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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나타난 민의에 여야는 한껏 몸을 낮춘 자세다. 어느 정당도 자신들이 민심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 청년실업과 어려워진 경제여건을 타개하려는 어떤 의지도 없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이번 선거로 나타난 것일 게다.  

더욱이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의 전횡, 갈팡질팡했던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 논란 등이 표심에 반영됐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민생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기에, 국민들이 투표로 두 당을 심판한 것이다.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증가한 것,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에서 거의 석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투표에서는 오히려 국민의당에 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이를 증명한다.

선거가 끝난 지금, 여권은 친박이나 비박이나 모두 말을 아끼고 있어서 표면적인 대립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의 민심해석은 사뭇 다르고, 각자 자신들의 정파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문재인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들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하고 그 자리를 국민의당이 차지한 것에 대하여 매우 불만스러워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호남이 자민련으로 전락했다', '전라민국을 만들어라', '지역감정을 선동하여 말뚝만 꽂으면 당선되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는 개가 웃을 소리다' 등 악의에 찬 저주의 목소리를 쏟아 낸다.

뭐가 그렇게 그들을 불편하게 했는가? 왜 그들은 호남이 무조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더불어민주당만 야권세력이고 정의로운 세력인가? 그동안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할 때 그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라민국'이라는 단어나 지역감정 선동,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비판을 가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민심해석이 얼마나 옹졸하고 편협한 것인지 묻고 싶다. 심지어는 국민의당이 없었더라면 새누리당을 압도해서 180석 이상을 차지했을 것이고, 야권분열로 인해서 오히려 의석을 놓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도 일삼는다. 그렇게 옹졸한 주관적 해석으로 어떻게 판세를 분석해서 미래를 대처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당 지지하는 호남에 퍼붓는 저주, 타당한가

 지난 2004년 3월 20일 서울 세종로에서 덕수궁앞까지 수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위한 100만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20일 서울 세종로에서 덕수궁앞까지 수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위한 100만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선 이번 총선과 17대 총선을 비교해 보면 이번 총선의 표심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발의로 민심이 새누리당과 새천년민주당에 대하여 최악인 상태였던 17대 총선 말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지역구 100석, 비례대표 21석으로 121석을, 열린우리당은 지역구 129석, 비례대표 23석으로 152석을, 새천년민주당은 지역구 5석, 비례대표 4석으로 9석을,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으로 10석을 각 차지하였다.

야권 지역구 득표율은 열린우리당이 41.99%, 새천년민주당이 7.96%, 민주노동당이 4.31%였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37.90%, 자유민주연합은 2.67%였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는 한나라당 35.8%, 열린우리당 38.3%, 새천년민주당 7.1%, 민주노동당 13%였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어떠한가? 지역구 전체 득표율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17대 총선거에 비교해서 야권이 얻은 득표율은 훨씬 높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별 득표율은 새누리당이 33.5%, 더불어민주당이 25.54%, 국민의당이 26.74%, 정의당이 7.23%다.

분명한 것은 17대 총선의 경우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심판의 대상이었고, 이번 총선의 경우 주된 심판대상은 새누리당이었지만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호남지역에서 심판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17대 총선과 이번 20대 총선을 비교하면 여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낮게 나타났고, 야당의 득표율은 예상을 초과한 것이다.

결국 제3의 정당인 국민의당 때문에 여당 지지층에서도 국민의당을 지지한 세력이 많은 것이고,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의 경우에는 정당득표율에서는 심판을 받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이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는 세력이 국민의당에 표를 던져 막대한 정당득표율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국민의당이 없었더라면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독단이고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는 만행이다. 새누리당이 여러 가지 실정을 거듭한 것이 명백하지만 17대 총선에서 나타났던 국민적 저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야권이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제3의 정당인 국민의당에 상당 부분 투표했음을 나타내는 것임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이 없었더라만 180석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심의 방향을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오만의 극치를 보인 것이다

호남 심판 받은 더민주, 결코 승리한 것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광주방문 2일째인 9일 오전 광주 문빈정사를 방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광주방문 2일째인 9일 오전 광주 문빈정사를 방문하고 있다. ⓒ 이희훈

정확하게 민심을 읽는다는 것은 앞으로 정당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원하는 당면과제가 무엇이며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첫걸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이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비록 새누리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분명 자신들도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세력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이며 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호남세력의 지지를 얻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문재인을 지지하는 일부 극렬한 세력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일 뿐 문재인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을 보더라도, '호남의 선택은 폐쇄적인 지역감정에 매몰된 것이며 호남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그들은 '호남이 자민련화 되었으며 호남에서 민주개혁세력이 후퇴한 것'이라 주장한다. 호남이 '전라민국'화 되었다고 외치기도 한다. 사실 호남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다가 이번에 대안세력인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진 것일 뿐이다. 전남과 전북에서 각 1명씩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분열하면서 발생한 어부지리일 뿐이다.

그동안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던 때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민의당으로 표심을 옮겼다고 해서 지역감정이니, 정치적 후퇴니 하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비난일까? 더불어민주당만이 호남에서 지지를 얻어야 하고 다른 어떤 정치세력도 호남에서 지지를 받으면 안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호남에서는 맹목적으로 지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영남에서 맹목적으로 지지를 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의 표심을 먹고 산다는 정치세력으로 오만이고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새누리당과 똑같은 수구적인 발상이고 진보와 개혁을 논하는 그들이 내세울 수 없는 논리다.

그럼에도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것을 집요하게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권 경쟁에서 야권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대립의 문제다. 야권후보의 경우 호남의 지지를 얻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동안 야권의 대선 후보는 문재인이 앞서 나갔고 안철수는 그다음을 차지했다. 문재인에 대한 호남세력의 지지가 견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야권의 대선후보 경쟁에서는 안철수가 문재인에 앞서거나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결코 참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들은 문재인이 아무런 경쟁 없이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비민주적이고 파쇼적인 발상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한 비난을 일삼으면서 호남세력과 안철수가 연대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을 지지하던 호남을 이젠 수구적이고 지역감정을 드러낸 세력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사실 호남은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다가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뿐인데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모욕적인 비난이고,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비난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당에 비난을 퍼붓는 것, 아무런 도움 안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총선에서 정당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25.54%, 국민의당이 26.74%다. 지역구 투표의 경우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되고, 비례대표의 경우 자신들이 원하는 정당에 투표한다. 그렇기에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세력들은 새누리당의 어부지리 당선을 막기 위해서 지역구 투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고 정당별 투표는 국민의당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호남에 거주하는 세력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호남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세력을 나누는 것은 자의적인 이간질에 불과하다.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당득표에서 각 8개씩 서로에게 앞서는 득표율을 보였고 서울과 경기, 인천 등의 지역에서는 모두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 굳이 자의적인 해석을 통하여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세력과 호남지역 거주민을 나눠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이유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 야권 후보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정해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편법이나 술수를 통해서 상대를 배척할 필요는 없다. 상대 후보에 대한 모멸찬 비난이나 폄하는 야권의 집권을 멀어지게 한다.

현재 드러난 문재인이나 안철수, 그리고 다른 야권 후보들이 아무런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후보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마음으로 지지할 수 있을 것이며 야권의 집권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하여 지나친 비난을 퍼붓는 것은 집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록 이번 총선을 통해서 드러난 민심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분명한 국민의 뜻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민심이 문재인에게 불편하고 불리하다는 이유로 호남을 비하하는 집단적 의사 표현은 야권의 집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문재인의 대권가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누가 되었든 야권의 대선 후보는 호남세력의 지지를 얻는 데서 시작해야 함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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