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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정도 근무하는 조그만 회사에 다닙니다. 20대 총선 선거일(4월 13일)에 출근합니다. 사전투표일이 4월 8일(금)은 근무일이고 9일(토)은 휴무입니다. 사장님이 토요일에 사전투표를 하고 선거일에는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자고 하시네요. ㅠㅠ. 그런데 그날 오전부터 집안일이 있어서 투표를 못 할 것 같은데 어쩌죠?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투표하지 말래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상담소(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로 선거일 투표시간의 유급여부를 묻는 상담이 늘었다.

다가오는 총선일은 '공휴일'이다. 흔히 '빨간 날'이라고 불리는 공휴일은 대통령령인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해진다. 공무원과 공기업, 일부 민간기업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쉰다.

이들을 제외한 민간기업 노동자에게 선거일은 그냥 일하는 날이다. '을'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선거일에 근무하는 도중에 사업주에게 투표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절차다. 때문에 국가는 <근로기준법>과 <공직선거법>을 통해 이를 보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선거일 투표시간은 보장되어야

선거일이 근무일인 경우 근로기준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투표시간은 유급으로 보장된다.
▲ 선거일 투표시간관련 법령 선거일이 근무일인 경우 근로기준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투표시간은 유급으로 보장된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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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10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행사를)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고 정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 6조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투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둘을 종합하면 선거일에 근무하는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가 투표를 위해 사업주에게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요청하면 사업주는 이를 유급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상담을 들어보면 투표권 보장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사업주가 노동자가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요구했음에도 이를 거부하거나 투표시간을 주되 그만큼 임금을 공제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는 명백하게 <근로기준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노동자가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청구했음에도 사업주가 이를 거부할 경우 사업주는 <근로기준법> 제 10조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근로기준법> 제 110조).

최근에는 토요일을 끼고 사전투표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주 5일제의 시행으로 토요일이 휴무일인 회사가 많아지고 토요일을 사전투표일로 정하면 선거일에 출근하는 사업장 노동자의 투표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못 했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용자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 선거일 사업주가 투표시간을 안준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용자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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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가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독려하고 선거일에 투표시간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사업주 입장에서는 근무일이 아닌 사전투표일에 노동자가 투표를 가능하다 항변할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선거일에 투표시간을 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투표일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인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이다. 사전투표일이 휴무일이고 그날 투표를 독려했더라도 노동자가 개인 사정으로 휴무일인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못 해서 근무일인 선거일 당일에 노동자가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요청했다면 사용자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

동등한 투표권 보장을 위해 선거일을 법정 유급일로.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에서 선거일을 법정 유급휴일로 정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과 <공직선거법>이 선거일에 근무하는 경우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허용하도록 정하고 있지만'을'인 노동자의 처지에서는 '갑'인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은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투표실태 조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지난 3월 14일부터 31일까지 부산지역 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투표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이들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243명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업주가 정상출근을 요구해서'(37.1%),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또는 인사상 불이익 때문에'(29.8%), '임금이 삭감되기 때문에'(15.1%)순 이었다.

조사결과는 노동자들의 투표불참이 정치참여의 무관심이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투표가 어려운 사업장 현실 때문임을 보여준다. 더욱이 조사 대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정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투표의 권리가 불균등하게 보장되는 것이다. 선거일을 법정유급휴일로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에서 일합니다.



태그:#노동OK, #투표시간 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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