의 거주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다.

"류블랴나 대학 게스트하우스에서 객원 교수 형식으로 거주할 예정이었는데 제가 입국할 즈음 그 게스트하우스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거주지 구하기가 난감했습니다. 그때 안드레이 교수님은 자신의 아파트를 저렴한 월세에 빌려주셨습니다. 그분 따님이 살다가 오래 비워두었던 곳인데 제가 입주하기 전에 벽에 칠을 다시 하고 대청소도 했고 보일러 공사도 했다고 합니다.

퇴임을 앞둔 원로 교수님이신데 자신이 아는 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저를 소개하기 좋아하십니다. 새해 벽두에는 교수님 댁 근처에 사는 소설가의 집에서 신년회를 했습니다. 이곳의 예술가들이 열 명 넘게 그 집에 모여서 밤늦도록 담소와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발칸 음악도 들었는데 블라코 스테파노프스키(Vlatko Stefanovski)라는 연주자를 알게 된 것은 저에게 큰 예술적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는 사람은 한국에서 온 강병융 교수입니다. 그는 3년 전에 류블랴나 대학의 교수로 와서 한국소설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는데, 한 학기만 강의를 하고 떠날 저를 항상 챙기며 다정하게 대해줍니다. 입국하던 날에는 공항까지 픽업 나왔었고 '누나'라고 부르며 친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도 보기 드물게 좋은 사람들입니다."

삶의 시야를 넓혀준 성신욱 팀장

"슬로베니아에는 열 분 남짓의 한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작은 커뮤니티를 갖고 있는데 성신욱씨는 이 모임의 중심이 되는 분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타인을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지의 여행사 해피투어의 한국 팀장이기도 한 그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안내하여 저의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가령, 승마의 경험 같은 건 엄두도 내지 않은 제가 그분의 도움으로 리피자너를 보고 만지고 타기도 했다는 겁니다. 리피자너는 스페인 승마학교에서 사용되는 우수한 품종의 말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품종입니다. 그 말은 지능이 높고 활기가 넘치며 수려한 외모의 백마입니다. 또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와 치즈를 직접 만드는 농가에 가서 치즈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각종 치즈를 시식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와 마을버스 여행자들과의 만남

자전거 여행자 최영하씨는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하고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하고 있다.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를 거쳐 슬로베니아를 지나는 길에 우연히 시인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획일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어려움을 감수하고 여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자전거 뒤에 태극기를 달고 달리다가 밤에는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간단한 취사도구와 생필품, 침낭 등 그 무거운 짐들을 싣고 달리는 한국 청년의 모습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한국의 마을버스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 임택·정인수씨도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다. 시인은 '은수'라고 불리는 버스를 타고 함께 블래드 호수를 여행했다.

시인 김이듬
 시인 김이듬
ⓒ 김이듬

관련사진보기


"-낯선 남자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내 시집을 읽었는데 내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도 날 흠모한대요. 내 또래래요. 자기도 시를 쓰고 있다며 답장을 기다리겠다고.
-어디 산다고 해요?
-청송교도소에요." - 김이듬의 시 <팬레터> 중

시인은 청송교도소와 진주교도소의 수감자에게 시 특강도 진행했다. 그가 처음 받은 팬레터는 청송교도소에서 온 편지였고, 지금도 간간이 수감자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교도소에서 한 강의는 일반 강의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그는 차별점은 별로 없다면서, 그 이유를 문학은 수용자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별이 아닌 차이가 있다면…, 대학 강의에서 다루는 문학이론보다는 시 텍스트를 읽고 느껴보는데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저 혼자 떠들지 않고 대화하듯이 자신의 감상이나 의견을 말하게끔 하면 깜짝 놀랄 정도의 신선한 얘기도 많이들 하십니다. 수감자의 '번호'를 부르는 대신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가벼운 배려에도 그분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했습니다."

2001년 등단한 시인은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와 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를 발표했다. 첫 시집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 시인은 어떤 마음일까?

"<별 모양의 얼룩>은 첫 시집이라 각별함과 함께 부끄러움이 겹치는 시집입니다. 처음인 모든 것이 그러하듯 미숙하고 뜻밖으로 고백적이며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 대담하기도 했는데요, 2014년 제1회 서울연극인대상에서 3관왕을 수상한 연극 <변태>(연출 최원석)에는 저의 첫 시집에 수록된 작품 5편이 인용되었습니다.

시집은 저의 의도와 무관하게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시집 <별 모양의 얼룩>이 출간된 지 10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시의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더듬어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백지 앞에서 매번 처음 시를 쓰는 사람의 참담한 심정이 됩니다."

