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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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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주택 모퉁이, 서양 민들레가 달빛이 아닌 가로등에 낯을 드러내고 있다. 꽃은 폈다 진지 오래, 꽃대는 줄기없는 민들레의 기둥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많던 민들레 홀씨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가로등에 비친 빈 둥지의 휑함이 서늘하다.

서양 민들레처럼 이 땅 고유종이 아닌 식물을 '귀화식물'이라고 부른다. 원래 살던 땅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라는 의미다. 아무래도 '귀화식물'이란 이름 붙이기엔 그 식물이 새롭게 머물러 살게 된 땅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땅이 아닌 식물의 능동성에 의미를 담아 '개척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귀화식물이라 부르든 개척식물이라 부르든 지어부르는 이름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그들 역시 이 땅의 한 부분을 뭇생명들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귀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간혹 토종만이 진실한 생명체인양 엄숙 떨면서 귀화식물이나 이주동물을 악의 화신처럼 대하는 이들이 있다. 생명을 차별하는 그 고약한 생각과 버릇이 사람대할 땐 달라졌겠는가. 귀화식물을 적대하는 이는 이주노동자도 적대한다. 이주동물을 천대하는 이는 이주노동자도 천대한다. 풀이건 꽃이건 사람이건 이 별에서 차별받아 마땅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줄기를 뻗지 않고 뿌리에서 바로 잎사귀를 밀어올리는 민들레의 모습을 보고 오래전 이 땅에서 살았던 이들은 '앉은뱅이풀'이라 부르며 매우 친근하게 대했다. 어설픈 지위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고 낮은 어깨 서로 감싸안으며 평등하게 살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 그 소박한 바람을 품에 않은 채 민들레 홀씨들은 낯선 땅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 다시 그 땅의 귀화식물이 되고 개척식물이 될 것이다. 그 끝없는 꿈의 흩어짐으로 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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