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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자는 스무살 대학생의 다짐.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자는 스무살 대학생의 다짐. ⓒ 삽화작가 이남형

[아들의 이야기] 4월, 꽃다운 청춘들의 죽음을 떠올리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말에 사투리가 좀 붙은 거 같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친구들을 보면, 또 햇살이 따뜻해지고 봄바람 부는 이맘때가 되면 세월호 침몰사고가 생각이 난다.

2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서먹서먹한 새학기 친구들과 이제는 친해져 가던 시기. 세월호 사고는 그동안 뉴스에서 나왔던 사건 사고를 접했을 때와는 달랐다.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됐다.

같은 나이 친구들의 죽음은 옆자리 짝꿍을 다시 돌아보게 했고, 우리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같은 대학에서 만나 친구가 됐을 수도 있을 것이고, 이번 총선 때 생애 첫 투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캠퍼스 안에서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친구, 선배들을 종종 본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해주고 있어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침몰사고만 아니었더라도 단원고 친구들과 캠퍼스 잔디밭에서 벚꽃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텐데…. 스무살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는 4월이 안타깝다.

[아빠의 생각] "우리 사회는 애도를 너무 빨리 끝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 밤, 나는 고등학생 2학년이었던 아들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더욱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많은 이들이 슬픔과 분노를 토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등장했다.

내가 활동하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에서도 매달 16일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획글을 올리고 있다. <숨쉬는 4.16>이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는 2014년 7월부터 시작했으며 2017년 4월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작가들이 글을 통해 보내는 3년 상인 것이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 제 나름대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공방 그래'를 운영하는 50대 중반의 목수 고충환씨는 나무에 불도장을 찍으며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 지난달까지 그가 만든 나무고리만 해도 8000개가 넘는다. 나무고리에 찍힌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문신처럼 새기려는 그의 마음은 여전히 애절하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날 아이를 낳은 당진의 정서희씨는 삶을 통해 죽음을 목격했다. 그녀는 당진 버스터미널에 혼자 나가 피켓을 들었다. 그녀는 정치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던 평범한 아줌마였다. 그녀는 영문도 모르고 세상을 등진 학생들의 삶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거리로 나선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참하는 이가 늘어난 것은 소중한 위안이다.

서른아홉 평범하게 살아온 대전의 박민선씨가 세월호 학생들을 위해 인형과 소품을 만든 것은 2014년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그녀는 아이들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기억하고 싶어 바느질로 이름을 새겼다. 그렇게 200명이 넘는 이름을 바느질로 기록했다. 올해까지 모든 학생의 이름을 새긴다는 게 그녀의 계획이다.

참교육학부모회 대전지회에서 활동하는 최윤정 강영미씨는 매달 16일마다 세월호 관련 집회를 연다. 대전역을 비롯해 대형마트 백화점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피켓을 들고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외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의 작가로 참여한 인권활동가 유해정씨도 만났다. 그녀는 용산참사나 인혁당 유가족 등 다양한 인권 피해자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녀는 큰일을 겪은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들은 고립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애도를 너무 빨리 끝냅니다. 충분히 사람들에 귀기울여주는 것,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의 조각들을 같이 찾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4월 14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당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한 쪽에 걸린 '잊지말라 0416' 목판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지난해 4월 14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당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한 쪽에 걸린 '잊지말라 0416' 목판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 유성호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또 다른 사연도 만났다. 2013년 7월 18일, 안타까운 청춘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고 김동환, 이병학, 이준형, 장태인, 진우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치유되지 않은 슬픔을 세월호를 통해 돌아봤다.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당시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 5명은 안면도 백사장항 인근에서 교육훈련을 받던 중 급류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았다. 고 진우석 군의 어머니를 만나 끊이지 않는 대형참사의 안전문제를 짚어봤다. 세월호와 더불어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도 잊지 말아야 할 참사임에 분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만나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그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사고가 발생한 경위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책임자들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도 세월호는 암흑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그 이유만으로도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충분하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했다. 그런 점에서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모든 생명은 보호돼야 한다는 의식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식에 대한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인간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버릴 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의 관계망은 끊어질 것이고 인간재앙의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를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의 죽음을  멀리할 게 아니라 우리 삶 곁에 더욱 가까이 끌어와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생명이 더욱 경건해진다는 걸 안다면, 죽음을 밀쳐내는 일은 이제 멈출 일이다.




#세월호#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바다#태안 사설해병대 캠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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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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