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 엄마와 아빠의 고향은 백두산 자락 아래다. 겨울이면 눈이 가슴께까지 쌓인다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새로운 삶터를 찾아 남쪽으로 건너왔다.
"우리 집에서 백두산까지는 100리 밖에 안 떨어졌시요."고향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이 말부터 시작하는 게 정훈 엄마의 입버릇이다. 그럴 때 그녀의 눈빛에서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도 느껴진다.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바라보며 자랐다는 긍지 같은 것일까, 아니면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아련함일까.
양강도가 고향인 새터민 '정훈 엄마'지난 4월 27일에 정훈이 엄마와 함께 북한 음식인 '두부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두부밥이라…. 과연 어떤 맛일까. 듣도 보도 못한 이름에 궁금증이 동한 사람들은 두부며 찹쌀 같은 준비물들을 챙겨서 모였다. 입맛만큼 보수적인 게 없다는데, 과연 남한 사람인 우리들에게도 북한 음식인 '두부밥'은 맞을까.
정훈이네와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사는 강화도 인근에 북한을 이탈해서 남한으로 내려온 '새터민'이 살고 있는데, 남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잘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면 어떻겠냐고 누군가 제안했다. '북한 이탈 주민'이란 단어는 언론을 통해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북한 출신 사람을 직접 본다는 건 생소했다. 그들은 언론에서나 듣고 보는 사람이었지 우리 곁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약간의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정훈이네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을 만났다. 말씨가 조금 달라서 그렇지 사는 것은 우리와 똑같았다. 100일을 갓 넘긴 아기를 가슴팍에 품고 젖을 물리는 모습이며,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김치를 찾는 것도 우리네와 똑같았다. 분단으로 인해 근 70년간 떨어져 지냈지만 여전히 한 몸뚱이 한 민족임을 실감했다.
올 때가 다 됐는데 정훈이 엄마가 오지 않는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건 아닐까 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강화도행 버스를 탄다는 게 그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버린 모양이었다. 당황을 했는지 목소리마저 떨렸다.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새터민인 그녀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버스를 타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으니…, 다른 일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그러니 하루하루 사는 게 어쩌면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도로 온 정훈엄마의 얼굴이 핼쑥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오자마자 찬물을 연거푸 두 컵이나 마셨다. 그러고 나서야 정신을 수습하고 오늘 함께 해먹기로 한 '두부밥'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 줬다.
북한 음식 '두부밥'
두부밥은 이를 테면 '유부초밥'과 비슷하다. 그러나 둘은 남한과 북한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음식이다. 튀긴 두부 속에 밥을 넣는 것은 같지만 유부초밥이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것과 달리 두부밥은 맵다.
"두부밥은 콧물이 쑹 나며 열이 확 오르게 매워야 해요. 이거 하나 먹으면 감기도 뚝 떨어져요."고향 음식을 소개하는 게 좋은지 정훈 엄마가 재빠르게 손을 놀린다. 속이 깊은 프라이팬에 넉넉하게 기름을 붓고 자글자글 끓인 후에 빻은 마늘과 고춧가루를 함께 담아놓은 그릇에 끓는 기름을 부었다. 겨울이면 영하 20~30도는 보통이고 눈이 가슴까지 쌓인다는 백두산 아래 마을이라서 그런지 기름을 많이 쓴다. 추위를 이기려면 지방층을 두껍게 쌓아둬야 해서 그렇게 기름을 많이 쓰는 걸까, 아니면 중국과 가까워서 음식이 기름진 걸까.
두부밥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두부를 삼각형이 되게 반으로 자른다. 그 다음에 약 7밀리미터 정도 두께로 썬 다음 끓는 기름에 튀겨낸다. 튀긴 두부의 배를 갈라서 주머니를 만든다. 그리고 미리 해놓은 찹쌀밥을 튀긴 두부 속에 채우고 양념을 발라서 먹는 게 두부밥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양념이다. 매우면서도 화끈한 양념장을 아끼지 말고 발라줘야 비로소 두부밥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코가 쑹 뚫리고 열이 위로 화끈하게 솟아올라 감기쯤은 뚝 사라지게 하려면 양념장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두부밥의 양념장에는 찧은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쓴다. 그 외 다진 양파와 파도 조금 넣는다. 위의 재료에 팔팔 끓는 기름을 부으면 매운내가 확 난다. 고춧가루 물이 들어 번드레한 양념장에 물과 소금 그리고 설탕을 조금 넣고 한소끔 살짝 끓여준다. 이렇게 만든 기름양념장을 두부밥에 발라 먹으니 아니나 다를까 매운 기운이 훅 올라온다. 정훈엄마의 말처럼 콧물이 쑹 나오고 머리 위로 열이 후끈하게 올라왔다.