첫 시집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지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첫 시집 출간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시집을 감춰뒀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보고 실망하실까 봐 두려웠습니다. 가장 먼저 시집을 보여준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몇몇 친구였는지, 출판사 측에서 열어준 출간기념회 자리에서 만난 동료 시인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이듬 시인 선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
 김이듬 시인 선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
ⓒ 액션북스

관련사진보기


2016년 1월에는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작품을 선별 번역하여 묶은 선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말 액션북스 출판사와 시집 계약을 했는데, 이 사실을 잊고 있던 상황에 출간 소식을 들어 상당히 놀라고 기뻤다고.

"제 시집을 번역한 최돈미 선생은 미국 루시앙 스트뤽 아시아문학 번역상을 수상한 분이고 다른 두 분 이지윤, 요하네스 고란슨씨 또한 미국에서 인정하는 유능한 번역자이자 시인이기 때문에 번역이 아주 잘 되어 그 기쁨이 더 큽니다.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CHEER UP, FEMME FATALE>의 추천사를 쓰신 김혜순 선생님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영역시집의 추천사를 두 명의 여성 시인이 써주셨습니다. 한 분은 스웨덴의 유명 시인 아세 베리(Aase Berg)이고 한 분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한국의 시인 김혜순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책이 출간될 때까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국 출판사 측에서 김혜순 선생님께 추천사를 청탁한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 어려운 추천사를 흔쾌히, 더구나 아주 아름답고 길게 써주셨는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김혜순 선생님과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제가 2001년 시전문지 <포에지> 신인상 공모에 투고하여 등단했을 때 심사위원은 황현산, 김혜순 선생님이셨습니다. 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시를 쓰던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제게 이 두 분은 문학의 부모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외국 독자가 선생님의 시를 어떻게 읽을지 상상을 한 적이 있나요?
"저는 2012년 여름에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많은 외국 독자 앞에서 시를 낭독했습니다. 당시에 베를린 자유대학에 있었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한일 교류 시 축제(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 시 페스티벌(2014년), 프랑스 파리 발드마른 국제 시 비엔날레(2015년) 주최 측의 초청으로 외국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저의 작품이 유니크하고 아방가르드하다고 평하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한국의 시가 남북한의 통일에 주제의식을 둔다거나 전통 서정적인 형식일 거라고 생각한 기존의 선입견을 깨뜨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외국 독자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상상하고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지금, 현재 쓰고 계신 시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지금 현재의 시는 '바로 지금'의 범주에 있습니다. 즉 춥고 외롭고 낯선 이곳 동유럽의 삶이 시의 테마를 구성하게 됩니다. 물론 이 현실을 활주로로 삼아 더 멀리 저 너머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어젯밤에 쓴 시는 입양아와 조국의 관계를 다룬 시입니다. 다소 주제가 광범위해지는 감이 있지만, 실제로는 소소한 만남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제 또래의 여성을 파리의 로망드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녀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프랑스인이지요. 국적이 프랑스니까요. 그녀는 4살 때 한국의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 온 사람으로 자신을 버린 부모와 조국에 대한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경을 제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마음 깊이 그 친구의 정체성 문제와 아픈 삶을 공감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시를 끄적이게 된 것 같습니다."

- 독자가 시와 가까워질 수 있으려면 어떤 관심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다소 어려운 질문이며 '정답'은 없는 질문이겠지요. 작가들마다 그 답변이 다르겠지만, 저는 '마음을 열어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자기 생각이나 느낌과 일치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마음을 열면 어떨까요? 자신의 인생관이나 취향과 꽤 다른 시를 향해서요. 마치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조금 난해하거나 굉장히 낯설어도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할 때 의미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시에 관한 '어떤 관심'의 시초가 단순한 '호기심'이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 호기심을 통해 지각의 영토가 확장되지 않을까요? 미셸 푸코가 마지막 작품에 쓴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내 작업의 동기는 아주 간단했다.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나의 수고는 단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나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러한 호기심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 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러한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우리 인생에는 '성찰과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지각할 수도 있다'라는 의문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는 1월 말, 류블라냐 대학 2학기 수업을 마치고, 2월 초 귀국했다. 귀국 후의 큰 계획은 책 원고 집필에 몰두하는 것이다. 2015년 3개월에 걸쳐 파리에서 만난 20여 명의 인터뷰 녹취를 풀어 한국어로 번역, <파리 인터뷰>(가제) 출간을 준비하고 <슬로베니아 에세이>(가제)의 원고도 정리한다. 3월 말에는 미국 LA에서 열리는 AWP 행사에 김경주 시인과 함께 참석하며, 2학기에는 대학의 시간강사로 복귀하여 일상적 업무에 충실한다. 세부적인 일은 "하루하루 시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인김이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