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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주술사로 오인 받은 한 60대 남성이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 캄퐁스푸에서 발생한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놀랍게도 살해된 남자의 며느리 모아 찬니(33)와 그녀의 고모(58)였다.

캄보디아 경찰당국은 숲속에서 두 여성의 모습을 목격했으며, 살려 달라는 남성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제보한 마을 소년들의 증언을 토대로 두 여성을 심문한 끝에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용의자인 며느리 찬니씨는 고모가 시아버지의 시신을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고 경찰에 털어놓았다. 이 여성과 고모는 각각 자신의 아버지이자 오빠가 10년 전 사망한 것이 시아버지의 '검은 마법'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현대판 마녀사냥

15세기부터 수백년간 유럽에서 만연했던 마녀사냥이 21세기 캄보디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마을의 우환이 생기면 주술사로 지목된 사람이 마을사람들에게 살해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15세기부터 수백년간 유럽에서 만연했던 마녀사냥이 21세기 캄보디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마을의 우환이 생기면 주술사로 지목된 사람이 마을사람들에게 살해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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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는 주술사로 몰린 사람이 마을주민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지금까지도 주술사로 몰리거나 좀도둑질을 하다 걸릴 경우, 마을사람들이 집단 구타를 가해 살해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2014년 4월 캄보디아 남부 다께오 지역에서 생긴 주술사 살해사건 역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마을사람들의 소행이었다. (관련기사: 주술사로 몰려 살해... 마녀사냥 풍습 아직도)

이번 사건이 그동안 발생한 유사사건들과 다른 점은 마을주민이 아닌 가족이 저지른 범죄라는 사실 정도다.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의 암 삼 앗씨는 "과거에는 매년 평균 10명 이상이 주술사로 찍혀 살해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마나 최근에는 3~4건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 나라에서 주술사로 지목되는 경우는 시골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누군가 불의의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했을 때다. 사람들은 마을에 우환이 생기면 누가 주술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장을 중심으로 대책회의까지 열어 주술사로 지목된 사람을 살해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다.

주술사로 지목된 사람들을 살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벌건 대낮에 돌로 집단구타를 하거나 칼로 마구찌르기도 한다. 또한 피해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살해된 시신은 대부분 목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선 현지 심리학자들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신체 중 영혼이 깃든다고 알려진 머리를 없애야 보복 당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해도 범인이 이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용의자로 체포되더라도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대부분 가석방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은 후 풀려나기 일쑤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수 년째 발생해도 용의자로 주목된 마을주민 대부분이 증거부족으로 풀려났다. 심지어 경찰조차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증거불충분 등으로 미결 처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피해자 대신 살해용의자들의 편에 서는 바람에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기 힘든 것도 이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찰들조차도 주술사가 가진 '마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혹시나 악령의 저주로 자신이나 가족이 또 다른 피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경찰들은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사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시신의 머리가 파묻힌 장소까지 파악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비협조로 시신 일부를 찾는 데 실패했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서둘러 종결하고,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용의자들을 관할 법원에 송치했다.

캄보디아 문화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프랑스 출신 연구자 사무엘 하미씨는 캄보디아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주술사 집단살해사건'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연속된 불행에 대한 뭔가 납득할 만한 이유와 해결책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가장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마법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갈등적 요소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15세기 이후 수백 년간 유럽사회에 유행처럼 번졌던 '마냥사냥'과도 비슷하다. 공동체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을 악마로 몰아 결국 목숨을 잃게 함으로써, 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안도하게 된다. 또한 불행의 씨앗을 스스로 없앴다는 종교와도 같은 믿음 속에 살인에 대한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태그:#캄보디아, #주술사 살해사건, #마녀사냥, #LICAD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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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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