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 이근후 박사로부터 초청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내용은 네팔 우표를 중심으로 <Yeti 히말라야 하늘 위를 걷다>(The Himalayas on Nepali Stamps)란 에세이집을 출판했는데, 출판기념회를 마포에 위치한 한 네팔식당에서, 전 과정을 네팔 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이 박사와 나는 네팔여행으로 맺어진 인연을 가지고 있다. 2001년 911사태가 일어난 일주일 후인 9월 19일 이 박사가 이끄는 의료봉사팀과 합류해서 네팔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그 후 나는 여러 차례 네팔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한국자비공덕회와 함께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일을 6년 동안 돕고 있다. 이 모든 게 30년 넘게 네팔에 의료봉사를 하며 문화교류를 하고 있는 이 박사의 영향이 크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날(4월 30일), 나는 만사를 제처 놓고 서울로 갔다. 삼팔선 이북 연천군에 살고 있는 나는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집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소요산역으로 가서 1호선 전철을 탔다.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공덕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다.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네팔 식당인 <옴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100명 이내로 한정하여 간소하게 치른다던 출판기념회는 100명을 훌쩍 넘게 온 것 같았다.
영국 여왕 즉위 기념우표가 붙어있는 책입구에서 등록을 하니 <Yeti 히말라야 하늘 위를 걷다> 양장본 한권과 27번이라고 찍혀진 행운권도 한 장을 주었다. 겉표지에는 이근후 박사가 영원히 철들지 않는 개구쟁이처럼 짓궂게 웃고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만든 네팔 우표 위에 붉은 색의 스탬프가 찍혀 있고, 그 우표 위에는 두 장의 작은 네팔 우표가, 그리고 또 그 우표 위에는 이근후 박사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입을 헤헤 벌리고 철없이 웃고 있는 대한민국 우표가 겹쳐져 있었다.
페이스 북에 올린 그의 나이 진단을 보면 '겉모습 180세, 정신연령 2세, 실제나이 16세'란다. 하하, 이 박사는 언제나 철이 들까? 허지만 철들어 보이지 않는 천진난만한 그의 모습이 좋아만 보인다.
첫 장을 펼쳐보니 노란 속지에 <2016년 4월 30일 Yeti 우체국>이란 빨간 소인이 찍힌 스탬프 옆에 공동저자인 이근후, K.K. Karmacharya의 사인이 곁들여 있었다. 그 뒷장에는 Diamond Jubilee 기념우표(영국여왕 즉위 기념우표)를 비롯하여 실체우표 6장이 붙어 있었다. 우표가 붙어 있는 책은 처음 받아본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 왼쪽 페이지에는 네팔의 우편 디자이너 K.K. 카르마차랴를 비롯하여 네팔 화가들이 1907년부터 그린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네팔 산 우표가 장식을 하고 있다. 이 우표를 보면 네팔의 역사를 요약하여 파악을 할 수 있다. 우표 밑에는 네팔 속담(Nepal Proverb)이 영문과 한글로 한 줄씩 장식되어 있어 우표가 주는 의미를 더 짙게 해주고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저자 이근후 박사가 재미있게 써 내려간 히말라야와 네팔의 역사, 민화, 히말라야 등산에 얽힌 이야기가 짧은 에세이로 재미있게 장식을 하고 있다. 네팔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역어나간 에세이는 주로 산에 대한 이야기다.
네팔식으로 진행된 이색 출판기념회출판기념회는 순 네팔 식으로 진행되었다. 네팔 전통 복장을 한 리타 바스넷(Rita Basnet, 케이피 시토울라 부인)이 네팔 무희와 함께 장내를 돌며 참석자 모두의 이마에 빨간 티카(tika, 힌두교에서 붉은 색 가루로 이마에 그려 넣는 종교의식)을 찍어주고, 목에는 축복의 카타(kata, 환영과 축복을 내려주는 티베트 종교의식)를 걸어 주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네팔 사람이 된 듯 분위기를 무르익어갔다.
기념회는 네팔 식으로 촛불에 점화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대한우표회 나제안 회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데브라즈 더깔(Devraj Dhakal) 네팔 영사관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서 공동저자인 K.K. 카르마차랴와 이근후 박사의 인사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행사에서 가장 주된 주요인사가 첫 번째로 인사말을 하지만 네팔에서는 그 반대다.
나제안 회장에 의하면 네팔의 우표 역사는 한국의 우표역사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한다. 대한우표회는 1949년도에 창립된 한국우취인들의 모임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세계의 우표는 영국 로랜드힐 경의 제안으로 1840년 5월 6일 영국 빅토리아 여왕 우표(penny black)에서 시작되었다.
