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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8일 오전 9시 9분]

1981년 4월 어느 날 미국 3대 일간신문의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이틀 전 퓰리처상 특집보도상을 받은 흑인 여기자 재닛 쿡(Janet Cooke)을 편집국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그녀의 퓰리처상 수상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그 기사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쿡 기자는 질문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대답도 하지 못했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하여 닉슨 대통령을 중도 사임하게 만든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뉴욕 타임스를  능가하는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쿡 기자를 돌려보내고 편집국 간부회의를 소집, 프랑스를 포함한 몇 개 외국어를 한다는 쿡 기자의 이력서 기록이 거짓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가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 완전 '소설'인게 틀림없으므로 퓰리처상을 퓰리처위원회에 돌려주기로 했다.

문제의 기사는 7개월 전인 1980년 9월 28일 워싱턴 포스트 1면에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라는 제목으로 크게 나갔다. 내용은 워싱턴 흑인 밀집지역에 사는 8세 흑인 소년이 헤로인(마약의 일종) 중독에 걸려 그 덫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었다.

쿡 기자는 소년의 자존심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본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소년의 어려운 가정형편과 마약 중독 소년의 괴로운 삶을 너무나 절절하게 기록하여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미의 세계' 기사
 '지미의 세계' 기사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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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사가 보도된 후 워싱턴 시 당국이 소년을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신문사는 쿡 기자에게 취재 경위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거짓 기사를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문사는 그녀의 기사 '지미의 세계'를 1981년도 퓰리처상 보도부문 수상후보로 추천까지 했고 쿡 기자는 언론의 노벨상이라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런데 상을 받고 나자 그 기사에 대한 관심과 의문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우선 쿡 기자의 이력서를 꺼내 보았다. 거기에는 그녀가 프랑스어 등의 다양한 외국어를 한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브래들리 국장은 그녀를 불러 프랑스어로 테스트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쿡 기자의 학력도 해당 2개 대학에 조회해 보니 석사학위는커녕 학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중퇴한 사실이 드러났다.  

쿡 기자는 자진 사퇴 형식으로 해고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장 명의로 사과문을 내보냈다. 8년 전 현직 대통령 리차드 닉슨을 하야시킨 신문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미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샤 마르케스는 "재닛 쿡이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도 부당하다"고 비꼬았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를 지휘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도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도널드 그레이엄 사장은 사표를 반려했다.

재닛 쿡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1996년 ABC 방송의 토크쇼에 나와 워싱턴 포스트 같은 일류신문사에서 쟁쟁한 기자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결국 그런 거짓 기사를 쓰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한 가수는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란 노래를 만들어 재닛 쿡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제작권을 한 기획사가 120만 불에 사들였으나 영화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61세의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1996년 ABC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재닛 쿡
 1996년 ABC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재닛 쿡
ⓒ ABC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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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 후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수도의 최고 신문일 뿐 아니라 세계적 신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종이신문의 발행 부수가 줄어들고, 광고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경영이 점차 어려워졌다. 마침내 2013년, 거대 인터넷 물류회사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에게 신문사를 팔았다.

오늘 4월 7일 제 60회 신문의 날을 맞은 한국 언론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입니다



태그:#퓰리처상, #재닛 쿠욱,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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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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