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구하는 경제학>(김종배, 조형근 공저) 저자 조형근 교수는 말한다.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고. 요즘 젊은 학생들이 너무 보수화되어서? 아니란다.
학생들도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지지한다. 그런데 지지의 이유는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정작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면 본인들이 옳다고 여기는 신념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반응을 보인단다.
왜 그럴까? 학생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배운 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소위 말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항하는 다른 경제적 사고와 주장이 우리 대학, 우리 사회 만큼 부재한 곳이 또 있을까? 주류 이론에 대한 비판은커녕 대안에 대한 상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경제학을 대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방적인 이론 지형 속에서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게 경제학 대가들의 사상과 주장이 '오독'되고 '왜곡'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에 등장하는 아담 스미스와 조지 슘페터이다.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현실은 인정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원칙과 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 도덕철학자 스미스를 우리는 모른다. 절대왕정에 종속되었던 시장에 대한 자유를 이야기했을 뿐, 궁극적으로 그가 주장한 것은 반독점이었다는 사실을 생략한 채 '자유방임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것은 스미스에 대한 모욕이다.
슘페터가 말하는 기업가 역시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그런 자본가가 아니다. 기업가는 계급이나 지위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닐 뿐더러, 이윤욕에 가득찬 자본가는 더더욱 아니다. 기업가는 단순히 표현하자면 경영자 중에서 혁신에 성공한 경영자이며, 창조적 파괴를 통해 완전히 판을 바꾸는 사람이다. 면세점 사업권에 목을 매고, 골목 빵집과 치킨에 집착하는 재벌 2세, 3세 경영인들을 슘페터가 본다면 그들을 무어라 부를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성찰하고 상상하는 영역은 후속작인 <섬에서 탈출하는 방법>(조형근, 김종배 저)의 몫이다. 필자의 눈길이 가장 많이 간 부분은 기본소득에 관련한 장이다.
기본소득이란 자격심사나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복지에 대한 담대한 상상이 금기시 되는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은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용없는 성장의 현실화,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비정규직화로 인한 '일하는 빈곤'의 증대, 노령화 문제 등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모습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복지국가 시스템 자체가 위기에 처한 현실을 타계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럽 선진국에서는 진작부터 보편적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 왔다. 스위스에서는 오는 6월 5일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된다. 만약 통과가 된다면 성인은 월 2500스위스프랑, 미성년자는 월 625스위스프랑을 수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자. 연간 19세 이하 300만 원, 20~39세 400만 원, 40~54세 500만 원, 55세 이상 600만 원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215조가 들고, 여기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35조를 더하면 총 250조가 필요하단다.
강한 조세 저항을 고려하여 일반근로소득세, 부가세, 심지어 법인세까지 건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증권양도소득세와 토지세를 신설하고, 이자/배당 소득에 30% 과세, 환경 관련 세금을 환경세로 통합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 연금은 기본소득으로 전환, 전자상거래 의무화를 통한 지하경제 세원 포착 그리고 국방비 30%를 절감하면 254조를 거둘 수 있단다.
이런 과세 정책은 명분도 있다. 노동에 기초하지 않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생태환경을 파괴하면서 비용을 물지 않는 이익에 대한 과세, 불법적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는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정치의 문제이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과 <섬을 탈출하는 방법>은 2013년 하반기에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앞의 책이 경제학 대가들의 고전에서 공동체의 행복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면, 뒤의 책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적 노력과 대안적인 실험에 대한 성찰로 구성되었다.
연작이라 할 수 있는 두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핵심은 '인간은 이기심을 가진 존재이지만, 또한 이타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주류 경제학과 지금의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기적 존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기심에 대한 과잉이 강의실의 학생들처럼 삶의 양식에 대한 사고를 경직되게 만들었고 스스로 그런 질서를 내면화하게 했다.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험한 바다에 외로이 떠있는 섬처럼 고군분투 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담대한 상상이 아닐까 싶다. 담대한 상상이 당연한 현실이 될 때 우리는 각자도생의 냉혹한 세상에서 협력과 연대로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