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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현 호주 국회의원과 한 집에 살며 호주 시골 쇼핑몰에서 일 년 동안 양말을 팔았었다. 24살에는 미국 모자회사 마케팅 팀에서 반 년 동안 인턴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직장인의 꿈인 '칼퇴'가 보장되는 곳에서 2년째 일하는 중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직장일 거다.

호주와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나에게 많은 걸 깨닫게 했다. 다른 직장인들보다 사회 생활을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호주, 미국, 그리고 한국의 직장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이들 직장 문화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누구보다 깊이 깨달았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과 헬스웨이는 지난 2014년 145개국 15세 이상 남녀 14만6000명에게 총 5개 항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삶의 목표, 사회적 웰빙, 경제적 웰빙, 공동체적 웰빙, 육체적 웰빙이다.

조사결과 한국은 경제적 만족도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항목들의 만족도가 100위권 밖이었다. 145개국 중 웰빙지수 종합 117위를 차지했다. 반대로 미국은 종합 23위 호주는 40위에 랭크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한국사람들의 웰빙을 방해하는 것일까?

굉장한 문화충격 '오후 3시 교통체증'

 호주의 고속도로는 오후 3시부터 '퇴근 차량'으로 붐빈다. 한국의 직장문화에 익숙한 내겐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호주의 고속도로는 오후 3시부터 '퇴근 차량'으로 붐빈다. 한국의 직장문화에 익숙한 내겐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 PIXABAY

호주에서 양말을 팔던 때를 생각하면 함께 쇼핑몰에서 근무하거나 사무직으로 일하는 현지인들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일해도 절대 하루 8시간을 넘지 않았다. 물론 이주노동자인 나도 항상 8시간 미만으로 일했다.

심지어 대도시 맬버른에서 내가 살던 시골동네로 내려오는 고속도로와 시내도로는 오후 3시만 되면 차가 꽉 막히기 시작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그 광경 본 나는 의아했다. 옆좌석에서 운전하던 현지인 아주머니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오후 3시에 퇴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차가 막힌다니! 물론 호주에도 우리나라처럼 5시 혹은 6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3시에 퇴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통체증이 생긴다는 사실은 나에게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다.

일이 삶의 목적이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호주 사람들은 일이 삶의 자그마한 수단이었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에는 1년 365일, 퇴근하고 나서도 일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오늘 퇴근 후에는 무엇을 할지, 이번 주말엔 무얼 할지, 휴가 기간에는 어디로 놀러 갈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호주에 사는 내내 웰빙 만족도 종합 순위 40위 국가의 위엄에 압도 당하곤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한국의 대학생으로서 두 학기를 보내고 마지막 학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모자회사 마케팅 팀에서 반 년 동안 생활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회사 내 모든 구성원 중 회사 생활이 삶의 1순위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에 삶을 잠식당한 우리나라 직장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의 1순위는 개인의 삶과 가족이었다.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직장이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장에 있는 동안에는 항상 최선을 다했으며,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되면 망설임 없이 가방을 들고 나섰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피트니스센터로, 술집으로 향했다. 이러한 모습은 남녀구분이 없었다. 웰빙 만족도 23위인 미국의 직장 풍경은 이러했다.

 개인 혹은 가족과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사람들. 일에 삶이 잠식되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인턴 생활을 하던 때 센트럴파크에서 찍은 사진.
개인 혹은 가족과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사람들. 일에 삶이 잠식되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인턴 생활을 하던 때 센트럴파크에서 찍은 사진. ⓒ 정원선

웰빙 만족도 117위인 한국에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 야근과 회식에 시달려 자기 관리는커녕 잘 시간조차 부족해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피곤한 상태로 일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을 보며 저런 상태로 어떻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일을 할 수 있는지 가엽기만 했다.

우리나라에 유능한 젊은이들은 이런 생활에 닳고 닳아버렸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퇴사를 생각 할 수밖에 없고, 신입사원의 높은 퇴사율은 근성 없는 젊은이들의 탓으로 돌아갔다.

반대로 일년 중 대부분 칼퇴를 하며 대학 동기들 중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높은 나는 직장에서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퇴근 후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 후에는 충분한 수면시간을 보장받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오늘 받은 스트레스를 내일까지 데리고 있지 않으니, 항상 완벽한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칼퇴'만 있고 '칼출'은 없는 한국

 정시퇴근을 은근히 조롱하는 '칼퇴근'이라는 단어는 있는데, '칼출근'이라는 말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시퇴근을 은근히 조롱하는 '칼퇴근'이라는 단어는 있는데, '칼출근'이라는 말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 pixabay

문득 '칼퇴'라는 단어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시간을 칼 같이 맞춰서 퇴근한다"는 뜻의 이 단어에는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다. 이런 단어는 분명히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이다. '칼퇴'라는 단어는 있지만 '칼출'이라는 단어는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출근시간은 목숨같이 지켜야 하지만 퇴근시간도 목숨같이 지켰다가는 '뒷담화'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내가 만난 호주와 미국의 직장인에게 매우 낯선 일이다.

이 점이 호주, 미국 그리고 한국 직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호주와 미국에서는 아무도 일하는 시간과 성과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일하면서 남들보다 성과가 뛰어나지 않다면 무능력자라고 비판받는 분위기였다. 또한 회사는 법정근로시간을 넘기면 높은 초과임금을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을 기피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나 회사 모두 정시퇴근을 당연히 여겼고, 노동자들은 퇴근 후에는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 운동 등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OECD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285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보냈으며 이는 OECD 회원국 34개국 중 최상위권이다. 회원국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1년에 두 달 이상 일을 더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시켜야 할 양의 업무를 비용절감을 위해 가엾은 직장인들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현상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은 열심히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은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회사만을 위한 것일까? '웰빙(Well-being)'은커녕 매일같이'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고뇌하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웰빙#호주#미국#한국#직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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