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당신은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지난 2월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취재할 때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안타까워했습니다.
당신은 오전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당신에게 연장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겁니다. 달력의 빨간 날도 당신에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주말에도 나와야 그나마 빠듯한 가계에 숨통이 트인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하루라도 쉰다고 하면 회사에서는 아예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일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정치인들은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생각하곤 했겠지요. 국회의원들이 싸움박질을 한다는 내용의 뉴스는 이제 신물이 납니다. 그렇지만 며칠 전 퇴근길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선거 공약에, 반쯤 감긴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 '속는 셈치고 투표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테지요.
그렇지만, 막상 투표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국회의원선거일에 회사는 쉬지 않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점심시간에 회사를 나와 집 근처 투표소에 가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회사에 투표할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던데, 누가 회사에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에이, 어차피 투표도 못하는데, 관심 끄자' 하고 마음을 돌렸나요?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투표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같이 선거일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전투표제가 도입됐습니다. 2013년 1월에 처음 도입됐으니, 이번 선거는 사전투표제가 실시되는 첫 국회의원선거가 되겠네요.
부재자 투표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에 있을 때 부재자 투표를 경험합니다. 정해진 기간에 부자재 신고를 한 뒤, 우편으로 받은 투표지로 투표를 하지요. 저도 군대에 있을 때 부재자 투표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신고기간을 놓치면, 투표 기회를 잃습니다. 저 또한 제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는 제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첫 선거였습니다. 마음속에 누구에게 투표할지 정해두었죠. 저는 그해 12월 선거일을 보름 앞두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 와중에 부재자 신고를 하지 못했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했지요. 사전투표제는 이러한 부재자 투표를 한층 업그레이드한 겁니다.
그때 사전투표제가 있었다면, 저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특히, 사전투표제는 선거일에 일하는 유권자의 투표할 권리를 지켜줍니다. 사전투표제가 실시된 2014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6.8%로, 2010년 지방선거 때보다 2.3%포인트 높았습니다.
8일(금)과 9일(토)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어디에서든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투표소가 있다면, 10분만 시간을 내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선거구가 달라도, 신분증만 있으면 내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사전투표소는 주로 주민센터에 마련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전투표소 찾기에서 사전투표소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했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한 표가 저녁이 있는 삶이나 최저임금 인상을 가능하게 할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는 데 큰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국회에 당신을 대변할 국회의원 몇 사람쯤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