네팔의 우표역사는 1878년 네팔이 초대 수상인 빔셈 타파 장군의 영국 식민지 정부 시절 처음으로 우편 업무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우표는 1884년 4월 22일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洪英植)에 의해 처음으로 우표가 발행되어 네팔보다 4년 뒤에 시작되었다.
카르마차랴씨는 네팔에도 발간 된 적이 없는 네팔 우표를 내용으로 한 책이 한국에서 발간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하며, 이 책이 영문으로 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근후 박사는 "힐러리 경과 셰르파 텐진 중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함께 올랐다'고 말했다. 이 책도 나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썼다.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는 네팔 산 우표에 함께 올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해놨다.
인사말이 끝나고 네팔의 남녀 무희가 출연하여 네팔 민요와 함께 가무 공연을 펼쳤고, 네팔의 민요 <레썸삐리리>를 합창했다. 옴 레스토랑 모든 인테리어를 네팔에서 가져온 재료로 장식을 해 놓아 네팔 가무를 바라보며 네팔 음식까지 곁들여 먹게 되니 하는 동안에는 여기가 네팔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 들 정도였다. 네팔 가무 뒤에는 신현운 시인이 색소폰으로 < Let it go >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한계령> 등을 연주하며 화답을 했다.
행운권 추첨도 했는데, 상품은 이 박사가 주로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나 네팔 기념품이었다. 기자도 운좋게 행운권에 당첨이 되어 네팔 민화가 그려진 그림을 한 점 선물받았다. 행운권 당첨은 처음이다. 100km가 떨어진 먼 거리에서 온 보람이 있었다.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는 팔순 노익장의 원동력은?그는 2009년 네팔문화시리즈 1권인 <네팔우표 icon과 짧은 글들>을 발간한 후, <히말라야의 영혼>(2009년 8월), <신은 우리들의 입맞춤에도 있다>(2010년 6월), <꿩은 왜 붉은 눈을 자졌을까>(2010년 7월), <아 불타여 불타여>(2011년 3월), <화이 타이거>(2014년 1월) 등 네팔문화시리즈 6권을 매년 저술했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2013년 2월),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2014년 12월) 등 책을 저술하며, 또 매년 의료봉사와 문화교류를 위해 세계의 지붕 네팔을 방문하고 있다.
10여 년 전 한 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일곱까지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줄기차게 저술활동을 할 수 있는 그 에너지 원동력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나는 잠시 짬을 내어 이근후 박사에게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다.
- 팔순을 넘긴 나이에 책을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재미있어서 쓴 책인가?"재미있고 수월하게 쓴 원고입니다. 모두 실제 경험을 쓰는 것이니까 어려움이 없었고 회고하는 재미가 톡톡했습니다."
- 우리나라 우표 이야기도 아니고 네팔에 대한 우표이야기를 네팔 우표역사, 우표사진, 네팔그림을 곁들여 공동으로 저작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텐데요? "쉬웠어요. 이유는 처음부터 책을 낼 목적으로 했으면 어려웠을 겁니다. 헌대 우표는 우표대로 즐기고 역사는 역사대로 즐기고 네팔 그림은 평소 가깝게 지나던 네팔 화가들이 준 그림들이고…. <우표를 사랑하는 하는 사람들> 카페에 들어가 놀면서 보니깐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른다면 멋진 책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하기보다 네팔 우표니깐 네팔의 우표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것이 양국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공저로 했습니다. 그는 내 오랜 네팔 친구이기도 합니다."
- 네팔의 우표와 관련된 책을 쓰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는지요?"있어요. 우표동호회인 <우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네팔 우표가 없어요. 그래서 '네팔에도 우표가 있다'란 외침으로 매일 매일 우표와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내 글이 700개 정도 올라 있습니다. 이렇게 올리다 보니 우표 고수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강경원이란 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우표의 대가입니다. 그가 내개 선물 하나를 주었는데 그 책의 이름이 <우표로 만나는 예수의 탄생>이었습니다. 60쪽 정도 되는 소책자입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네팔의 산 우표를 중심으로 책을 엮어 봐도 되겠구나. 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이 책을 탄생하게 만든 동기입니다."
- 실제 네팔 우표는 몇 개나 소장하고 계신지?"헤아려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초기에 발행한 몇 점을 빼고는 모두 갖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와 네팔에 우표와 관련된 책을 발간 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1980년대에 김기섭이란 분이 등반가였는데 네팔산 우표를 소책자로 낸 게 있습니다. 네팔에선 우정국에서 발행한 우표자료집이 있으나 내 책과 같은 형태의 책은 양국 모두에서 없는 것으로 압니다."
