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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집과의 사랑이 쌓여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과의 사랑이 쌓여 간다. ⓒ pexels

산과 들에 생기가 넘친다. 더구나 오늘(4월 4일)은 청명이다. 회색 산에 빠른 속도로 연두색 물감이 옅게 번져나고 있다. 새하얀 벚꽃이 산등성이에 듬성듬성 등불처럼 환하게 걸렸다. 모두 다 방 안에 앉으면 새로 단 벽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다.

이 자리에 앉으면 장독대가 코앞이고 옆에 서 있는 오동나무는 의연하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얼굴을 치올리면 하늘 한쪽이 슬그머니 내려와 시선에 잡히고 고개를 다시 돌리면 산이 옆자리로 밀려나고 들판이 보인다.

현재와 잇는 추억들

그리고 또 보이는 게 있다. 보인다기보다 창에 어린다. 진안의 그 고물상. 나는 원목으로 창틀을 짜고 곁에서 사포질을 하던 후배. 나무틀에 바니스 칠을 하다가 니스 통을 엎었던 장면도 보인다. 아련한 순간들이고 정겨운 그림들이다.

이 집은 원래 서향으로 지어진 집이라 늘 남쪽 볕이 그리웠었다. 진안읍을 지나다가 눈에 띄는 고물상이 있기에 들어갔더니 3칸짜리 시골집 벽체에 붙이기 딱 좋은 2*5자 짜리 이중 샤시가 2개 있어서 5000원 주고 사 왔었다. 이중으로 된 샤시를 두 장이나 맞붙이니 햇볕은 무사통과요, 냉기는 출입금지였다.

나귀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남쪽 벽을 헐어 떡하니 창을 내고 보니 창 위가 허전했다. 창 앞에 책상을 놓고 공부를 하다보면 뒤쪽에 있는 책꽂이까지 일어서서 오가는 것도 귀찮던 차에 단층 책꽂이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동네 제재소에 가서 두꺼운 송판을 하나 사 와서 지지대를 창틀 양 옆에서 세워 올리고 번듯하게 책 놓는 선반을 만들었다. 글을 쓰거나 공부할 때 필요한 책들을 모두 올려놓았다가 한 과제가 끝나면 다른 책들을 올린다.

내가 만든 집, 내가 만든 책꽂이, 내가 만든 책상을 마주하고 내가 만든 창문 앞에 앉으면 책속의 글들도 미끄러지듯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고 이 세상에 나인 것이 또한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에 나와 어떤 충돌과 갈등도 빚지 않고 고요하며, 나를 둘러 싼 그 어떤 것도 내가 아니기에 그 역시 고요하다.

지난 겨울에 이 방에 쥐가 들어왔는지 쥐똥을 몇 개 발견했는데 아무리 정밀 수색을 해도 쥐구멍을 찾지 못했었다. 양심적인 쥐가 쥐구멍을 다시 틀어막아놓고 물러났는지 그 뒤로는 쥐의 흔적이 전혀 없다. 이 집을 사서 고칠 적에 이미 쥐가 구멍을 뚫을만한 흙벽이나 나무 기둥 옆 틈새를 잘 틀어막았는지라 쥐가 드나들만한 혐의점을 둘 곳이 없는 게 사실이다. 내가 방을 출입할 때 따라들어 왔다가 똥만 싸 놓고 내뺏는지도 모르겠다.

흙집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상식을 벗어나는 특징 중 하나가 흙집의 수명이다. 최신공법으로 지은 콘크리트 집은 보통 30년인데 반해 흙집의 수명은 공식적으로 200년이다. 물론 비가 새거나 물난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귀엽다 못해 귀찮은 강아지처럼 흙집은 끊임없이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고 주인의 손길을 요구한다는 점일 것이다. 말벌들이 구멍을 뚫지를 않나 나무 기둥에 고자리가 파 들지를 않나 흙 벽채와 나무기둥 틈새가 점점 벌어져서 방에 우풍이 슬금슬금 심해지기도 한다. 모두 주인을 부르는 손짓들이다.

그래서 집의 수명에 대해 다시 수정해야 한다. 콘크리트 집은 내버려둬도 30년이고 사람이 살아도 30년이지만 흙집은 사람이 살면 200년이지만 내버려두면 10년도 넘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무수한 시골 빈집들이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토사가 차올라 기둥뿌리에 닿으면 기둥이 썩어든다. 토사는 위에서 밀려내려오기도 하지만 밑에서 솟기도 한다. 사람이 안 살면 땅 속의 모든 생물·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땅이 부풀어 오른다.

