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지난 2015년 12월 31일 발행한 "회사 때려치고 세계일주? 지옥을 맛보다" 기사가 정태현 작가의 저서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 (북로그컴퍼니. 2014)를 표절한 사실을 2016년 1월 5일 알게 됐습니다. 정태현 작가가 SNS를 통해 이의 제기하자 기사를 쓴 기자가 표절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표절 사실을 알게 된 후 기사를 쓴 기자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1월 14일까지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표절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과 오마이뉴스 내 상위검색기사에 오르며 퍼졌습니다.
그동안 편집부는 표절 지적이 나오면 해당 글을 쓴 시민기자에게 표절 여부를 확인한 후 표절로 판명되면 해당 기사를 노출되지 않게 보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자가 표절을 시인했는데도 바로 보류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표절 사실을 알고도 최초 조처를 취하는 데에 9일이나 걸렸습니다. 정태현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각성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안이하게 생각한 탓입니다.
뒤늦은 최초 조처 또한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정태현 작가는 글이 널리 퍼진만큼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과문을 협의해 작성한 후 이를 별도 기사로 올릴 것과 전체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편집부는 정태현 작가와 협의 없이 해당 기사 내에 공지 수준의 단 네 문장의 사과문 박스를 싣고, 표절한 두 문단 전체와 짜깁기한 일부 문장만 빼고서 나머지 부분은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표절 부분만 덜어내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은 잘못입니다. 기자가 나머지 글은 표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또한 순수창작물임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부 표절한 책을 전량 회수한 사례에서처럼 일부 표절한 기사도 삭제하는 것이 맞습니다. 더욱이 피해자가 삭제를 요구하는 만큼 삭제해야 했습니다.
이후 오마이뉴스는 정태현 작가의 요구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사무적인 태도로 대응했습니다. 이에 정태현 작가는 광화문에서 오마이뉴스 조처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오마이뉴스 내부와 타 매체에서 정 작가의 요구대로 전체 기사를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편집부는 정태현 작가가 1인시위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난 2월 11일에서야 전체기사를 삭제하고 사과 내용을 담은 별도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정 작가는 이 사과문이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을 약속하며 일이 잘못된 경위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조차 갖추지 못했다며 제대로 사과하기까지 1인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며 항의했습니다.
결국 정 작가가 1인 시위를 한 지 한달여 만인 3월 9일 오마이뉴스 편집부장이 정태현 작가를 직접 찾아가 만나 용서를 구하고 협의 끝에 지금의 이 사과문이 나오게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정태현 작가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논조의 기사를 써온 오마이뉴스로선 자기모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번 일은 오마이뉴스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태현 작가가 입은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그 일환으로 정태현 작가와 합의된 사과문을 24시간 동안 메인 페이지에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정태현 작가는 이번 일을 <오마이투쟁>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를 비판하는 1인시위 중 겪은 일과 1인시위자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 1인시위 중 만났던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책이 발간되면 관심을 두고 소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표절은 창작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심각한 잘못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일에 있어 피해자의 처지를 최우선으로 두고 피해자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해 신속히 해결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한번 정태현 작가와 독자여러분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작가의 말 |
나는 대학생일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은 매번 월급을 조금씩 덜 줬다. 나는 그때마다 그 사실을 지적하며 월급을 제대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사장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고작 돈 몇 천원 가지고 쩨쩨하게 굴지말라고 핀잔을 주며 돈을 줬다. 이 같은 일이 매달 반복되자 나는 언제부턴가 사장에게 제대로 월급을 달란 말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으면서도 쩨쩨하단 소릴 듣다보니 내가 정말 쩨쩨한 인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중국어통역 아르바이트를 했을 땐 돈을 통째로 떼먹혔다. 돈을 달라고 연락할 때마다 담당자는 매번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주일넘게 매일매일 전화했다. 담당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미 제출했던 서류를 다시 준비해서 본사로 직접 찾아오면 그때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귀찮아서 결국 돈 받는 걸 포기했다. 이력서에 추가할 좋은 경험을 한 셈 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대학생 때와 달리 통장엔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돈이 들어와 돈이 모였다. 나는 그 돈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일년 반 동안 세계를 여행했다. 돌아와서는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란 책을 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책을 낸 걸 계기로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책이 나오자 강연 요청이 하나둘 들어왔다. 열심히 강연을 준비했고 청중은 만족했다. 그런데 강연료를 주지 않았다. 쩨쩨하다고 핀잔 주며 돈을 준 것도 아니다. 필요한 서류를 다시 준비해서 직접 찾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무명의 젊은 작가에겐 '당연히'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작가와 예술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 입장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무료로 글을 쓰고 무료로 강연을 했다. 예술가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명목 하에 돈많은 회사가 팔 미니어처 제품을 밤새 무료로 만들었다. 젊은 작가와 예술가는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이유라며 자책했다. 다들 언젠가는 돈 받고 글 쓰고 돈 받고 작품을 만들 날이 올 거라 믿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항상 바쁘게 일하는데도 무료로 일해주다보니 다들 다른 일을 함께 해야했다.
나 또한 하루는 일용직노동자로, 하루는 글쓰는 작가로 지내거나 낮엔 글을 쓰고 밤엔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이중생활을 했다. 작가와 예술가는 요정이 아니다. 허기와 추위를 느끼고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다. 지난 2년간 내 주위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무료로 이용되다 껍데기만 남겨져 떠나갔다.
무명의 젊은 작가가 언론사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집단주의, 타당한 이유보단 사회 위치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좋게좋게 넘어가며 문제를 덮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는 한국식 관습과도 싸워야했다.
사람들은 내게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고작 책 한 권 낸 신인 작가가 별 것도 아닌 글 표절 당한 거 가지고 쩨쩨하게 일인시위까지 하는게 부끄럽지않냐고 물었다. 그럴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쓰라고 했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돕거나 사회적으로 더 의미있는 일인시위를 하라고 꾸짖었다. 대한민국에 너 하나만 표절당하느냐, 너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도 다 표절 당했지만 그때마다 좋게좋게 넘어가며 작가 체면을 지켰다. 그런데 왜 넌 품격 떨어지게 작가가 직접 일인시위까지 나서냐며 유난떨지 말라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부당한 대우를 한 건 맞지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잘 설득하며 부탁해보란 사람도 있었고, 차라리 고소를 하고 끝내지 왜 진흙탕싸움으로 가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좋은 결과'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싸웠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쩨쩨하고 끈질지게 작가의 품격(그게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을 다 떨어뜨려가며 내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고 매우 귀찮게, 그리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결코 이기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더욱 노력하고 더욱 경계하며 더욱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어찌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언론사가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오마이뉴스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데에 경의를 표한다. 내 투쟁을 지지해준 많은 시민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시민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결과다. 다시 한 번 이번 일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작가 정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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