"정훈이 임신했을 때 엄마가 해주던 두부밥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신 유부초밥을 사와서 먹었는데, 입맛에 맞지가 않았어요."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입덧으로 고생할 때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얼마나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을까. 정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했지만 듣는 우리는 마음이 아팠다.
엄마밥이기도 한 두부밥두부밥을 먹노라니 문득 얼마 전에 앞마당으로 옮겨 심은 나무가 생각났다. 집 근처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십 그루 모여 있는 숲이 있다. 낙엽이 쌓여 푹신한 땅에는 이쑤시개 굵기의 어린 소나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중 몇 개를 캐서 종이컵에 담아와 텃밭 한 쪽에 심었다. 4~5년을 키웠더니 이제는 제법 커서 어른 정강이를 넘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식목일 즈음해서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 몇 년 사이에 소나무의 뿌리가 제법 깊고 넓게 뻗어 있었다.
나무를 옮겨 심고 지줏대를 세워 주었다.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뿌리를 잘 내리라고 세워줬지만, 그래도 원래 자라던 땅만 하겠는가. 하루아침에 뿌리가 뽑힌 채 낯선 곳으로 옮겨 심어진 나무는 몇 해 동안 몸살을 앓는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앓는 몸살이리라. 그래도 대여섯 해가 지나면 어느새 나무는 자리를 잡고 힘차게 자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옮겨 심어진 그 자리가 원래 제 자리인 양 의연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다.
북한에서 온 새터민 정훈이네도 옮겨 심은 나무와 같지 않을까. 새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줏대가 돼줘야 할 것이다. 때 맞춰 물도 주고 자주 들여다보며 관심을 기울여 주면 나무가 쑥쑥 잘 자라는 것처럼 정훈이네도 낯선 환경에서 잘살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지줏대가 되어 줄게요북한에서는 누구나 다 두부밥을 해먹느냐고 물으니 정훈 엄마의 대답이 걸작이다.
"장마당에서 최고 인기 음식이지만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먹을 줄만 아는 사람이 또 따로 있어요."그 말에 모두 와그르르 웃었다. 부엌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들을 은근히 꼬집는 말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남과 북이라고 다를 게 없나 보다. 우리 역시 그 말에 공감을 하는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 맞아, 그건 남북이 다 같네" 하면서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두 두어 개 씩 두부밥을 챙겼다. 남편에게 맛보여 주기 위해 챙기는 것이리라. 정훈엄마에게는 특별히 더 많이 넣어줬다. 낯선 땅에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정훈 아빠가 고향 음식인 두부밥을 먹고 힘을 내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많이 챙겨준 것이었다.
오래 떨어져 살았지만 우리는 하나였다. 조금씩 다른 부분은 있지만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입맛도 생각도 비슷했다. 맛있는 게 있으면 식구들 생각을 먼저 하는 것도 우리는 같았다. 두부밥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임을 다시 한 번 느낀 하루였다.
[레시피 한눈에 보기]▲ 두부밥 만드는 방법1. 두부를 세모 모양으로 반 잘라 약 7mm 두께로 썰고, 물기를 뺀다(이때 살짝 소금 간을 해도 좋다).2. 물기를 뺀 두부를 기름에 튀겨낸다.3. 튀긴 두부의 옆 날개 한 쪽을 갈라서 주머니를 만든다.4. 미리 해놓은 찹쌀밥을 튀긴 두부 속에 넣는다.▲ 양념장 만드는 방법1.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양파 등을 넣고 잘 섞어준다(마늘을 아끼지 말고 듬뿍 넣어줘야 함).2. 기름을 자글자글 끓여 위의 양념에 붓는다(기름도 많이 넣어야 함).3. 냄비에 약간의 물, 설탕, 소금을 넣고 위의 양념을 부어 잘 섞어주며 살짝 끓인다.4. 두부밥에 양념장을 발라가며 먹는다. 덧붙이는 글 | '정토회' 소식지에도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