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클리츠먼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잃는다. 동생을 다시 볼 수 없게 만든 사건은 2001년 있었던 9.11 테러였다. 동생을 잃은 클리츠먼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독감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 등 무엇도 내키지 않았고 침대에서 나올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가 된 것이다!
클리츠먼은 처음에는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그냥 몸이 좀 아픈 거라고 얼버무렸다. 그렇지만 조금씩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울증에 처박혔을 때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감정, 환자로 느끼는 당혹감, 낙인 찍히는 기분 등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과는 다른 의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 의사로서의 나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우울과 슬픔에 빠진 환자와 가족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이전과 달라졌다.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복잡하고 오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 종결도 훨씬 어려워졌다."(16쪽)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며 환자가 된 다른 의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그래서 70명의 '환자-의사'를 인터뷰한다. 그 성과가 책으로 나왔는데, 바로 <환자가 된 의사들>(강명신 옮김)이다.
우울증에 빠진 정신과 의사, '환자-의사'를 인터뷰하다환자가 된 의사들은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우선, 환자가 된 의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는 그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신 역동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는 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그러한 모습을 인상적으로 담았다. 예를 들면, 한 환자-의사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한다.
"이제 얘기하는 것은 쉬워요. 거의 제삼자로서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감정적으로 많이 단절되어 있었어요. 그 곳에 분명히 머물던 어둠이 나중에서야 다가왔어요. 당신이 상처를 말할 때에도 이런 저런 일을 함께 말하죠. 일정 정도의 냉담함이 깃들어 있죠."(95쪽)이 사람은 감정 단절과 냉담함을 자기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이인칭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자신을 마치 분리된 대상처럼 얘기한다. 이러한 흔들림, 세심하게 듣지 않으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흔들림을 저자는 곧잘 잡아낸다. 이런 대목은 확실히 저자가 정신과 의사라는 점을 잊지 않게 한다.
저자는 정체성 분열을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을 종종 언급하기도 한다. 확실히 환자-의사가 보여 주는 혼란의 모습은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는 것 같기도 해 흥미로웠다. 환자-의사의 사례는 문학 작품의 소재 또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해도 꽤나 흥미로울 듯하다.
어쨌든 의사-환자들은 의사와 환자라는 일인이역 사이를 오간다. 때로 의사-환자는 자기가 진단을 하고 자기가 치료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제3자인 양 바라보기도 한다.
이 책은 환자가 된 의사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정체성 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이 책의 의도 가운데 하나가 그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단일한 실체로서 자아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정체성이란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맥락에 따라 다르게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단 하나의 정체성만 고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정체성은 제로섬 게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즉 환자가 되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환자의 정체성과 의사의 정체성을 유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에게 변치 않는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환자가 되어 보니 알게 되는 의료계의 문제들일반적으로 <환자가 된 의사들>에서 더 관심받는 내용은 의료계 현실에 관한 비판적 성찰일 테다. 저자는 "현대 의학의 틈과 균열과 성공을 제시하는 것은 이 책의 목적"(39쪽)이라고 밝혀 둔다.
이 책은 환자가 된 의사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차별이 두려워서 자신을 모르는 다른 곳에서 치료 받으려는 의사', '치료에 있어서 특별대우를 원하는 의사', '친구 의사에게 여러 부탁을 하는 의사',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의사의 의견을 수집하는 의사', '자신에게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의사', '자신의 병에 대해 진료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사' 등등 온갖 인간 군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때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기도 하고 때로 한심해 보이기도 하며 때로 안타까워지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의사들의 신비화된 권위는 저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의사와 환자의 경계를 흩뜨리는 '트릭스터'와 같은 존재다. 이들 덕분에 오늘날 의료 시스템을 비롯한 현대 의학의 틈과 균열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대다수의 환자-의사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에 맞닥뜨려 실망한다. 즉 '환자의 이익에 반하는 의료 기관의 현실'을 몸소 느끼게 된다.
의사의 특권의식과 오만, 병원의 관료주의, 열악한 환경, 의료보험 문제, 의료 과실, 무력감과 의존감을 강화하는 낙인과 차별, 수치에 대한 과도한 의존, 의료 정보의 한계, 의사와 환자의 대화 부족, 부작용에 대한 통보 부족 등에 대해 직접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의사-환자들은 환자의 관점에 예민해지게 되었다. 부작용이 힘들다는 것, 치료에 순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 의사의 입장에서 사소하게 여기던 통증이나 피로, 오심, 불안과 우울 같은 증세가 사실은 말 못하게 힘들다는 것 등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품위, 자아, 개성, 정체성 등을 상실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 것도 깊이 알게 되었다. ...... 의사들의 기계적 태도, 무감함, 문제 자체를 사소한 것으로 몰아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했다. 의사의 오만이 의사소통의 불충분을 조장했고, 의사 자신의 자기인식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했다."(196쪽) 그렇다 보니 환자가 된 의사들 가운데 일부는 의사의 자세와 의료 시스템의 문제 등을 적극 돌아본다. "의사들은 아픈 사람을 대할 때 의사로서가 아니고 인간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게 문제예요!"(245쪽)라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 "의료의 문제점과 취약점, 즉 치명적 문제부터 의사소통의 착오까지 샅샅이 알고 반성"(135쪽)하기도 한다.
