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오전 7시. 첫 출근이다. 내 일터는 쇼핑몰에 입점한 스시집.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는 호주. 그래도 아직까진 밝은 아침이 출근길을 밝히고 있다. 면접도 없이 합격했다는 말에 친구는 시급을 물어봤다.

"수습 10호주달러, 시급 13호주달러."
"아 역시 한인잡(호주 내 한국인이 고용하는 일자리)이다. 무슨 시급을 그렇게 주냐?"

오지잡(호주 현지인이 고용하는 일자리)을 다니고 있는 친구의 시급은 17~18호주달러. 최저시급만큼은 주는 셈이다.

"시간은?"
"아홉 시간.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은 기네."

오지잡은 6시간 이상을 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한인잡의 장점이 발휘(?)된 것. 5분가량 부지런히 걸으니 건물이 보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10평짜리 주방이 보인다. 옷을 갈아입고 대기한다.

스시집에서의 노동이 시작됐다

내가 일한 곳은 스시나 롤을 파는 곳이었다.
 내가 일한 곳은 스시나 롤을 파는 곳이었다.
ⓒ pexels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포지션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홀, 핫푸드, 박스, 롤. '홀'은 말 그대로 손님을 응대하는 것. 영어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을 채용한다고 한다. '핫푸드'는 불이나 기름을 다루는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튀김, 벤또(도시락), 기타 스시나 롤을 만들때 사용하는 재료를 손질한다. 또한 밥을 식초물에 비비는 가장 중요한 작업을 병행한다.

'박스'는 네모난 플라스틱 박스에 스시나 롤 상품을 담는 일을 맡는다. 대부분 주방 이모를 돕는다. '롤'은 말 그대로 롤을 만드는 일. 학교나 배달까지 하루 평균 300개를 만든다고 하니 일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다른 지점은 하루 500개 이상을 한 사람이 만든다고도 한다).

기자가 처음으로 배정받은 포지션은 핫푸드. 기름과 불을 다루는 것이니만큼 위험성은 배가 된다. 사수를 따라다니면서 하나씩 배운다.

"주방 일은 해봤어요?"

사수가 서툰 칼질을 하는 기자를 보며 물었다. 처음 해봤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흔든다.

"힘들텐데…."

가게는 6명의 인원으로 돌아간다. 주방의 왕이모, 롤, 박스, 핫푸드, 홀, 매니저까지. 수습으로 들어온 사람은 그 기간 동안은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일을 익혀야 하니까. 주방 인원은 한인잡답게(?) 한인들로 구성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인 5명과 조선족 1명으로 구성된다.

"니는 여기 와서 #$%@…"

분명 한국말인데 알아듣질 못하는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나중에서야 조선족임을 알게 됐다. 연변 쪽에서 통용되는 사투리 비슷한 거라고 한다.

첫 주방일이라 그런지 서툰 구석이 있었지만 금세 적응 됐다. 핫푸드는 정해진 조리법대로 빠르게 요리가 나오면 된다. '테이크 앤 어웨이'라 스피드로 승부한단다. 핫푸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과 청소. 스시나 롤을 만들때 가장 기초적인 재료기 때문에 밥이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게 핵심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시간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여유롭다. 그 시간 동안은 설거지나 청소를 해 청결을 유지한다.

좀 더 일찍 오라는 한국인 vs. 왜 일찍 나오느냐는 호주인

다치면 안 된다. 나만 손해니까.
 다치면 안 된다. 나만 손해니까.
ⓒ pexels

관련사진보기


노동은 국적이 없다. 한국에서의 노동이나 여기서의 노동이나 고단함은 마찬가지다. 휴식시간이나 화장실 갈 시간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화장실을 가는 걸 딱히 막진 않지만 자신의 일이 급할 때는 그것도 사치다. 점심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한가한 시간에 돌아가면서 쭈그려 앉아 밥을 먹는다. 밥 먹고 나면? 다시 일이다. 휴식은 없다.

불에 데고 칼에 베여도 어쩔 수 없다. 캐시잡(임금을 현금으로 직접 받는 일자리, 세금 징수가 없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따로 병원비가 나온다든가 하지 않는다. 사수가 말했다.

"여기서는 최대한 안 다치도록 해야 합니다. 다치면 자기 손해니까요."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청소를 시작한다. 마무리하니 오후 4시 30분. 예정된 노동시간보다 30분이 추가됐다. 그러나 추가시급은 없다. '한국적 마인드'라고 할까.

"추가 시간에 따라서 돈을 더 주는 게 없어요. 가끔 출근을 10분씩 일찍 하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때도 무료 봉사죠."

휴일에 나오는 휴일수당은 머나먼 이야기다. 매번 10분씩 늦게 끝난다. 그때마다 시간은 계산되지 않는다. 캐시잡이 불법이라 그런 것도 아니다. 오지잡에서 캐시로 주급을 받는 친구의 증언이다.

"여기서는 시간으로 정확하게 돈을 챙겨줘. 휴일에 일한다고 1.5배로 주더라."

또 다른 오지잡에서 일을 하는 친구의 말.

"일이 시간 내에 딱 끝내는게 중요해. 셰프가 조금이라도 더 일하면 돈을 줘야 한다고 시간 맞춰 가라고 한다니까. 처음에는 한국처럼 10분 전, 15분 전에 일찍 나왔는데 보스가 뭐라고 하더라고."

그들 문화에선 '왜 일하는 시간보다 일찍 와서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던 모양이다. 결국 보스가 친구에게 "제 시간에 맞춰와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한다.

서핑을 타러 오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적한 구석에서 누워 바다를 찍었다.
▲ 퇴근 후 찍은 맨리비치 서핑을 타러 오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적한 구석에서 누워 바다를 찍었다.
ⓒ 백윤호

관련사진보기


일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남았다. 한국에서 저녁 시간은 퇴근과의 전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공식적으로 오후 4시 이후에는 나만의 시간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 맨리 비치까지 걸어간다.

30여 분을 걸으니 나오는 비치. 일을 끝낸 자의 여유라니. 한국에서 외치던 '저녁 있는 삶'이 이곳에는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여유롭게 자신만의 시간을, 운동을 보내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생소한 모습이다. 그들의 여유를 보며, 나의 여유를 즐기며 그렇게 첫 출근을 마쳤다.

[지난 연재 기사]

① 말레이시아 군인의 "안녕하세요" 인사말
② 페리 타고 가는 시드니, 경치에 탄성이 "와!"
③ 평일 낮 3시인데... 공원에 사람이 많다?
④ 그놈의 돈 때문에... 한국인 사장님을 선택하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한인자, #워홀러, #첫 출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