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모든 거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도 형성된 가격 또는 처한 위치에 따라 거래가 이뤄진다. 국제적 협상은 더욱 그렇다. 각종 FTA에서도 각종 관세율과 산업 전망 및 진출 전략 등 다양한 사안이 고려된다. 언론이 이를 보도할 때 협상의 손익계산서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따지지 않는 것'이 관례화된 듯 보인다. 지난 5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보도한 지상파 3사 보도에서 '이란'이 얻은 내용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청와대는 홈페이지에서 총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역대 최대의 경제외교 성과를 거두었으며, '제2 중동 붐'의 한 축인 이란 시장을 선점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371억 불(약 42조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 관련 교역 촉진으로 이란 경제제재 이전의 교역 수준을 조기에 회복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양국 공동 프로젝트에 250억불 규모 금융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은 우리 민족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며,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으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며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충실한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란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핵 활동도 반대한다는 입장 하에 중동지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핵을 없애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답했다.
"북핵 저지 공감 외교"라는 평가, 적절했나?청와대 보도자료를 보면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북핵 반대라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핵 활동도 반대', '한반도에서도 핵을 없애는 것이 기본 원칙' 등 원론적 수준의 말이다. 물론 의미는 있지만, 올 초 막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 입장에서 위의 입장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제목부터 '북한 압박'과 '고립'이란 각을 세워 놓고 보도했다. KBS는 <"북핵 저지 외교">(5/1), <'북핵 반대' 공감>(5/2/), <이란도 북핵 반대…북 사면초과>(5/3/) 등의 내용을 쏟아냈다. MBC 역시 <북핵 경제회담>(5/1/), <"북핵 반대.. 평화 통일 지지">(5/2/), <"북 압박된 것">(5/3/) 등의 제목을 달았다. 이에 비해 SBS는 <"한반도 비핵화 지지">(5/2/), <"평화 안정 위해 협력">(5/3/), <"이란과 한반도 비핵화 협력은 큰의미>(5/4/) 등으로 사안을 전했다.
지상파3사도 '제2의 중동붐' 강조 일부 신문에서 이번 한국이 걷은 효과를 '잭팟'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극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방송 3사 역시 '제2의 중동붐'이란 명명을 사용하며 경제 효과를 강조했다.
KBS는 <제2 중동붐 교두보 확보>(5/1) <42조원 경제 성과>(5/2) <6천억원 MOU체결>(5/3)이라고 했고, MBC는 <최대 52조원 규모>(5/2), <6천억 수출 계약>(5월3일), <"제2 중동붐으로">(5/4/) 등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나마 SBS는 <구속력 없는 MOU, '제2 중동붐' 되려면>(5/3)에서 해외 자원개발로 수조 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 당시의 자원 외교의 경우 체결한 자원외교 MOU 96건 중 본 계약은 겨우 16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면서 MOU는 정식 계약 전 상호 간 논의내용을 명시할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짚었다.
5월 4일 KBS 역시 <이란 수주 42조…성과 극대화 하려면?>이라는 리포트에서 이란 정부가 돈이 많지 않아 본 계약 체결 시 입찰 기업의 자금조달 계획이 막판 변수가 될 수 있으며, 실제 경쟁국들은 앞 다투어 이란에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한 뒤 우리 정부가 250억 달러 규모의 금융지원 카드 제시의 배경을 전했다.
이란 측 언론인 <테헤란 타임스(Tehran Times)> <한국 측의 250억불 규모 금융 지원>(5/2,
http://www.tehrantimes.com/news/301112/S-Korea-to-invest-25b-in-Iran), <이르나(Irna)> <한국으로 석유 수출 증가>(5/1,
http://www7.irna.ir/en/News/82056937/) 등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양국은 60억 달러의 무역 규모를 3배로 키울 것(pledging to increase their annual trade by three times the current volume of around $6 billion to $18 billion)이다. 이 보도에서 강조하는 단어 중 하나는 미국의 간섭 없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내용이다.(Khamenei said Tehran and Seoul would benefit from "continuous and stable relations", free from US influence.>) 이란은 경제재제 이전의 석유 수출 회복을 원하고 있다. 2015년 기준의 3배인 180억 규모 수준은 2011년과 비슷하다. 당시 한국과 이란의 무역 수지를 따지면 한국이 -52.9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
우리 언론이 누락시키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란에 대한 세계 각국의 러브콜이다. 이란은 한국에게만 특수의 땅이 아니다. 이란투자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3월부터 약 9개월 동안 총 47개국에서 145개 경제 사절단 3763명이 이란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규모면에서는 2015년 11월 이탈리아 경제사절단이 총 360명이 왔고, 중국 시진핑 주석은 올 1월 방문해 고속철도, 원전 프로젝트 등 총 17개 분야 협력 및 향후 10년 내 양국 교역규모 11배(6천억 달러, 한화 703조 원) 확대를 합의했다. 또 이란 대통령 역시 유럽 순방을 통해 이탈리아와 파이프라인, 수자원 등 170억 유로(22조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프랑스 에어버스와 114대 항공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정상회담 등 협상 보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국이 왜 협상에 나섰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국제 경제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제시하는 장밋빛 수치만이 아니라 상대국은 왜 협상에 나섰는가? 그들은 어떤 이익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며, 중동 등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다면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입장에서만 보도하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