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베스트(아래 일베)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 둘러 앉아 치킨을 뜯던 2014년 9월 6일 오후, 탈북인인 정성산씨는 자신의 뮤지컬 <평양마리아> 초대 티켓을 뿌리고 치킨과 맥주를 나눠주며 일베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일베 회원들이 '폭식 투쟁'이라고 명명한 이날 집회에 참석한 후 정씨는 자신의 SNS에이런 글을 적었다.
"9월 6일 광화문 대첩 때 제 돈 거의 200만 원 이상 기부했습니다.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와~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의 속살이었거든요. 또 돈 벌어 볼랍니다." 정씨는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그해 9월 24일 새누리당 기획위원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무성 대표와 찍은 사진을 자랑스레 공개한 정성산씨는 자신의 SNS에 이런 소감을 밝혔다.
(관련 기사 : 새누리에 '일베 폭식투쟁' 후원자가? 제정신인가) "오늘 새누리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좌좀 소굴로 변한 대한민국 문화계 종북척결 정책을 많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문화융성은 문화종북좌좀 척결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정씨는 현재까지 NK문화재단 이사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4.13 총선 투표일 직전까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등 SNS 활동도 부지런하게 했다.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NK, 북한, 통일 등을 내건 단체 인사 중 정씨는 대외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 중 하나일지 모른다.
국정원까지 나선 보수단체 지원 정씨의 2014년 이후 행적을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14년을 전후해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 이어 정부 지원금을 보수단체에 몰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시사저널>은 2014년 5월
"보수단체에 정부 지원금 몰아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가 안보'는 보수단체의 보조금 창구"라며 2013~2014년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 지원 내역을 분석한 바 있다.
정씨의 NK문화재단이 지원을 받은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보수·탈북 단체들이 '이명박근혜'정권 하에서 '융성'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국민들의 세금이 결국 그들의 '밥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해 여당인 새누리당은 '일베'에서 칭송을 받는 인사를 기획위원으로 위촉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정부여당의 보수·탈북자 단체 국고 지원은 일견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속 정부 지원금을 통한 시민단체 지원 외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거나 유령회사가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지원에 대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3일, <뉴스타파>는
"국정원, 보수단체의 '전교조 죽이기' 지원"이란 리포트를 통해 "국가정보원이 전교조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보수단체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수사 자료를 입수한 결과, "국정원이 전교조 퇴출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의 책자 인쇄를 지원해준 정황이 확인"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국정원이 전교조 퇴출을 목표로 결성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이 지난 2011년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을 비방하는 내용의 책자를 대량으로 유포하는 데 개입했다고 전했다. 정권 차원에서 기존 보수·탈북 단체에 지원금을 몰아주는 것으로 모자라, 좀 더 공격적으로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 진보 단체 죽이기에 개입한 정황으로 판단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확인된 검찰의 수사 자료는 국정원이 보수단체, 보수매체 등과 손잡고 전교조 무력화 등 국내 정치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실제 원세훈 전 원장은 2011년 2월 18일 부서장 회의에서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종북 좌파'라고 칭하면서 '민노당 가입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 '(국정원) 지부장들이 교육감이라든가, 좌파교육감 같으면 부교육감을 상대해서… 전교조 자체가 불법적인 노조로 해서 우리가 정리를 좀 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한국자유총연맹에 7~10억 몰아준 이명박근혜 정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시사저널>의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 보도가 공분을 일으켰다. 세월호 2주기 직전인 지난 11일 보도된 이 기사에 '하다 하다 세월호 유가족 까지'라는 대중적 정서가 폭발한 것이다. 앞서 정씨가 활약했던 일베의 '폭식 투쟁'이 벌어질 때 한 쪽에서 "세월호 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완력까지 불사했던 이들이 바로 어버이연합 회원들 아니었던가.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은 일당 2만 원을 주고 탈북자들을 세월호 반대집회에 투입했는데, 한 집회에 최대 200여 명을 고용하기도 했다"는 내용의 보도 일주일 후, "보수집회 알바비, 경우회·유령회사가 댔다"란 후속 보도를 내보냈다. "탈북난민인권연합 계좌 거래 내역 확인… 실체 불분명한 사단법인, 어버이연합에 수천만 원씩 지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국정원이 보수단체 활동에 관여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와 주체만 다를 뿐 이러한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는 중이다. JTBC 역시 지난 17일 "재향경우회, 탈북자 단체 계좌에 수백만 원씩…"란 보도를 통해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탈북자들을 집회에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JTBC는 지난 18일 2013년부터 활동한 보수단체 엄마부대 봉사단이 자신들의 집회에 탈북자를 동원했다고 후속 보도했다.
최근 쏟아지는 정황들은 정부여당과 국정원, 보수단체 간의 커넥션과 물적 동원이 어떻게 여론을 왜곡·형성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한 개인이나 단체들에게 아픔과 피해를 입혔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이런 일에 탈북자들을 동원했다는 점은 한마디로 악질적이라 할 만하다.
어버이연합이 탈북자를 동원한 집회에는 7000만 원이 넘는 돈을 집행했고, 한국자유총연맹은 지난 2012년 어버이연합 상임고문의 100세 잔치에 1400만 원을 지원했으며 이 중 934만 원이 급식비로 쓰였다. 한국자유총연맹은 매년 정부로부터 매년 7억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는 10억이 넘는 예산까지 집행 받은 바 있다. 도대체 보수단체 하나에만 한 해 수억 원의 정부 예산이 집행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박근혜 정권' 심판으로 막을 내린 4.13 총선이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주며 막을 내렸다. 야당 의원들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이러한 정부여당과 보수·탈북 단체들과의 커넥션을 근절하는 일 역시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여타 시민단체와 NPO(비영리 민간단체)들의 경우, 국가보조금의 집행 기간 동안 지원액과 지원 여부 자체에 있어 까다로운 평가를 받는 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야당과 국민에게 폭언를 서슴지 않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기계적 균형'을 고집하며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지원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거리에서 국민의 여론을 왜곡시키는 이들을 먹여살리는 돈이 국민의 세금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