사람이 안 살면 집은 생기를 잃는다. 사물의 본질 속으로 파고들던 시인 김춘수는 '강우(强雨)'에서 그 비슷한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죽고 나자 맥이 탁 풀린 사내가 넙치 지지미 냄새만 나도 '이 사람 어디 있지?' 한다. 밥상 앞에 앉으면 텅 빈 맞은편 아내 자리를 향해 또 '이 사람 어디 갔지?' 한다는 시 말이다. 주인 떠난 집이 이 짝 난다고 보인다.
이어지는 싯귀는 참 처연하다. 사람 안사는 빈 집의 장송곡이 따로 없다.

"(전략) 어디로 갔나, 이 사람 왜 대답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었다. 빗발은 한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후략)"

집 안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시름시름 풀기가 없이 지내다 이내 쓰러지고 마는 집. 내가 그런 집에 살고 있다. 아침저녁이라고 하면 심한 말이고 한 달이 멀다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한다.

집 지은 지 10년에 가까워가니 벽채에 마감 미장 한 황토가 많이 헐었다. 덧 미장을 하려면 새로 벽채를 쌓기보다 더 어렵다. 2~3cm 두께로 살짝 덧 미장을 하려면 이것이 마르면서 본 벽체와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지 않을 방도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래서 고정용 손 타커로 ㄷ자형 핀을 촘촘하게 벽에 박았다. 2cm 이상 벽채에 박혔으니 미장을 하면 흙이 흘러내리지 못하게 물고 있을 것이다.

쌓이는 사연만큼 쌓이는 집과의 사랑

지난달(3월)에는 대문 쪽으로 난 8자짜리 창문을 뜯어내고 컴퓨터 모니터 만 한 창을 달았다. 창문이 넓어야 낮에는 별도의 조명 없이 자연채광으로 방이 밝으라고 큰 창문을 달았는데 커튼도 준비하지 못한 채 넓은 창이 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방향이 대문 쪽이라 깜빡했는데, 저녁에 방에 전등을 켜면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방이 온통 드러나는 꼴이 됐다.

넓은 4짝짜리 샤시 창문이 공짜라고 하기에 얻어 와서는 서둘러 달아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창틀을 짜느라 들어간 나무며 수고며 돈은 아쉬웠지만 떠내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너무 튼튼하게 고정해 놨던 창문을 유리를 깨지 않고 빼내는 데만 3일이 걸렸다. 고생 덕분에 새로 달린 손바닥만 한 창문을 통해 방에 앉아서 대문 쪽 바깥의 동정도 살피다가 일과가 끝나면 창문을 가린다. 지금은 신문지로 가리지만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좋은 한지로 된 창 문짝이 달리든지 아니면 커튼이 달릴 것이다. 급하지도 않고 서둘 일도 아니다.

집을 떠나 있다 보면 며칠 지나지 않아 자꾸 몸이 집으로 끌린다. 지남철이라도 있어서 끌리는 쇠붙이 같은 느낌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화학제품을 전혀 쓰지 않고 돌과 나무와 흙으로만 지어서 그럴까? 집에 돌아와서 사지를 활짝 뻗고 누우면 세상만사 걱정도 사라진다. 더 없이 개운한 잠을 잔다. 과연 이것이 온돌방이라서 그럴까? 벽지를 생태적인 한지로만 발라서 그럴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고 한다.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식! 자기 핏줄! 이 보다 더 애잔하고 애절하다 못해 애증이 뒤얽히는 게 있을까? 내 손과 발, 땀과 지혜가 스민 집은 나의 일부이다. 내 몸의 일부에 내 몸이 들어오니 더 큰 하나가 된다. 그게 내 몸이 쇠붙이가 되고 집이 지남철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가을에 집 뒤안으로 유공관을 돌려 묻었는데 겨울에 눈이 오니 녹다가 얼어버려서 유공관 속에 얼음으로 꽉 차버리니 배수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뜯어내고 싶었는데 곡괭이로 땅을 내리쳐도 얼음부스러기만 바스러질 뿐이었다. 이제 유공관을 빼 내고 널찍하게 돌과 블록으로 축대를 쌓는 중이다. 연탄 수레가 드나들 수 있게 한 자 넓이 폭을 만들어 바닥에는 밭에서 주워 낸 작은 돌 자갈들을 깔까 한다. 봄이 오고 옷장 속에 겨울 옷 들어가듯 집도 봄단장을 해야 한다.

올 가을이 갈 때 즈음이면 우리 집은 또 변신할 것이다. 집 뒤로 엄청 자란 대나무들이 대나무 잎을 지붕 물 받침에 떨구어 놓지 못하도록 미리 거물 망을 덮을 것이다. 지난겨울의 교훈 때문이다. 물 받침에 쌓인 나뭇잎이 눈과 뒤엉켜 얼어버리니 물 받침이 축 처지고 휘어지기도 했었다. 거물 망 작업은 우리 집과 나의 반 년 뒤 데이트 약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색연합의 기관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집고치기#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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