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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당선자 김해영(더불어민주당)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당선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 후보와 맞대결해 승리했다.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당선자 김해영(더불어민주당)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당선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 후보와 맞대결해 승리했다. ⓒ 정민규

김해영은 20대 총선에서 당선 자체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39살인 그는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가장 어리다. 원내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전체 당선자 중에서도 최연소다. 지역구는 부산이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야당 세가 강하다는 '낙동강 벨트'인 서부산이 아니라 여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연제구에서 '친박' 정치인과 맞붙어 단 한 번 만에 금배지를 달았다.

물론 이런 주목받을 이야기도 많지만 언론은 그에게 조금은 특별한 수식어를 가져다 붙였다. 그의 이름으로 기사를 찾으면 '흙수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부유층과는 정반대라는 의미이다. 18일 오전 연산동 선거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당선자에게 이런 수식어가 싫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흙수저는 맞으니까요."

언론이 붙인 이 명칭을 그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에게 가난은 부담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다. 고모에게 맡겨 졌다. "쌀을 못 살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도시락을 챙겨줄 보살핌은 없었다. 장사하는 고모를 대신해 밥만 한가득 도시락을 싸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반찬을 나눠주었다. 

어릴 적 꿈은 운동선수였다. 그냥 운동을 좋다는 이유에서 였다. 어디선가 구해온 권투 글러브로 꿈을 키웠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중·하위권 내지는 바닥권 성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6개월간 가출을 해 공사장 막일 등을 하며 지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미용기술을 배웠다. 꿈은 미용실을 차리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회의원 된 것보다 법대 간 게 더 신기하죠"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김해영(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장을 맡으면서 였다. 그는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활동을 통해 “사회 부조리와 약자 계층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이때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김해영(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장을 맡으면서 였다. 그는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활동을 통해 “사회 부조리와 약자 계층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이때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 김해영선거사무소

입시를 코앞에 두고야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간을 공부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고 김 당선자가 '기적'이라고 불렀던 일이 일어났다. 부산대 법대에 합격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김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된 거보다 내가 법대에 간 게 더 신기한 일인 거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돌봐준 고모가 그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제대 후에는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다. 악화하는 병세 속에 아버지는 법대에 다니는 아들이 사법시험에 통과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정말이지 합격증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의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한 채 2007년 겨울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에야 2009년 사법시험에 통과했다. 뒤늦게 합격증을 들고 경남 양산에 잠든 아버지를 찾아가 펑펑 울었다. 2010년부터 시작한 사법연수원 생활에서 그는 노동법학회 회장을 맡았다. 관심 없던 정치에 본격적인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 저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던 것도 아닌데 덜컥 회장을 맡게 됐어요. 저희 학회 사람들은 정치에 엄청 관심이 많았는데 저는 처음에 이야기에 끼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신문의 정치면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죠. 이후에는 공익 활동을 하면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만나고, 사회 부조리와 약자 계층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이때가 결정적이었어요."

정치에 눈 뜨다. 문재인과 만나다.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당선자 김해영(더불어민주당)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라고 잘난 사람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당선 전과 같은 모습으로 구민들을 만날 것”이라면서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20대 총선 부산 연제구 당선자 김해영(더불어민주당)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라고 잘난 사람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당선 전과 같은 모습으로 구민들을 만날 것”이라면서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 김해영선거사무소

김 당선자는 "변호사 실무 실습을 하며 찾게 된 법무법인 '부산'에서 당시 <운명>을 집필하고 있던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를 만났다"며 "공익소송 등과 관련해 도움말을 많이 줬던 문 전 대표가 대권에 도전한다고 하자 뭐라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부산선대위에서 법률지원을 하게 된 게 정치에 내디딘 첫발이었다. 

2014년에는 여당의 텃밭이라던 연제구에서 야당 지역위원장으로 사는 삶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 박근혜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한 곳이었다. 주위 모두가 힘들 거라던 대결에서 그는 승리했다. 김 당선자는 "정말이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거였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 당선자는 자신이 승리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만약 저 대신 정말 경력이 화려한 분이 연제구에 나왔다면 떨어질 수도 있었다고 봐요. 저는 화려한 경력 대신 살아온 이야기를 유권자분들께 해드렸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고요. 그 마음을 아시고 유권자분들이 저에게 귀중한 표를 주신 거 같아요."

김 당선자는 부산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이제 부산은 여야가 경쟁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민들은 지쳐있었고,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그 선택은 부산에서만 야당이 5석을 가져가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만큼 어깨는 무겁다. 그렇다고 몸까지 무거워지지는 않으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국회의원이 됐으니 무게감 있게 행동하라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저는 당선 전과 같은 모습으로 구민들을 만날 거에요. 국회의원이라고 잘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냥 사회에서 맡은 제 역할이 국회의원인 거에요.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김해영#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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