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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가 통째로 퇴짜를 맞았다. 올해부터 모 잡지에 두 달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 책과 대중문화를 통해 세상을 읽는 시선을 보여주자는 것이 기획의도다. 편집진은 이번 글에 대해 단조롭고 식상하다는 '혹평'을 내놨다. 과감히 잘렸다. 마감은 이미 지났다. 비상이다. 편집진과 수차례 메일을 오가며 토론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토론이 오갈수록 주제가 날카로워지고 구성도 확 바뀌었다. 닥쳐서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겨우 글은 나왔다.

출산으로 따지면 난산 중의 난산이다. 겨우 살려낼 수 있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한계를 시험 당한다. 결과물을 만드는데 급급하다 보면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글을 내기도 한다. '이게 아니구나' 얼른 깨닫고 돌아오면 괜찮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만든 '활자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는 우를 범한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표지 .
▲ <나는 어떻게 쓰는가> 표지 .
ⓒ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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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원고를 퇴짜 맞은 것은 결과적으로 내 글쓰기에서 '약'이 됐다. 나의 글을 돌아보게 됐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 책 <나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었다.     

'좀 쓴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글쓰기'

어떻게 써야 하는가. 별로다. 어떻게 쓰는가. 괜찮다. 전자는 권위적이다. 후자는 소탈하다. 있는 그대로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너는 어떻게 쓰는가. 그들은 어떻게 쓰는가. 뿌리부터 살피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별로라니깐. 어떻게 사는가. 김형경이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안쓴다. 일기 따위. 당신은 어떻게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사는가. 톨스토이는 말했다. 행복하면 엇비슷하다. 얘깃거리 없다. 불행하면 제각각이다. 얘깃거리 많다. 이 말, 내 맘대로 바꾼다. 재미없으면 엇비슷하다. 재미있으면 제각각이다. 필자 이름 불러본다. 김영진. 안수찬. 유희경. 전인진. 손수진. 김중미. 최훈. 반이정. 성귀수. 김선정. 임범. 김진호. 듀나. 이들은 어떻게 사는가. 영화평론가. 기자. 시인. 판사. 작가. 카피라이터. 철학자. 목사. 글로 골병드는 직업들. 글쓰기에 묻은 서사. 골병의 서사. 그것부터 보시라. (서문, 5쪽)


서문 첫 장을 읽자마자 완전히 사로잡혔다. 군더더기 없이 단문으로 끊어치는 기술이 글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서문이 이 정도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선수'들의 내공과 비법은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감이 한껏 치솟는다.

책에는 각 분야의 글쓰기 고수들이 등장해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느 글쓰기 책과 달리 이 책은 글을 쓰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의 서사에 주목한다. 글로 먹고 사는 이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글을 쓰는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내면의 소용돌이, 세상과 타인에 대한 정밀한 관찰, 마감 직전의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세우는 악전고투. 글은 이 모든 과정의 집약체다.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그런 밤이면 명치에서 토악질처럼 글이 솟구쳐 오른다. 뭇사람들은 이런 일을 평생 몇 번만 겪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이런 일을 거의 매일 겪는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과 사랑하고 실연하며, 투쟁하고 갈등한다. 타자로 인해 자아가 매일 뒤흔들린다. 그들은 매일 토악질하며 글을 쓴다. 이 대목에 이르러 글은 '자아'를 넘어서는 '타자'의 문제다. 글쓰기는 타자에 대한 감응의 표현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삼라만상을 향한 감성의 더듬이를 벼려야 한다. 주변의 이웃, 그들을 엮는 관계에 민감하게 감응해야 글을 쓸 수 있다. 세상 모든 길이 서로 만난다. 자아를 성찰하는 길과 타자에 감응하는 길은 어느 경지에 이르러 서로 섞이고 스민다. 둘의 팽팽하고도 적절한 긴장 가운데서 글이 탄생한다. (안수찬 기자, 35쪽)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이란 결국 '글쓴이'의 삶으로 평가된다는 말이 있다. 안수찬 기자는 "글쓰기는 자아 노출의 공포와 열망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일"이라며 "글을 지탱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자아"라고(34쪽) 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에 담기는 자아를 훌륭하게 갈고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간단하면 뭐하러 글쓰기 책을 읽겠나. 자아를 갈고닦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다. 꾸준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쓰기 선수들이 제안하는 차선책은 세상과 타인을 보는 시선을 키우는 것이다. 차선책으로 열심히 연마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최선에 도달할 터이다.  

모든 인사이트(insight)가 이렇게 내면의 심리적 욕망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욕망 자체도 단순한 하나의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사이트는 굉장히 다층적이다. 그 다층적 인사이트에서 지금 내가 팔려고 하는 것과 가장 잘 어울리고, 다른 경쟁 제품을 누루고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건 뭔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중략)...인사이트는 정답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다. 술을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술자리에 두고 있는 의미가 '친목'에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도 카피의 실마리이고, 또는 사람들이 소주를 마실 때 툭 쳐내서 덜어내거나 팔꿈치로 툭 치거나 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는 발견 또한 큰 실마리가 아니겠는가...(중략)...이렇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부하고 생각하며 소위 '내공'이라는 게 차곡차곡 쌓여 '이거다!' 하는 유레카의 순간이 자주 찾아오게 된다면, 당신은 카피 쓰는 일이 훨씬 쉬울 것이다. (손수진 카피라이터, 110쪽)

정보나 자료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더 얻어낼 수 있지만 관점은 그렇지가 않다. 다시 말해 칼럼은 당장 뭘 열심히 한다고 해서 써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니 평소에, 젊을 때, 아니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고 세상 경험 많이 하고.... 이런 공자님 말씀은 생략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 몇 마디 덧붙인다면 이런 거다. 나는 세계관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성정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관점도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정 안에 있는 걸 발견해 나가는 게 아닐까. 사람의 관점이 다 같은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다를 때가 많다. 문제는 그게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도 설명을 못하니까 남들과 같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남들과 같다고 여기고 거기에 묻어가지 않고, 그 미세한 차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임범 칼럼니스트, 216쪽)


글쓰기의 세계에 백종원의 '만능간장'같은 비법은 없다. 맞춤형 레시피가 따로 없다. 딱 들어맞는 공식도 없다. 기사, 칼럼, 시나리오, 평론, 시 등 분야는 다르지만 글쓰기 고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시야를 키우라는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면에 놓인 본질을 성찰할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삶에 대한 태도가 건강해야 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습관을 들여야 한다. 결국은 기본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어떻게 쓰는가> (김영진, 안수찬 외 지음 / 씨네21북스 펴냄 / 2013. 9 / 12,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지음, 씨네21북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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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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