신비화된 권위를 벗고, 상처를 품는 치유자가 된다면더 큰 문제는 환자가 된 의사들이 겪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오늘날 의료 시스템 자체에서 오는 특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전문가를 키우는 사회화 과정은 의사를 환자로부터 분리시킨다. 근대 의학의 의사는 환자를 철저히 타자로 구성할 뿐이다. 즉 자신 앞에 앉은 사람을 보며 불확실성을 마주하지 않고, 예과, 본과,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서 배운 의학 지식으로 환자를 규정하는 권력을 행사할 뿐이다.
나아가 저자는 오늘날 의사들이 '신이 되고자 하는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에게는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믿음이 마법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질병이 의사를 침범할 수 없다는 믿음은 마법적 사고에 근접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낯선 이들의 신체와 질병에 맞서는 권위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마법의 흰 외투를 입었다고 느꼈다. ...... 이런 태도는 수년간의 교육에 의해 주입된 것이고, 의사들이 입고 있는 심리적 외투의 두께가 그만큼 두껍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유를 막론하고 의사들은 정말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신화의 지위를 차지한다."(58~59쪽)저자는 "그러한 심리적 상황은 일종의 질병"(195쪽)이라고 말한다. 이쯤되면 과연 마법과 현대 의학의 거리는 얼마만큼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의학의 틈과 균열을 메꾸는 노력은 의학의 신비화된 권력 작동을 넘어서는 방식이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은 특권의식과 오만함을 부여하는 '마법의 하얀 가운'부터 벗을 필요가 있겠다.
의사가 "환자가 되기 전이라면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관점에서" 환자의 말에 더욱 집중하고 세심하게 듣는다면 어떨까?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은 간단하지 않고 무척 복잡할 수 있다. 환자가 느낄지도 모를 박탈감과 모욕감에 신경 쓰고, 환자의 심리적, 사회적 고통도 함께 고려하는 상호작용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저자 클리츠먼은 이 책의 시작 부분에 카를 융의 '상처 입은 치유자'에 대해 살짝 소개한다. 카를 융은 아픔을 겪고 그 아픔을 인식하고 있어야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상처 입은 치유자' 패러다임을 설명했다. 고통을 함께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는 늘 매력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기대한다.
정작 환자가 된 의사들도 통계 수치가 아니라 정서적 지지에 목말라 했으며 삶의 용기를 얻고 싶어했다. 신비화된 권위로 거리를 두는 의사가 아닌 아픔을 공감하고 상처를 품을 줄 아는 '상처 입은 치유자'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아무튼 오늘날 의사는 일반인들과 거리가 너무 먼 존재다. 병실에 싱싱한 꽃을 두고 환자의 침대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지지를 줄 줄 아는 의사를 보고 싶다!
환자의 삶과 진료의 질을 개선하려면?오늘날 의료계의 여러 부정적인 문제들이 꼭 의사 개개인의 탓은 아니다. 이 책은 의료계 시스템에 대해서도 분명히 문제를 제기한다.
"병원과 의료 시스템이 그 자체의 필요에 반응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의사들이 경악할지 모르지만, 병원이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의사와 행정진과 경영인의 필요에 따라 틀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시스템이 환자의 필요에 맞추도록 디자인되지 않았어요. 그건 거의 부수적일 뿐이에요."(140쪽)이 책은 미국의 현실에서 나온 책이다. 그렇지만 미국을 열심히 따라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료계 현실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은 환자의 삶과 진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의료계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 주는 이 책을 현재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장차 의료계에서 일할 이들이 꼭 참고하면 좋겠다. 나아가 앞으로 의료계 현실과 진료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거나 법률을 만드는 일에 머리를 맞댈 필요도 있어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 아플 수 있으며,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또 내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이 아플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의료 시스템은 점점 더 사용자와 멀어지고 있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적어지고 있으며, 때로 서로를 적대자로 느끼기도 한다. 일반 시민도 의료계 현실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민의 불안과 기대를 둘러싼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