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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산 좋고 공기 좋고 사람까지 좋은 제천에는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바람이 많다는 점. 맑은 날이든 우중충한 날이든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센 바람이 밀어닥쳐 곤혹스러운 때가 많다.

지난달 15일에도 나는 학교 버스정류장에서 '제천풍'을 맞고 있었다. 한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정류장 옆 벚나무
 버스정류장 옆 벚나무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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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시간을 죽이던 차에 버스정류장 옆에 핀 벚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소리를 지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거기 있었다. 거센 바람에 벚꽃 잎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분홍색 솜사탕이 가닥가닥 풀린 채 흩뿌려지는 듯했다. 달콤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흘러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 놓고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집에 와서 외투를 벗는데, 옷에 붙어있던 벚꽃 잎이 '팔랑' 하고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봄에는 절대 자살할 수 없을 거야."

꽃잎이 묻어나는 계절에, 혼자 그런 생각을 했었다.

4월 16일, 그 곳에 가다

다음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집결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팽목항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오랜 기간 동고동락해 온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가 여행객들을 인솔했다. 하루 만에 안산을 찍고 팽목항에 도착했다가, 다시 서울로 향하는 빽빽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16일.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 날이었다.

 안산 단원고 명예교실.
 안산 단원고 명예교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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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단원고 명예교실.
 안산 단원고 명예교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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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도착해 단원고에 마련된 명예교실(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기리기 위해 남겨 놓은 교실)을 둘러봤다. 나무 책상과 나무 의자, 아이들 책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와 교실 문 앞에 걸린 노란 리본까지, 교실 내부는 온통 노란 빛깔이었다.

두 개 층, 열 개의 교실을 둘러봤다. 끝없이 반복되는 책상 나열에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였다. 책상마다 편지와 사진, 평소 아끼던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허니버터칩' 과자도 먹는 이가 없어 잔뜩 쌓였다.

공간에는 기억이 고인다. 무수한 교실들을 지나침과 동시에,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여행객들은 아이들의 자리에 앉아 훌쩍였다. 따스한 봄볕이 교실을 휘감았다. 포옹을 한 듯 몸이 따뜻해졌다. 교실에서 나오는 길에, 한 여행객이 자원봉사 중이던 단원고 학생을 꼭 껴안았다. 마치 그 학생이 잃어버린 아이들이라는 듯이. 학생은 아무 말 없이 지긋이 웃기만 했다.

빗물 털기조차 미안한 마음

정부 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공원으로 이동했다. 버스 밖으로 나오니 볕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분향소에 다다르기 전 풍경은 봄을 맞은 여느 공원과 다르지 않았다. 색색의 꽃들은 눈부시게 폈고, 가는 길 내내 향긋한 봄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2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찾아온 조문객들로 하루 종일 향이 피어오르리라. 생명이 움트는 봄이 한창인 공원과, 죽음을 기리는 분향소는 마치 서로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비바람부는 팽목항
 비바람부는 팽목항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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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을 떠나 다시 버스를 타고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팽목항에 가까워질수록 날은 빠르게 흐려졌다. 슬슬 먹구름이 모여들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고, 나중에는 물동이로 끼얹듯 거센 폭우가 몰아쳤다. 팽목항에 마련된 분향소는 소박했다.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을 헤치고 분향을 마쳤다. 2년 전 그 날을 기억한다는 듯, 팽목항은 눈물 섞인 비와 구슬픈 바람 소리를 토해냈다.

온 몸이 홀딱 젖은 채로 다시 버스에 올랐다. 비바람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니 마음 한 구석에 찬 기운이 끼쳐왔다. 창밖에서 건너다보는 풍경도 섬뜩한데, 캄캄한 그곳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차 안에서 휴지로 빗물을 훔쳐내는 것조차 미안했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날 나는 두 개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삶과 죽음, 햇살과 비바람 사이를 오갔다. 빛과 그림자의 사이는 무섭도록 가까웠다. 아름답게 핀 꽃은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심연에 갇혀있을 것이다.

2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들의 마음은 뭍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아래로 더 가라앉았다. 약속을 저버린 정부, 처벌을 피해 가는 책임자들, 유가족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 유가족들을 짓눌렀다.

"아이들 영혼이 하늘로 가지 못하고 땅에 머물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 것만이 아이들을 마음 편히 하늘로 돌려보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사회적 합의가 번번이 어긋날 때마다 유가족들은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좀처럼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이 계절은, 누군가에게 죽음의 계절이 됐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감각은 보편적이다. 팔랑이는 벚꽃 잎에 감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억울하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은 2년 넘게 '봄의 정원'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 지를. 적어도 그 사실은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팀블로그 amukey.kr 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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