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영어가 잘못 번역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politically correct'(폴리티컬리 코렉트) 또는 'political correctness'(폴리티컬 코렉트니스)라는 영어 표현이 한국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뜻을 정확히 모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고 번역해 쓰고 있는 듯하다. <뉴시스>는 지난 4월 24일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재무부가 20달러 지폐 인물로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을 선정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가 '진짜 정치적 올바름(pure 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일체의 차별과 탄압, 편견에 저항해 바로 잡으려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는 '앤드류 잭슨 전 대통령은 미국에 엄청난 역사를 이룬 사람'이라면서 '20달러 지폐 인물 교체는 무지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20달러 지폐의 앞면 인물 교체는 순전히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기사를 쓴 <뉴시스>의 기자는 'pure political correctness'를 "진짜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하고는 이게 "일체의 차별과 탄압, 편견에 저항해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만일 그게 그런 좋은 뜻이라면 20불 지폐의 초상화 교체를 트럼프가 'political correctness'라고 비난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political correctness'는 <뉴시스>에서 보도한 그런 뜻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노린 약삭 빠른 행위이지만, 그게 나쁜 짓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라는 뜻이다.
트럼프가 이 말을 쓴 이유는 이렇다고 본다. 즉, 20달러 지폐의 초상화를 하필 이때 흑인 얼굴로 바꾸려는 것은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전 한 건 하겠다는 의도일 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를 위해 흑인표를 몰아주려는 정치적 행위로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말, 'pure political correctness'는 "순전히 정치적 이득을 노린 약삭빠른 짓"이라는 뜻이다.
트럼프는 지난 5월 27일에도 한 집회에서 "Do you think Hillary looks presidential?"(힐러리가 대통령답게 보입니까?)라고 묻자 청중은 일제하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I'm not going to say it because I want to be politically correct"라고 말했다. 번역하자면 "(나도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정도가 된다. 즉, 힐러리가 여성이니까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내가 말한 것으로 오해 받기 싫다는 뜻이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5월 27일 치 '분수대'에 "정치적 올바름이 불편하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기자는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여파가 큰 건 지금껏 여성들이 체감해온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한 분노가 표출됐기 때문이다. (중략) 이 사건을 남녀 모두를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 계기로 만들 수 있을 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전 기자가 말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은 영어 'politically correct'와는 거리가 멀다. 'politically correct'는 상대방 기분을 고려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억지로 참고 점잖게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것, 또 어떤 행동을 꼭 취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행동이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그 행동을 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politically correct'는 다분히 위선적 언행을 가리킨다.
이 기자는 'political correctness'를 'euphemism'(유피미즘, 완곡어법), 즉 "같은 말이라도 듣기좋게 표현하는 것"과 동의어로 쓰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비만" 대신 "수평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politically correct'라고 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euphemism'이라 하고, 'political correctness'는 위에서 필자가 설명한 것처럼 "정치적 또는 사교상 이득을 노린 약삭빠른 언행"이란 뜻이다.
'correct'를 글자 그대로 직역하여 'politically correct'를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고 번역하면 "옳은 정치, 바른 정치"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번역이 아니다. <중앙일보> 기자가 위에 인용한 글에서 쓴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한민국 운운"한 것이 바로 그런 혼동이다.
결론적으로 'politically correct'나 'political correctness'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 그리고 'politically incorrect'와 'political incorrectness'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정치적으로 유리한" 또는 "정치적으로 불리한"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좋겠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먼저 어떤 외국어를 잘못 번역해도 모두들 그게 옳은 줄 알고 모두들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역은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번역한 것이다. 'help oneself'는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뜻이므로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밖에도 좋고 합법적인 환불 'rebate'(리베이트)를 '뇌물성 환불'이란 뜻으로 오랫동안 잘못 써온 것, 'PTSD'(큰 육체적 부상 또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겪는 병적 스트레스)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고 반쪽만 번역해 쓰는 것, 'moral hazards'를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하는 것, 'quantitative easing(QE)'를 '양적 완화'로 번역하는 것 등이 그런 예다. 'QE'는 '통화량 확대'라고 의역을 해야 누구나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 아니라 영어 사용국 사람들도 모르는 엉터리 영어를 만들어 쓰는 것도 문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바로 '스킨십'이다. 애정이나 친근의 표시로 포옹하거나 악수하는 것 등을 가리키는 모양인데 아건 영어 원어민도 모르는 엉터리 영어일 뿐 아니라 매우 상스럽게 들릴 때도 있다.
어느 신문이 "박 대통령은 스킨십이 더 필요하다"고 보도한 것을 봤다. 이때 스킨십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것을 뜻하는 모양이지만, 듣기가 아주 거북하다. 또 일본인들이 만든 '코스프레'도 엉터리 영어다. 'costume play'(과거 어느 시대에 맞는 의상을 입고 하는 연극)을 일본인들이 '코스프레'라고 줄여 쓴 것을 한국서 그대로 받아 쓰고 있다, 언론인들의 글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번역을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미국 거주 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