- 오는 7월 1일 네팔을 방문하신다고 하셨는데, 팔순을 넘긴 나이에 쉽지 않은 여행인데 어떤 목적으로 가시는지요? 혹 네팔과 우표문화 교류를 위해서 인지 그 내용을 좀 알고 싶군요."지난 2월 초에 가려고 항공권을 끊었으나 네팔 쪽에서 유류파동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연기해서 오라고 해서 미룬 것입니다. 네팔에 가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작은 의료봉사 즉 네팔간질협회를 돕는 일입니다. 등록된 간질환자들이 복용할 수 있도록 항경련제를 도와줍니다.
다른 하나는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Future Star English Secondary Scool>을 돕는 일입니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은 마노즈 쉬레스타(Manoj Shresta)님으로 한국에서 근로자로 오래 일했던 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두 곳을 돕는 일이지만 갈 때 마다 네팔의 예술가들과 교분이 많습니다. 우표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 때문에 예술가들을 많이 만납니다."
- 네팔화가들 그림이 함께 곁들여 있는데 소장하고 있는 그림인지? 그리고 네팔 그림은 얼마나 소장하고 계신지?"네, 제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처음 수집하게 된 동기는 내가 네팔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쓰다 보니 삽화가 필요했습니다. 내 에세이와 네팔화가들의 그림을 곁들인다면 내 글이 더 실감날 것 같아 주문을 했습니다.
큰 엽서 정도 크기의 그림을 한 화가 당 10점씩 수집을 했습니다. 수집된 화가는 100명이 넘고 작품은 1000점이 넘었습니다. 1000점이 넘으면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모두 14명의 화가를 초청하여 세종문화회관 광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고 이경형 교수가 설치미술형식을 빌어 네팔 작가 100인의 작품 1000점 전시회를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어드렸습니다."
- 한국과 네팔에서 최초로 발간된 네팔우표에 대한 책을 영문으로 발간할 계획이 있으신지요?"처음엔 한글과 영문으로 병기하여 네팔 사람들이나 네팔을 여행하는 세계인이 읽을 수 있도록 생각은 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그렇게 하진 못했습니다. 대신 우표자료는 영문으로 쓰고 에세이는 한글로 썼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병기해서 출판하고 싶네요."
- 이번 책이 네팔 문화 시리즈 7권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몇 권을 더 쓰실 계획이신지요?"네팔문화시리즈란 이름으로 10권을 내고 싶었습니다. 이제 7권째 출간입니다. 제8권은 네팔의 역사를 박이분 선생과 공저로 탈고는 했습니다만 근대사 부분의 수정이 필요해 네팔 학자의 자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제9권은 네팔의 속담집입니다. 이미 많은 부분 반을석 선생이 탈고하여 <연인>잡지에 연재 중입니다. 연재가 끝나면 제9권으로 탄생할 것입니다.
나머지 한 권 제10권은 그동안 나와 함께 네팔을 다녀온 분들의 글을 모아 볼까 합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다녀온 분들의 연인원이 참 많습니다. 네팔도 많은 사회적 변동이 있었습니다. 언제 다녀왔느냐에 따라 글의 내용도 참 다를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끝으로 박사님의 저술은 나이가 들수록 탄력이 더 붙는 것 같은데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요?"글쎄요…. 그동안 흩어져 있던 것을 아우르는 시기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네요. 에너지로 말하면 나이 들수록 떨어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흩어져 있는 경험과 자료를 챙기다 보면 에너지가 솟나 봅니다. 젊었을 때 진작 이런 작업을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나 글쎄요 그 때는 설익어서…."
팔순을 넘긴 노익장인 그가 줄기차게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그는 13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 디스크 등 일곱까지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졸업하는 등 학구열에 기염을 토하고 있다. 또한 모두가 핵가족을 지향하는 시대에 3대 13가족이 한 집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는 별난 가족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네팔 문화에 듬북 젖어있었던 나는 다시 전철을 타고 밤늦게 연천으로 돌아오면서 그의 책 <Yeti 히말라야 하늘 위를 걷다>를 거의 다 읽었다. 그의 말처럼 그가 지은 책은 읽기도 쉬웠다. 그는 무엇이든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사람이다. 또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해야 할 일들을 항상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
나는 책을 덮고 표지에 입을 헤헤 벌리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이는 이 박사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만 "크크크" 하고 웃고 말았다. 그는 정말 영원히 철들지 않는 소년 할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