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초·중학생들에게 다문화이해 강의를 위해 매주 방문하는 전남학생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재주꾼을 만났다.
전시실 벽면과 책상 위에 진열된 기와, 돌, 벽돌, 오카리나, 손편지 등에 색칠을 하고 그 위에 예쁜 글귀를 새긴 작품들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소재 위에 칼로 예쁘게 새긴 글귀와 그림을 보며 물으니 전각 작품이란다. "왜 하필 오카리나 위에 작품을 하셨느냐?"고 묻자 그녀가 자신의 경력을 설명해줬다.
선영씨는 지난 2007년부터 손글씨 연구를 하고 있다. 캘리그라피 자격증 기본도서도 함께 발행하고 강사교육과 수업용 샘플작업을 하며 전시회(3회)도 열었다. 시민들에게 오카리나 지도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막도 곁들였다.
"오카리나는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인생이 추울 때 만나 나를 꽃으로 대해준 악기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다른 악기를 했지만 오카리나 음색을 처음 접했을 때 준 감동은 아직까지 여느 악기와 비길 수가 없네요.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오카리나를 손에서 놓지 않고 즐기다 보니 전문가 과정을 밟게 되었고 2007년 YMCA 방과후강사 활동을 시작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7년 동안 오카리나 강사 활동을 했어요. 그동안 배출해낸 제자들과 함께 재능기부연주 집중캠프 시행사 참여 등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오카리나 앙상블로 정기연주회2회를 준비 중입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못하는데 세 개의 똑부러진 재주를 가진 선영씨. 오카리나, 캘리그라퍼, 전각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그녀. 다소곳한 표정으로 미소만 짓는 그녀, 어디에 저런 재주가 숨어 있었는지가 궁금해 "이렇게 예쁜 작품을 하면서 실수한 적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전각 작품에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통화하다가 힘 조절을 잘못해 전각도가 밀려 글자가 틀어졌을 때 "아!~씨!"하는 발음이 새어 나가 상대방으로부터 오해를 산 적도 있었어요. 또 한 번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피곤한데도 밤늦게까지 작업하면서 졸다가 손가락을 베기도 했어요"서각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전각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전각을 '정각'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무식함에 혼자 웃으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 서각은 많이 들어봤는데 전각은 생소합니다. 서각과 전각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칼로 작업하는 맥락은 같습니다만 서각은 나무에, 전각은 돌에 파는 것을 대표적으로 분류합니다. 서각은 현판 작업을 그대로 방각(傍刻, 도장의 옆면에 글자를 새김)으로 작업하고 전각은 역상 작업으로 도장 파듯이 파고 방각으로 탁본을 떠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 전각 공부는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받으셨는지요?"캘리그라퍼로 활동하면서 낙관용 두인, 호인, 성명인 등 문양새김질 작업을 하다가 전각의 깊이에 빠져들었고 지방소도시에 살다 보니 배움의 통로가 협소했지요. 함께 동문수학하는 동료의 추천으로 가까운 이웃동네 순천에 계신 전각가 김충렬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캘리그라퍼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들끼리 모여 작년 10월부터 시작해 6개월째 접어 들었습니다."
- 전각은 돌이나 기와 등 단단한 곳에 글자를 새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습니까? 힘들다면 어떻게 극복합니까?"한치 안에 우주를 새기는 작업이라고 배웠습니다. 작은 돌 안에 마음을 옮겨 담는 일은 무척 정교하고 힘이 듭니다. 쇠보다도 단단한 기와에 새기는 작업 또한 때때로 통증을 동반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 글 쓰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작업을 하다보면 서로 잘 어울림을 느끼면서 힘든 순간을 잊게 되지요."
- 전각 재료로 사용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돌의 종류가 아주 다양합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여서 요녕석이나 몽고석에 작업을 주로 합니다. 흙으로 빚은 오카리나에도 새김질을 하고 있고요. 저희 선생님이 주로 작업하시는 옛기와에도 전각도를 이용하여 작업을 합니다."
- 전각이 주는 매력은 무엇입니까?"바느질장이가 한 땀 한 땀 바늘땀을 놓아가며 마음을 수놓듯 전각은 칼로 한땀 한 땀 각을 하는 매력이 마치 칼의 노래처럼 즐겁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칼이 의도한 대로 나가지 못하고 길을 벗어나는 것을 보면서 몰두하는 즐거움을 배우기도 하구요."
- 캘리그라피와 전각이 접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나요?"지금 캘리그라피는 일상생활 속에 하나의 문화로 트렌드화되어 있는데요. 책 표지부터 영화 제목, 미디어 광고 속에 폰트와 함께 아름다운서체 손글씨 캘리그라피를 종이나 화면에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집짓는 재료가 참 다양하듯이 글씨 작업을 종이나 천, 돌뿐만이 아니라 옛 기와나 타일 등에 작업함으로써 경직된 비석탁본이나 돌탁본에서 벗어나 작품의 다양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정통 전각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칼의 맛은 같다고 봅니다."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글귀는 어디서 얻습니까?"보기보단 책을 좀 읽는 편인데요. 요즘은 핸드폰 속에서 자료 검색만으로도 연결 고리들을 끄집어낼 수있어서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전각할 때 가장 주의해야할 점은? "딴생각을 하면 절대 안됩니다. 1도의 흔적이 남아야 하는 음각과 한번 칼이 지나 가면 두께의 맛이 달라지는 양각. 그 어느 경우에도 다른 잡념이 파고든다면 칼 맛이 달라지지요. 몰두와 집중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전각의 매력은 딴생각 금지입니다."
- 장래 계획은 무엇입니까?"지금처럼 즐기면서 아름다운 우리 한글 서체를 연구하고 샘플링 작업을 하면서 전각 공부에 매진할 거구요. 영혼을 울리는 내 마음의 메아리인 오카리나 연주 교육활동도 오카리나를 손에 쥘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 전각을 배우려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어릴 적 서예공부하면 천자문의 한일자 쓰다가 지루해서 도망가던 때가 있었지요. 전각공부도 연습장인 돌을 반복해서 갈고 같은 한 획을 반복하면서 그 지루함에 못 이겨 포기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 한 줄의 명문장 정도는 멋지게 각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글씨(서예, 손글씨) 공부와 함께 꾸준히 하다보면 좋은 각을 만나실 겁니다."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 강사로 활동하며 갤러리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그녀는 인근 무선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전시실을 방문하자 행복한 모습으로 작품설명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