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4시간가량 자는 것 같다. 일찍 잠이 들건, 늦게 잠이 들건 4시간가량 수면을 하면 자동적으로 잠이 깬다. 재벌 잠은 거의 들지 않는다. 더러 재벌 잠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누웠다 하면 곧바로 잠이 들고, 떠메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을 자고, 초저녁부터 동창이 밝을 때까지 길게 잘 수 있는 사람의 잠복이 정말 부럽다. 아내는 나보다 잠복을 잘 타고 난 듯한다, 아내만이라도 잠을 잘 자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때로는 너무 부러워 얄미워지기도 하지만….
대개 새벽 3시나 4시쯤에 일어나곤 한다. 우편물 처리와 쓰레기 처리 등 소소한 일들을 하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봉헌기도' 후 맨 먼저 하는 일이 지난해 오늘의 '생활일기'를 읽어보는 일이다. 매일 아침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 9일기도, 수호천사와 수호성인들께 바치는 기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 등은 아내와 함께 촛불을 켜고 거실의 '기도상' 앞에서 바친다.
지난 4월 30일 새벽에 읽은 2015년 4월 30일의 '생활일기'에는 맨 앞머리에 이런 기록이 있었다.
"04시 6분쯤 깨어 잠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짐. '페이스북'에서 국회의원 보궐 선거 새누리당 대승, 새정치민주연합 전패 기사들을 접하며 비탄에 젖음."새누리당 대승, 새정치민주연합 전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기록을 접하고 지난해 이맘때의 절망감과 비애를 회억하자니, 지난 4월 13일의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놀라운 결과, '선거혁명'이 더욱 기적같이 느껴졌다.
1년 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오늘의 총선 결과는 젊은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덕이었다. 오늘의 알토란같은 총선 결과를 잘 가꾸어 민주회복, 경제발전의 초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온 몸에 뜨거운 박동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4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은 토요일이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태안성당의 역대 총회장들이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데, 처음으로 부부동반 성지순례를 하기로 했다. 총무 역할을 하는 회장으로부터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출발 전에 정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승용차에 올라 성당으로 가면서 나는 지난해 3월의 일을 떠올렸다.
지난해 3월 28일 우리 부부는 또 한 번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다녀왔다. 나는 세 번째였고, 부부가 함께 가기는 두 번째였다. 그날 거기에서 충북 옥천성당에서 온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교사들을 보았다. 엄마들도 여럿 있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안산시 세월호 분향소를 먼저 들렀다는 것이었다.
인솔자인 젊은 보좌신부님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이상한 고마움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런 일이 전국의 각 성당으로 퍼져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모든 성당들이 각 단체나 구역별로 해마다 성지순례 행사를 갖는데, 성지순례 대신 안산시 세월호 분향소를 가거나, 인근 성지를 순례하면서 들르는 코스로 정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결코 온당치 않거나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그것을 주제로 글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성당에 가니 25인승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생존 역대 총회장들 전원(나를 포함하여 7명)이 모였는데, 4명이 부인을 동반하여 총11명이었다. 목적지를 수원교구 '남한산성성지'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으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안산시로 이동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을 테니, 남한산성성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다녀오자는 안이었다.
"4월의 마지막 날이니, 4월 16일을 생각해서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다녀옵시다. 그것도 뜻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목에 힘을 주어(그래서 조금은 애끓는 소리로) 제안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호응하는 이가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안을 낸 것인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으니 무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비애도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초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니 섭섭함을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아내가 위로의 뜻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내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아내가 내 손을 잡아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여주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었다. 내 곁에 '평생 동지'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오늘 하루를 즐겁게 생활하자고 생각했다.
아내의 가슴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고마워요" 하며 나도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 가슴의 노란 리본도 반짝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