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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9세의 나이로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혜성처럼 등장한 시인이 있다. 송라(松羅) 박경용은 시와 시조로 문단에 등장했지만, 등단 이후 아동문학 쪽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동시, 동화, 아동문학평론 등의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1969년에 출간한 첫 시집 '어른에게 어려운 시'도 동시집이었며, 이후 여러 권의 동시집을 발간했다. 특히 박경용은 아동문학 비평의 황무지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날카로운 평론으로 아동문학 평론의 장을 열고, 아동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음악 둘레 내 둘레> 박경용 시인이 '음악'을 소재로 쓴 연작동시조집이다.
<음악 둘레 내 둘레> 박경용 시인이 '음악'을 소재로 쓴 연작동시조집이다. ⓒ 도서출판 소야
이렇듯 한국 아동문학의 산 증인과도 같은 노시인 박경용이 이번에 <음악 둘레 내 둘레>(도서출판 소야)라는 새로운 동시집을 출간했다. 그동안 열권이 넘는 동시집을 출간했지만, 이번 책에 더 시선이 머무는 것은 첫째로 '동시조' 집이라는 것, 둘째로 하나의 소재에 깊이 집중한 '연작동시조' 집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음악 둘레 내 둘레>에는 무려 10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 50편 정도만으로 구성되는 최근의 동시집을 볼 때 놀랍고 파격적이다. 104편 모두 우리의 전통 가락인 시조에 동심(童心)을 얹은 '동시조' 작품들이다.

박경용 시인은 시조 시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집'의 열여덟 번째 작품집인 '도약'을 펴내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어린이를 위한 동시조 창작과 활성화에 힘을 쏟아, 동시조 동인 '쪽배'의 좌장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이번 책은 시인의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음악'이라는 하나의 소재에 집중해서 만들어낸 작품들이 모인 연작동시조집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단어를 100명에게 던져주고 각자 떠오르는 단어나 생각을 적어보게 한다면 30여 개 정도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낱말,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한 작가가 동일한 작품을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소재에서 발상을 찾고, 그 발상을 문학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작품으로 창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인데, 동일한 소재에서 이 과정을 반복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박경용 시인은 '음악'이라는 단일 소재로 100개가 넘는 새로움을 만들어 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을 살펴볼수록 음악이라는 소재를 두고 깊이 '묵상'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적 형상화도 조밀하고 깊으며, 문학적 완성도도 매우 높다.

시인은 이미 1980년에 '전통'이라는 단일 소재로 연작동시조집 '별 총총 초가집 총총'을 발간한 바 있으며, 이번 신간은 36년 만에 발간한 두 번째 연작동시조집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음악 둘레 내 둘레>에 수록된 동시를 두 편만 만나보자.

이름 값 하느라

생뚱맞기만한 이름
찐빵가게 '모차르트'.

실실 웃음 흘리며
그 앞을 지나치면

그래도
이름 값은 하느라
달콤한 김이 솔솔솔.

짝을 잘 만나야

내가 불러 잡쳐버린
밍밍한 그 동요를

짝꿍이 고쳐 불러
짭짤하게 일으켜요.

노래도
짝을 잘 만나야
쪽팔리지 않지요.

음악이 확장되면 친구와의 이야기도 되고, 동네 작은 찐빵 가게도 된다. 이 책 속에는 이렇듯 음악이라는 소재가 가족과 학교, 동네 풍경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전문적인 음악 영역까지도 다루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쉽게 읽히면서도, 우리 가락을 느낄 수 있어서 흥겨운 동시조로 가득한 이 책은 노시인이 깊은 묵상으로 어린이와 어른들, 같은 아동문학 작가들에게 내놓은 선물이다.


음악 둘레 내 둘레

박경용 지음, 강민정 그림, 소야(2016)


#박경용#동시조#소야#도서출판 소야#음악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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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문학가, 시인, 출판기획자 * 아동문학, 어린이 출판 전문 기자 * 영화 칼럼 / 여행 칼럼 / 마을 소식 *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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