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경찰의 '공모', 양재동은 현대공화국이었다.
3월 17일, 한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 공장에서 20년을 일한 한광호씨였다. 가족을 잃은 노동자, 그리고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노조파괴가 노동자를 죽였다며, 한광호씨를 죽게 만들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그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차리려고 했지만, 경찰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영정사진은 깨졌고, 아직 날이 추운 3월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침낭도 없이 쓰레기 봉지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분향소를 차린 지 13일이 지나서야 삼대 종단에서 나서 천막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7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으로 향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현대차의 회장인 정몽구 회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물론 정몽구 회장 대신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맞이한 것은 경찰과 현대차 용역들이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정몽구 회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현대차 정문 앞에 간이 분향소를 차렸다. 그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분향을 채 마치기도 전에 현대차에 고용된 용역들이 들이닥쳤다. 자신들이 정문 앞에 집회신고를 냈다며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며 말이다. 초와 향로는 나뒹굴었고, 동생을 잃은 노동자는 말이 없었다. 용역들은 '폭력을 유발하지 말라'며 협박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폭력이 발생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경찰은 뒷짐 지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경찰이 분향소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들어와서 뒤섞여있는 상황이었고, 욕설과 고함이 오갔지만 경찰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용역의 폭행에 신고해도 나타나지 않는 경찰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옆에 서 있는 경찰의 무전기에서 "채증하는데 방해되니까 용역들 나오라고 하라"는 무전이 들렸다. 순간 놀랐지만,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분향소 사이에 들어와 있는 현대차 용역이 기자회견 참가자의 가방을 발로 차면서 실랑이가 붙었고, 현대차 용역의 채증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기자회견에 참가한 청년 한 명이 용역 6~7명한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폭행의 현장에서 경찰은 사람을 폭행한 현행범을 체포하기는커녕 폭행이 다 끝난 후에야 용역과 참가자의 사이에 병력을 배치했다.
용역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분향소 사이사이로 돌아갔고, 폭행을 당한 참가자는 핸드폰을 꺼내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 중입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하고 난 후, 1시간이 지나도록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고, 재차 112에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폭행을 당한 참가자는 집에 돌아가 다시 112에 신고를 하니 '긴급전화가 아니니 끊겠다고' 하여 경찰청 통합민원센터에 민원을 넣었지만, 서초경찰서에 이야기하라는 답변만 돌아왔고, 서초경찰서에 전화하자 신고를 받은 내곡파출소에 전화하라는 답변만 받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연락한 내곡파출소에서는 "이미 상황이 끝났고, 맞은 동영상이 있어도 우리가 그 사람을 어떻게 특정해서 잡아내겠냐"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사적폭력이 행해지는 순간에 방관하고 있었던 경찰은 자신들에게 들어온 신고처리 업무조차 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을 판독해서 출석요구서는 수천 장씩 보내는 경찰이 폭행현장 동영상이 있어도 찾아낼 수 없다니. 왜 경찰은 현행범 체포는커녕,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은 것일까.
5월 17일, 영정사진을 들고 앉아있는 한광호씨의 가족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가자들에게 경찰은 계속해서 현행범 체포하겠다고 압박을 했고, 용역들에게 '검거 작전하게 용역을 빼라'고 이야기했다. "공권력이 자본을 비호한다"는 상투적인 말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 목격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우연히'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공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과 현대차가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과한 의심일까?
또다시 벌어진 용역의 폭행, 오히려 용역이 용역을 막았다.
5월 18일에도 용역의 폭력과 경찰의 방관은 계속되었다. 노동당이 방송차량을 이용해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도착했고, 현대차 용역들은 차를 막아서고 정당연설회를 방해했다. 정당연설회는 헌법과 정당법에 의해 보장된 정당의 정치 행위이다. 용역은 물론 경찰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현대차 용역들은 노동당의 방송차를 가로막고 정당연설회를 방해했다.
단순히 차량의 이동을 방해한 것이 아니었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방송차 앞에 시민들이 모여 정당연설회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용역들이 난입했다. 홍종인 전 지회장이 현대차 용역한테 질질 끌려 나오는 과정에서 홍종인 전 지회장과 이정훈 전 지회장이 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물론 수수방관했다.
오히려 용역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용역을 뜯어말렸다. 말 그대로 뜯어말렸다. 까만 옷을 입고 계속 무전과 전화를 하던 용역 대장이 나타나서 이정훈 전 지회장의 목을 잡고 있는 손을 주먹으로 때려가면서 말렸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경찰은 용역들이 폭행하는 용역을 뜯어말린 후에야 나타나서 유성기업 조합원들과 용역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날 저녁, 그날 현장에 있었던 용역으로부터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말린 것이라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용역들조차도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경찰과 현대차 용역의 공동작전 3시부터는 유성기업 전 조합원이 현대차 본사 앞에 도착해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신고된 행진 루트인 인도 말고 차도로 행진하라는 경찰에 막히기도 했지만, 조합원들은 끝끝내 행진 루트대로 현대차 본사 앞에 도착했다. 김성민 영동지회장을 비롯해 대표단은 정몽구 회장 면담요청서를 제출하고자 했지만, 현대차는 이미 버스를 동원해 정문을 틀어막았고, 그래도 막지 못한 틈새들은 경찰병력이 배치되었다.
결국, 면담요청서는 전달하지 못했다. 상주인 국석호 조합원을 비롯해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정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정몽구 회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경찰은 연신 경고방송을 해댔고, 동료의 분향소를 지키려는 조합원들과 밀어내려는 경찰 사이의 충돌이 발생했다. 또다시 경찰 무전에서 믿지 못할 소리가 들려왔다.
"용역들 들여보내고, 용역 폭행하면 다 현행범 체포해!"믿을 수 없지만, 경찰 무전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경찰의 공식 작전 명령이었다. 연행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용역을 경찰병력 움직이듯이 움직이고 폭력 상황을 유발해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을 연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전을 듣고 분노한 참가자들이 이 상황을 알렸다. 노동당 정당연설회를 진행하던 정진우 노동당 기획조정실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 사실을 알렸고, 많은 조합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분노했다.
작전이 이미 다 공개되었기 때문인지 실제로 용역들을 들여보내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현대차 용역이 두 줄로 앞에 나와 섰을 때, 경찰 무전에서 용역 두 줄 앞으로 보내라는 내용을 들었다는 증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날 분향소를 지키던 중 27명이 연행되었고, 20일 오후 3시 현재 아직 석방되지 못하고 있다. 연행되지 않고 남은 조합원들은 여전히 분향소를 지키며 정몽구 회장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에게 가해지는 사적폭력의 현장에서도 가만히 있는 경찰, 폭행의 현장에서 신고해도 '범인 못 잡는다'며 나타나지도 않는 경찰, 용역과 함께 하는 작전을 명령하는 경찰. 모두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만난 대한민국 경찰의 모습이었다. 지금 양재동은 '현대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