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건'을 보고 많은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바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산업재해를 경험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알바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신청한다면 해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장님들은 산업재해를 극도로 싫어한다. 잠깐만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 그것도 산업재해를 신청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산업재해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알바, 비정규직 노동자알바노조가 2015년 맥도날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고기를 굽다가 화상을 입는 것이다.
맥도날드 노동자들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이 작업을 한다. 손끝에 생기는 작은 화상들은 영광의 상처라고 이야기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팔에 큰 화상을 입었던 이가현 조합원은 점장이 건넨 개인 카드로 치료를 받았다.
한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던 조합원은 뜨거운 물에 팔이 데여 화상을 입었는데, 산업재해를 이야기했다가 온갖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고 해고를 당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산업재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다쳤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가 발표한 2015년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1810명이고, 재해자수는 9만129명이다. 하루에 5명이 일을 하다가 죽는다. 산업현장이 전쟁터라는 말은 어느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얼마 전에는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상담하는 활동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영세사업장에서 일을 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티로폼 분쇄기에 몸이 빨려들어갔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산업재해 전문가가 안전장치가 없는 기계 앞에서 일한 심정은 어땠을까? 삼성, LG 핸드폰을 만들던 3차 하청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은 메탄올이 에탄올의 3분의 1가격이라는 이유로 유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실명했다.
계속해서 산업재해가 벌어지는 이유는 이윤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 값이 안전시설투자와 교육,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열차가 안전하게 달리게 하기 위해 죽었지만 열차는 죽어간 사람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릴 뿐이다.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노동청과 수사기관의 관리감독 역시 문제다. 이번 구의역 사건이 벌어진 업체는 이미 3년 전 성수역 스크린 도어 사건으로 고발을 당한 은성 PSD다. 당시 검·경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수사 결과, 무혐의처리를 받았다.
사업장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예방해야 할 노동청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구의역 사망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노동환경 전반에 대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협소한 이야기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쟁취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구의역 사건을 보고 누군가는 여유가 있었으면 덜 위험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겠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자리,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등 대형패스트푸드업체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은 높은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는 이유로 다른 곳에서는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안 좋은 일자리가 상식이 된 사회에서 노동자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의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조건, 최저임금 1만원
시장원리로 따지면 이런 일자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노동자들이 공급을 중단시켜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하고, 핸드폰 비를 내야 하고, 당장의 지하철비가 필요한데 최저임금을 위반한 일자리라고, 위험한 일자리라고 거부할 수 있겠는가?
생존의 문제가 달린 이 기막힌 불균형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서 법을 만들고 법을 지키는지 감시를 하고 위반했을 때 처벌을 한다.
최저임금은 대표적인 국가의 개입이다. 특히 노동조합조차 결성하기 힘든 알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유일하게 자신의 임금을 높이는 방법이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이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충분히 인상되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자들에게는 위험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거기에 더해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국가차원의 사회 안정망이 갖추어진다면 죽음의 일자리를 거부할 힘은 더욱 강해진다.
위험한 사업장 사업주는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력을 구할 수 없다.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일자리가 줄지 않겠느냐는 반박을 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는 시급 8.5유로(1만 300원)의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들었다. 그런데 사회보험제도가 적용되는 좋은 일자리가 71만3000개 늘어났다고 한다.
6월 4일 안전한 일자리와 최저임금1만원을 요구하는 알바들의 행동이번 지하철 사고가 난 은성 PSD같은 기업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기업이 사라졌다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노동자들은 계속 일할 필요가 있다.
사라지는 것은 사람 장사로 이윤을 버는 하청사장의 자리이며, 안전관리의 책임을 회피하고 사익만을 생각하는 서울메트로의 이윤일 뿐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고 사회안정망을 갖추는 것은 우리사회의 노동시장을 바꾸기 위한 필수적인 경제적 조건이다.
우리에게 노동시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장들을 해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장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구의역 사건에 대책과 최저임금 문제는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알바노조는 오는 4일 구의역 4번출구 맥도날드 앞에서 알바에게 안전한 일자리와 최저임금1만원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알바노동자들이 '알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안전한 일자리와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친다.
이윤만을 위해 달리는 세상이 잠시 멈춰 알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한다. 이 죽음의 열차를.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알바노조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